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웅거 지음, 박수철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라지만, 생에 대부분을 '변화'로 일관하며 살 수는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시대일수록 삶에 있어서 최소한의 지켜야 할 원칙과 철학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래서 늘 고민이었다. 무엇을 변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사유를 이어가다 보면 대체로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위선 때문이었다. 나름 지키고자 하는 덕목들을 순간에 의해, 상황에 의해 스스로 배신하면서 타협하고 합리화했던 위선이라는 녀석. 그런 위선은 대부분 욕망과 관련됐다. 청류한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과 세속의 욕망, 즉 권력과 재물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두 마음은 나의 내면의 양극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머리는 청류를 지향했지만, 마음과 실체적인 삶은 욕망을 추구한 적이 많았다.

 

이런 양면적인 모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마키아벨리를 처음 만났을 때, 운명처럼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마키아벨리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시각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근대 정치철학의 시초로 예우하는 시각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들을 수단화하여도 괜찮다고 평가하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뉜다. 이런 시각차는 오늘날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마키아벨리의 저서와 평전을 대부분 읽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호기심으로 마키아벨리를 만났지만, 그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호기심은 존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록 오늘날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와 다르고 환경은 달라졌지만, 마키아벨리라는 인간을 탐구하고 배우면서, 나는 그의 삶과 그의 사상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열정 어린 삶의 흔적과 파격적인 사상은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선사했고, 그랬기에 나는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키아벨리를 조망한 평전이 최근 새롭게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랬기에 나는 얼른 책을 구하여 단숨에 읽어나갔다.

 

책에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번역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나온 외국어 원전 인문학 책은 뛰어난 책이라고 하더라도 번역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과거에 출판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문학 관련 서적'은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를 고용하여 번역을 의뢰한 경우나 대학원생들을 고용하여 번역한 경우가 많아,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원저자의 맛깔진 묘사와 표현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번역하고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문학 관련 번역서일 경우, 명저라고 불리는 책이더라도 번역자의 실력에 따라 졸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내용의 표현도 일품이었고 표현의 결을 살린 번역도 탁월해서 문장에 신경 쓰지 않고, 독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수려하게 번역된 책을 보면서, 어려운 출판계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문학 서적이 발전하고 있음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책에서 언급한 바대로 표면상으로 볼 때, 모순적인 모습이 많다. 그런 부분을 대표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 사상적으로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을 옹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정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군주정에 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이 책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대표작으로 꼽는 《군주론》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공화정 이론을 《로마사 논고》로 정리하여 발표했는데, 《로마사 논고》는 고대 로마의 역사서인 《리비우스 로마사》를 공화정 이론으로 정리하여 풀어낸 책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를 각각 남겼으니 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마키아벨리를 '기회주의적인 사상가'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피렌체의 정권이 교체되자, 마키아벨리는 정권을 잡은 반대파들에 표적이 되어 직장을 잃고 의도하지 않게 시골에서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공직 취직'을 위해 권력을 잡은 자신의 정적들에게 아부하며,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군주론》이라는 저서는, 피렌체의 권력을 다시 되찾은 메디치 일가에게 헌정하기 위해 작성한 책인데, 이 책을 헌정하는 목적을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새롭게 들어선 신생 정부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상 '노골적인 구직 활동'이었다. 그렇기에 후대인들은 이런 마키아벨리의 이중적인 행동을 '그저 권력만을 쫓기 위해 입장을 바꾸는 굴종적인 인물'로 오해할 여지가 다분했다.

 

세 번째, 그는 진지함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모습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흔히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정치철학자, 정치인으로만 생각하지만, 그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희곡 작가이기도 했다. 《군주론》, 《로마사논고》와 같은 정치적인 저서를 저술했기도 하지만, 《만드라골라》라는 명작 희곡을 만들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진지한 내용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유머를 곁들인 내용이 골고루 담겨 있다. 물론 진지한 모습과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모습은 두루 갖출 순 있겠지만 서로 대조되는 부분이 많기에 현실 속에서 이런 능력을 골고루 갖춘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 마키아벨리의 삶에는 왜 극단적인 모순이 발견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경계인'이었다는 점을 주목했다. 역사에서 나라를 개국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문명이 발달한 노른자 땅에서 태어나기보다 국경지대나 문물의 교류가 활발한 곳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문명이 발전한 중앙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우수하고 뛰어난 교육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타 문물과 사상을 괄시하고 멸시하며 베타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행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역대 왕조에서 정치의 타락은 대부분 이런 중앙 귀족들의 폐쇄적인 관념에서 탄생했다. 반면 경계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기에, 중앙 출신보다 훨씬 현실적인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그리고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 당나라를 건국한 당 고종과 태종 등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나라의 대부분은 경계인들의 손끝에서 빚어졌다.

