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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12월
평점 :
작년부터 불교 답사를 시작하면서 사찰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에는 국내에 나온 유명한 절집 답사기는 대부분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에 도보 여행가인 신정일 선생이 사찰과 관련된 책을 냈다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책은 작은 편이었으며 페이지 수에 비해서 책장도 잘 넘어갔다.
같은 사찰을 소개하더라도 작가에 따라서 포인트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가령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산사순례》 편은 유교수 특유의 현학적이고 심미적인 문체가 돋보이며 최완수 교수의 《명찰순례》 시리즈는 절집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에 중점을 둔 깊이 있는 해설이 특징이다. 건축학자 김봉렬 교수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시리즈는 사찰 가람배치와 전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산사 답사로 명성이 자자한 선묵 혜자 스님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 책은 기존의 책과는 다르게 산문이 아닌 운문으로 절집을 소개하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강호 동양학의 대가인 조용헌 선생의 사찰 답사기는 풍수지리적인 해석이 인상적이다.
그럼 신정일 선생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첫 번째로 평이한 난이도다. 절집 답사에 대해 초심자들이더라도 무리 없이 책의 내용을 소화할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 역시 절집에 대한 설화와 역사, 고증 등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유홍준 교수의 책이나 최완수 교수의 책처럼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물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은 모두 담고 있다.
두 번째로 지리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꼽고 싶다. 신정일 선생은 대중들에게 《신 택리지》 전집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그렇기에 저자의 가장 큰 특징은 지리에 대한 부분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도 그런 저자의 지리적인 묘사와 식견이 듬뿍 녹아있다. 특히 공감했던 점은 해남 미황사 편에서 여느 절집들은 본당 부근보다 사찰이 끼고 있는 산책로가 더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고 강조하며 미황사의 부도전으로 가는 길목을 꼽은 부분이다. 또 강진 백련사 역시 절집 부근보다 다산초당으로 이어진 산책로가 아름답다고 극찬했는데, 책에 거론한 사찰과 산책로를 모두 돌아봤기에 저자의 주장에 이백 프로 공감했다.
세 번째로 꼽고 싶은 점은 유명한 관광 사찰이 아닌 나름의 품격을 가지고 있는 한적한 사찰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산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조용한 분위기인데, 관광 사찰은 인파가 많이 몰려들기에 절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경주 불국사, 양양 낙산사, 속초 신흥사, 양산 통도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찰들이 이에 속한다. 반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찰들은 대체로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는 '뼈대 있는 절집'이 대부분이라 선정을 참 잘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곡성 태안사'와 '화순 운주사', 그리고 '양주 회암사'였다. 올해 초 양주 회암사는 템플스테이를 예약해놨기에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고 전남에 포진된 두 사찰 역사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서 답사를 할 예정이다. 물론 이 책에도 관광지 절집을 소개하고 있긴 한데, 여주 신륵사, 해남 미황사, 공주 갑사 정도다. 이보다 더 큰 관광 사찰들은 소개를 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한 해에는 메이저급 대찰과 교구본사, 관광 사찰들을 중심으로 답사를 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규모나 유명세보다는 분위기, 그리고 나름의 내력을 가진 흙 속의 보석 같은 가람들을 둘러보고 싶다. 책에 소개된 사찰들의 절반은 가보지 않았는데 덕분에 올해의 답사 계획에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갈 곳은 많은데 여유시간은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다름이다. 그렇기에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을 책을 읽는 것으로 달랜 느낌이다. 아무튼 전남의 유구한 가람들을 답사하러 조만간 나서야겠다. 물론 이 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