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지음, 법정(法頂) 옮김 / 문학의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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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가면 늘 어머니뻘 되는 불자들이 기도 시주를 하며,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복을 구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저렇게 해서 과연 복이라는 것을 구할 수 있을까? 과연 불교란 저렇게 보시만으로 현세와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종교인가? 의심하면서, 불교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불교를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승이라고 불리는 스님들에게 문답을 하면서 배우는 경우도 있고, 시중에 나온 여러 불경들을 통하여 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결국 불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조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참되고 순수한 불교의 정수로 다가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싯다르타 부처님에 대한 책을 검색하고, 최종적으로는 《불타 석가모니》 책을 선택하고 짬짬이 읽었다. 읽을 때만 해도, 과연 이 책만으로 부처의 진면목을 모두 알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읽고 나니 새삼 번역자인 법정 스님의 탁월한 안목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책은 부처의 삶을 최대한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었고, 부처의 삶뿐만 아니라 부처가 살았던 시대적인 흐름과 사회상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밝혔다.

 

책의 저자는 와타나베 쇼코라는 일본인이다. 저자는 2500년 전의 인물인 부처라는 실존 인물의 생애를 텍스트로 최대한 섬세하게 복원했는데,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서문에서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부처의 전기를 쓴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기록이 너무 없다는 점, 한편으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신화적인 기록들이 너무나도 넘쳐나기에, 이런 상반된 기록들 사이에서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구도자를 명료하게 그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대체로 종교적인 인물을 다루는 책은 신화적이고 미신적인 부분에 치우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부처님 사후 후대에 거쳐가며 숱하게 붙여진 신화적인 부분을 최대한 참고하여, 신화 속에 가려진 부처님의 실체를 찾아내는데 탁월한 추론을 보여줬다. 물론 저자의 탁월한 추론으로 밝힌 내용이 실제 부처의 삶이라고 단정할 수 없겠지만 사실과 신화, 상반되는 자료들을 통해 2500년 전에 활동한 종교 창시자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보여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추론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입체적인 부처님의 삶을 그려냈다고 해서 이 책이 종교에서 중요시하는 '신화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저자는 19세기 이래로 과학 기술의 진보에 말미암아 종교에서조차 신화적인 색채와, 초자연적인 색채를 걷어내는 일말의 행위들을 향해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나 역시 특정 종교를 믿지 않은 것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바로 종교가 가진 '신화적인 부분'에 거부감 때문이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결과, 합리주의와 실증적인 사고 관념이 보편화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 신화적인 색채, 초자연적인 색채가 가득한 종교는 그저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 역시 현대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종교를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관점을 통해 종교 안의 숱한 비현실적인 측면을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는다. 여기서 호랑이는 포기하고 곰은 인내하여 웅녀가 되어 천신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오늘날 이 신화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냥 봐도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으니까. 그래서 역사 학자들은 단군 신화를 이렇게 재해석한다.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싸워서 곰 부족이 이겼고, 이런 곰 부족은 환웅을 섬기는 부족과 힘을 합쳐 고조선을 개국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아마 단군은 이 두 부족의 지도층의 결혼 동맹에서 태어난 인물일 것이다.'

 

종교의 신화 해석도 마찬가지다. 신화적인 기록은 현실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극도로 강조하기 위해 빗대어 표현하거나 에둘러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비현실적인 신화적인 기록이야말로 해석하기에 따라 가장 사실적인 기록으로 환원할 수 있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종교의 신화적인 영역을 함부로 자르고 재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에 있어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종교를 탐구하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신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이 신화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의미하는지를 읽어내는데 열정을 다해야 한다. 물론 허구적인 신화의 영역을 아무 지식 없이 해석한다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따라서 비전문가인 우리는 이 분야의 전문가에 의존하여 종교의 신화에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탁월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실적인 시각을 너무 강조하지도 않고, 신화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지도 않는다.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견지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 중 신화적인 기록들을 해박한 지식으로 섬세하게 해석한다. 그런 저자의 결실을 법정 스님은 탁월한 문체로 번역해냈다. 한 마디로 책은 탁월한 저자, 그리고 탁월한 번역가가 만나서 완성된 훌륭한 부처님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종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각, 그리고 불교의 본질, 부처님의 시대에 상황과 시대 배경, 불교라는 종교가 고대에 인도에서 어떻게 성립되고, 여타 다른 종교들의 어떤 덕목들을 흡수했는지도 꼼꼼하게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불교에 대한 철학적 지식과 배경지식, 그리고 나아가 부처라는 인물이 수도를 통해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도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일본인의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를 쓴다는 점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부피가 꽤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문장은 없어서 책장은 술술 넘어가는 편이었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사찰을 다니고 불경을 나름 읽었지만, 고백하건대 불교를 전적으로 믿는 마음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많이 반성했다. 그만큼 부처의 삶은 특정 종교를 떠나,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존경을 불러왔고, 이런 보편적인 존경심은 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진리를 밖에서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찾는 진리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불교라는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에 대한 공부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경전과 스님의 말씀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부처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며 그저 시주를 으뜸으로 여기고, 스님의 말씀에서 '잠시의 힐링'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과연 이게 올바른 교인의 자세인가. 멀리서 구하려 하지 말자. 이 책 한 권이면 부처를 파악하는 데 있어 모자람이 없다. 법정 스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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