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리자 - 중국판 목민심서
유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스토리텔링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이야기를 첨부하거나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표현한다면 사람들에 공감을 얻어데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며 너도 나도, 적극 스토리텔링을 권유하는데 《욱리자》 역시 이런 스토리텔링을 기본으로 한 고전이다. 저자인 유기는 원말명초의 격변기에 활동했던 인물로,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주원장은 유기를 두고 '한나라를 건국한 한 고조에게는 장량이 있고, 촉한의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는데, 자신에게는 유기가 있다.'라며 굉장히 칭찬했는데, 이는 참모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만큼 유기는 주원장의 통일 정책에 있어서도, 그리고 통일 이후의 명나라의 행정을 정비하는 과정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브레인이었다. 원말명초 시기 유기는 원래 원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모든 왕조의 말기가 어지럽듯, 당시 원나라도 망해가는 과정이었으므로, 행정은 엉망이고 인사 배치는 출신을 따지고, 권력자의 코드인사가 일반적이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유기는 분노하며 벼슬을 내던지고, 칩거하며 군사를 기르며 때를 기다렸다. 그런 과정에서 유기는 자신의 울분을 저술로 표현하였는데 그 저서가 바로 《욱리자》였다고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식자 계층은 언제나 당대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데, 유기가 활동했던 시대는 원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기에 식자들의 비판의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유기는 시대 비판을 넘어 스스로 시대를 개혁하고자 하였는데, 《욱리자》 역시 그런 일환으로 저술된 책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욱리자》를 통해 현실을 노골적,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우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돌려서 현실을 비판했을까?

 

지식인들이 무엇을 비판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방법, 두 번째는 돌려서 비판하는 방법. 첫 번째 방법은 직설적인 만큼 명료하고 깔끔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너무 직설적인 방법이기에 비판의 대상으로부터 집중적인 반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다소 간접적이지만, 첫 번째 방법보다는 위험 부담이 없는 편이다. 아마 유기가 우화를 통하여 현실을 비꼰 것은 원나라의 세도가들의 눈을 피하고자 했던 보신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우화 형식은 앞에서도 말했듯 스토리텔링 기법이기에, 문자를 배우지 않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접하기에도 용이했다.

 

또 생각해 볼 점은 《욱리자》의 우화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이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유기는 비판의 방법론은 직설적인 비판보다 우화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우화의 내용에는 사회를 개선하고자 한 자신의 울분에 찬 감정을 적극적으로 담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욱리자》의 필법에서 나는 유기의 분노에 찬 감정적인 울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런 감수성이 가득한 필법으로 작성된 고전을 하나 더 꼽아보자면 사마천의 《사기》가 떠오른다. 사마천은 유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느꼈던 당대의 모순점, 그리고 인물의 논평을 《사기》에서 가감 없이 감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런 우화 중심의 고전의 대표적인 작품은 《장자》인데, 《장자》와 《욱리자》는 우화를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이나 생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공통점이 있지만 내용상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장자》는 탈 세속적인 성격을 가지는 대표적인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책이다. 따라서 《장자》의 우화는 대체적으로 허무적인 성격을 가지며, 현실의 범주를 초월한다. 그러나 《욱리자》의 우화들은 세속적이며,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욱리자》의 우화들 중에는 현실 초월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이는 표면상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고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들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고 있다.

 

아무튼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강하며, 사회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려 하였던 유기는, 명나라를 개국하는 주원장을 만나 그의 핵심 참모로 등용된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을 개국하여 중원에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린다. 바야흐로 유기가 욱리자를 통하여 꿈꿨던, 문명의 융성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기의 생각대로 새 시대는 흘러가지 않았다. 유기가 희망을 걸었던 주원장은 권력을 독점하자, 측근들을 의심하며 대규모의 숙청을 감행하는데, 여기에는 유기 역시 포함되었다. 결국 주원장의 측근에 질투를 받은 유기는 벼슬을 버리고 정계에 은퇴하여 짧은 노년을 보내다 죽었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독살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유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욱리자》를 통해 보건대 유기는 굉장히 감정적인 성격을 지닌 것 같았는데 굉장히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어쩌면 시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시대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고 불변의 역사의 법칙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건 간에, 우리는 오늘날 《욱리자》라는 문헌을 통해 당대의 혼란했던 시절, 사회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한 지식인의 순수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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