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1 - 전쟁과 바다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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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역사책 중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있었다. 최근에는 이 책을 두고 편향된 사관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논평하는 시각이 일반적이지만, 출간 당시에는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받은 작품이었다. 영웅주의 사관, 제국주의적 논리를 합리화하는 책이었기에 지성인들에게는 비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표현 덕분에 로마사에 친숙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하여 로마에 대해, 나아가 서양사에 대해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인기 이후, 한동안 역사 장르 도서계에서는 'xx인 이야기'라는 유사 제목을 가진 책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그중 눈에 끄는 작품은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다. 이 책은 다방면으로 중국을 해석하고 있지만 역사보다 문화적인 시각을 우선하고 있기에 역사적 시각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준 작품이었지만 주관적인 취향을 배제하고 판단하자면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두 시리즈를 접하고 읽으면서 일본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밀도 있게 분석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김시덕 교수가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를 출간한다고 하니, 내심 속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며 쾌재를 불렀다. 김시덕 교수라면 일본을 감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객관성을 확보하며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나는 김시덕 교수가 번역한 《교감 완역 징비록》을 읽었는데, 풍부한 자료와 주석이 돋보였으며 우리나라의 사료뿐만 아니라 중국, 그리고 적군인 일본의 사료까지 동원하여 입체적으로 《징비록》을 해석한 점도 돋보였다. 특히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과 《난중일기》의 저자 이순신을 묶어서 '동인 중심의 역사 서술 시각'이 오늘날 한반도의 임진전쟁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한 것과 동인의 시각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대세의 시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필력 있는 기록'에 있다고 꼬집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주장은 자칫 성웅으로 신격화된 이순신과 류성룡의 위업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혹은 주입된 역사관을 그대로 배운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을 대담하게 전개한 저자의 용기와 객관성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본이란 나라는 우리에게 있어 감정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 번에 걸친 침략전쟁, 식민지,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역사적인 문제 등등... 그렇기에 국내에서 일본을 다루는 대중 도서의 대다수는 대체로 감성적인 부분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감정의 골을 유발하는 나라일수록 냉정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교감 완역 징비록》의 역자 김시덕 교수가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를 낸다고 하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객관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는 고대와 중세는 거치지 않고 16세기인 근세부터 시작하여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데, 내가 지금 리뷰하고 있는 책이자 시리즈의 첫 권은 바로 가장 흥미진진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 16세기 - 일본의 군웅할거 시대와 조선과의 전쟁, 그리고 통일의 과정까지 - 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역사책이 권력자와 정치적 흐름을 으로 설정하여 주된 포인트로 전개한다면 이 책은 하층민의 움직임과 문화가 상류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거시적인 정치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 하층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중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가톨릭이었다.


전통적인 동아시아 역사서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을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저자는 이 부분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근세와 근대를 넘어서는 시대에 동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한다. 근세 시대에 일본에서 가톨릭은 하층민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평등사상은 신분제로 규정된 왕조 체계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였기에 지도층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물론 국가가 분열되고 통일전쟁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고 노력하지만, 국가가 안정화되고 대외적인 팽창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임진 정유전쟁의 실패) 이에야스는 서양의 종교 세력을 탄압하여 지배층의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노력하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에도 막부가 서양의 가톨릭 사상은 탄압하더라도 교역이나 무역에 있어서는 관심을 가진 것인데, 이를 통해서도 동시대 일본의 지배층이 조선과는 다르게 좀 더 개방적이고 실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16세기 일본사를 바라볼 때 수많은 다이묘들이 할거하는 상황과,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영웅주의적 관점에 주로 집중하는 것 같다. 이 시대를 다루고 있는 일본 저자들의 책(국내에 번역된 책)을 살펴보자면,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처세와 정치력, 그리고 개인적인 영웅담을 칭송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대다수인데, 이런 시각의 도서들은 대체로 얄팍한 처세나, 흥미 위주의 신변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책으로 일본의 근세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가히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일본인 이야기》는 일본 내부의 상황뿐 아니라 일본 외부의 세계를 포함하여 거시적인 관점으로 16세기 일본을 조망하고 있는데, 이렇다 보니 일본 자국의 정치 동향에만 집중하여 분석한 영웅론과는 내용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대중 역사서는 일본을 다룰 때 기껏해야 동아시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일본인 이야기》는 동아시아를 넘어 식민지 경쟁이 진행 중인 유럽 열강들이라는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일본사와 결부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세계사의 흐름에서 일본을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책을 통해 한층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일본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저자의 관점은 글로벌 시대의 역사관에 걸맞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아쉬운 점을 두 가지 꼽아보자면 첫 번째로 제한된 분량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다소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저자의 부연 설명이 참 좋았지만, 주 논제에 집중하는 독자들이라면 다소 산만하게 볼 여지도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서두에서 가톨릭과 조선과의 관계 그리고 일본 내부의 통일전쟁 흐름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다루고자 노력했다고 했지만,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가톨릭에 대한 내용이 뒤에 두 내용보다 훨씬 많이 할애된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근세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가톨릭 세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를 너무 부각하다 보니 조선과의 관계와 일본 정치사의 흐름의 서술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을 느꼈던 것 같다. 조선과의 관계는 둘째로 두더라도 일본사의 흐름에 대해서는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근세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 시대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 책에서 언급하는 사건들을 바로바로 쫓아갈 수 있었지만,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는 시대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생각한 점과 느낀 점은 일본의 실용주의적인 관점이다. 당시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각각 서양 세력과 조우했는데 중국과 일본은 서구 세력에 호기심을 보인 반면 조선의 경우는 가장 단호하게 대처했다. 일본은 중국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에 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지배체계를 뒤흔드는 가톨릭 사상은 탄압하는 반면, 서구 나라와의 교역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또한 일본은 네덜란드와 교역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또한 저자가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 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뛰어난 위인은 두 가지를 두루 갖춰야 하는데, 첫 번째는 행운이며, 두 번째는 바로 그 행운을 받아먹을 수 있는 능력이다. 16세기 서구세력은 동아시아 3국에 러브콜을 날렸지만 이를 적절하게 이용한 나라는 결과적으로 일본밖에 없었다. 중국 역시 관심을 가졌지만 중화사상이라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져서 서구사회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려 하지 않았고 조선은 아예 그 기회조차 스스로 차단해버렸다. 이렇듯 역사에 있어 탁월한 능력은 결국 자신에게 오는 행운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본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요즘. 최근 발간되는 일본과 관련된 도서들은 대체로 반일감정을 고조하는 내용이 대다수인데, 이 책은 냉정한 태세를 유지하며 역사적인 관점으로 일본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반일감정도 좋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이다.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를 통해 뛰어난 인물이나 국가를 분석해 본 결과, 발전하는 인물과 국가는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고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배척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 이야기》는 일본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한 최적의 도서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심도 있게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연말 책을 손에 잡았던 3일 동안 지적으로 충만한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서 굉장히 행복했다. 다음권이 기다려지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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