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략 - 하 십팔사략 2
증선지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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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하》 권은 상권에 이어 수나라와 당나라, 오대십국을 거쳐 송나라와 요나라, 금나라와 원나라의 중원 통일까지 다루고 있다. 《십팔사략》은 흔히 《자치통감》을 참고로 한 축약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자치통감》이 상고시대부터 오대십국까지 다루고 있다면, 《십팔사략》은 오대십국을 넘어 송나라와 요나라, 금나라와 원나라 통일기까지 다루고 있어서 훨씬 넓은 시대를 다루고 있다. 《십팔사략》은 송말원초의 격동기 시대에 저술된 저작이다. 그렇다 보니 저자인 증선지는 책에서 송나라의 분량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이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와 가장 가까운 시기가 송나라였기에 그런 것 같다.

 

 

대체로 시대사를 서사적으로 다룬 편년체 역사서는 저자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하게 기록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전해지는 책도 많을뿐더러 전해지는 기타 자료들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면, 단군 고조선의 기록이나 삼국시대의 기록보다는 조선시대나 근현대 기록이 많이 전해지기에 이 시대를 다룬 TV 방영물이나 저작들이 다른 시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저자인 증선지의 출신은 송나라였다. 조국 송나라가 오랑캐라고 할 수 있는 원나라에 멸망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기록을 더욱 상세하게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분량을 많이 할애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저자의 노력 덕분에 《십팔사략 하》권을 통해서 혼란한 오대십국의 상황과 송나라와 요나라 금나라의 패권전쟁의 흐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십팔사략》은 조선시대에 아동용 역사서로 폄하되었지만, 조선 초기에만 해도 국왕의 역사교육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십팔사략》을 통독한 인물은 바로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왕권을 세우고, 행정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태종 이방원이다. 사람들은 흔히 태종 이방원을 무인(武人)적인 기질이 다분한 인물로 착각하는데, 실제 역사서에 나오는 태종은 무인이라기보다 문인(文人)에 가깝다. 태종은 고려 말 과거에 급제했는데, 조선 군왕을 통틀어 지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인물은 태종 이방원이 유일하다. 똑똑한 태종은 경연(왕이 공부하는 수업)에 나가 신하들이 권하는 책을 보지 않고, 강습 교재를 자기가 선택했던 군왕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했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태종이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십팔사략》을 선택해서 통독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에 전한다. 똑똑한 태종이 숱하게 많은 역사책 중 《십팔사략》을 골라잡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분량이 적으면서 핵심을 담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태종은 아들 세종과는 다르게 책을 진득하게 정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중요한 핵심 위주로 공부에 있어 효율을 중시한 리더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과서를 펼쳐 놓고 단권화 작업을 마친 뒤 핵심 요약집 위주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인데, 이런 태종의 성향에 가장 안성맞춤이었던 책이 바로 《십팔사략》이다. (물론 태종도 《대학연의》라는 책을 비롯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반복적으로 정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태종의 아들 세종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세종은 뚝심 있게 기초부터 탄탄히 깊게 정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294권짜리 거작 《자치통감》을 경연에서 완독하여,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공부했다.

 

 

신동준 선생님이 번역한 《십팔사략》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번역도 번역이지만 역자의 '보설(輔說)' 부분이다. 아무래도 《십팔사략》은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에 그치고 있어 디테일한 깊이를 기대할 순 없는데, 역자는 그런 단점을 보설을 통해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역자는 친절하고 자세한 해석을 곁들여 《십팔사략》이 놓치거나, 생략하고 있는 부분들을 끄집어내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역자는 보설을 통해 단지 고전을 해석하고 보충 설명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십팔사략》에 나오는 사건들을 오늘날의 현실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역자의 저술을 많이 읽어봐서 개인적으로 신동준 선생님의 사상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는데, 기존 학계의 관점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가설을 주장하기도 하고, 통속적인 견해를 따르고 되풀이하기보단, 기존의 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많이 제시했다. 그렇기에 역자의 보설은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어서 개성적인데, 사람에 따라 역자의 해석이 호불호를 불러올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부고 소식을 접했다. 바로 역자인 신동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기사였는데,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최근 신동준 선생님은 비영리집단 올재에서 《자치통감》 일부를 펴냈다. 올재에서는 《자치통감》을 신동준 선생님과 함께 완역할 계획이라고 공포했는데 알다시피 《자치통감》 완역은 굉장한 노고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래서 심적으로 많이 응원을 했는데, 번역 도중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완역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고 하니 안타까울 다름이다. 또한 나는 신동준 선생님이 번역한 고전들을 대부분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동준 선생님의 철학과 내 생각은 상이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동양 고전 보급에 노력하신 분이고, 기존의 학계의 목소리와는 이색적인 주장을 많이 보여서 깊은 인상을 줬었다.

 

 

그래서 나의 호불호를 떠나서 연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소리 없이 응원했는데,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접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울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토록 열정을 가진 번역자분이 몇이나 있을까. 선생님의 번역을 기다리는 고전들이 아직도 수두룩한데, 이번 《십팔사략》을 끝으로 신선하고 인상적인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동양 고전 애호가로써 너무나도 안타깝다.

 

 

선생님, 열정적으로 번역 작업을 하신 덕분에, 동양 고전에 더욱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못다 한 작업이 있으셔서 아쉽겠지만, 부디 그곳에서는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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