 

그들은 현실적이었기에,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맹목적으로 내려온 구습을 타파할 수 있었으며,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했다. 마키아벨리 역시 이런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냉철한 현실감각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는 과정에서 꽃피운 결실이다. 그가 태어난 조국 피렌체는 당시 강대국들의 입김에 따라 흔들리는 입장이었고, 그런 가변적인 성격의 조국에서, 마키아벨리는 중인이라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는 다른 귀족들이 기대던 기득권이 없었고, 믿을 것이라곤 오로지 '자신의 능력'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반 없이 오로지 '능력'에만 의존하여 현실을 타파하려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위험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보다 훨씬 개방적인 오늘날에도 기득권 신분 유지의 핵심은 여전히 '세습'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키아벨리의 삶에서 보이는 표면적인 모순은 '능력' 외에는 비빌 언덕이 없는 중인의 처절함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랬기에 나는 그의 모순적인 모습을 읽으면서 분노한 감정보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마키아벨리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고 한다. 앞서 밝혔듯 마키아벨리의 삶은 모순점이 많다. 그래서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기회주의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데, 이는 마키아벨리를 파편적으로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마키아벨리의 삶은 모순으로 얼룩져 있지만, 그의 삶 안에는 한결같았던 부분도 많다. 그의 관심은 늘 '정치'와 '국가 권력'에 있었다. 그는 평생을 정치철학에 몰두했다. 국가를 어떻게 운용해야 바람직한지, 그런 국가 운영에 어떤 정체가 어울리는지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가 고전에 능통하고, 독서에 열중한 이유도, 이런 정치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실용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마키아벨리의 고전 독서는 당대의 흔한 지식인들이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교양의 수단으로 고전을 독서한 것과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경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현실주의' 사상을 극도로 중요시했다. 그렇다 보니 당시를 지배하고 있던 종교 교리로부터 자유로웠으며,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정치는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 사상은 정치사상과 연결되어, 근대 정치사상의 씨앗으로 자리 잡는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이론 연구에만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 공직에 대한 열정을 끝없이 불태웠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칩거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공직에서 꽃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취업을 위해서 적대하던 권력자에게 아부를 하기도 했으며, 시대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음에도 불구하고 저술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야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마키아벨리는 왜 이렇게 한 평생을 정치철학에 몰두했으며, 공직의 일선에서 일하려고 노력했던 것일까. 이는 바로 애국심 때문이다. 이런 그의 뜨거운 애국심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 영혼보다 조국을 더 사랑하노라.' 이 말은 마키아벨리가 죽기 직전에 남긴 문장인데, 조국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식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명문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공직에 있을 때 공익을 우선하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늘 국가의 발전만을 생각했으며, 개인의 영달이나 부귀를 축적하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공직에서 내쳐질 때, 사익을 추구했던 일반적인 공무원들과 다르게, 뇌물이나 수수 혐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듯 그는 한평생을 조국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헌신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런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 위해, 경계인으로써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았던 위인이다. 이런 그를 손쉽게 '기회주의자'로 폄하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의 삶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인간사에 있어 모순과 극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기에 내 안에 있는 모순과 극단에 괜히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이를 편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결론을 내렸다. 마키아벨리는 모순과 극단으로 가득 찼지만, 한편으로는 한결같은 열정과 야망이 있었다.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를 구사한 마키아벨리. 하지만 그의 삶은 전해지는 작품의 문체의 온도와는 다르게 뜨거움 그 자체였다. 그의 변하지 않은 꿈과 열정을 보며, 나의 삶에도 변하지 않는, 열정의 뜨거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正道)'의 설정,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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