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군서 - 부국강병의 공격경영 전략서
상앙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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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을 읽으면서 전국시대를 종결한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진시황제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황제 이전부터 통일의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커다란 사업이나 정책은 장기간의 기간을 거쳐 역량의 축척을 바탕으로 성사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진나라의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시황제 이전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군주는 대표적으로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진 목공의 시대였고, 두 번째는 진 효공의 시대였다.

 

목공은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국력을 처음으로 만방에 알린 지도자로, 춘추오패에 거론되는 명군이기도 하다. 물론 춘추오패에 다섯 명의 영걸은 사람에 따라 거론하는 인물이 다른데 대체적으로 제 환공, 진(晉 - 천하통일하는 시황제의 진나라와 다른 나라) 문공, 초 장왕, 오 합려, 월 구천을 꼽는데, 여기에 진 목공과 송 양공, 월 부차가 추가되기도 한다. 아무튼 진 목공은 춘추오패로 거론될 정도로 진나라의 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한 인물이다. 목공 이후 진나라를 부흥시킨 인물은 진 효공인데, 이 때 진 효공의 개혁 정책에 앞장서서 진나라를 법치주의로 바꾼 인물이 바로 《상군서》의 저자 상앙이다.

 

진 효공은, 진 목공과 같이 대외적으로 진나라를 크게 넓히진 않았지만, 대내적으로 법가에 입각하여 체제를 정비하여, 내부 통치를 안정화시켰다. 《상군서》는 진 효공의 개혁을 추진한 상앙의 법치주의를 담은 고전으로, 책에서는 당시 상앙이 추진했던 법치 정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직이 흥할 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나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집약해보면 '제도'와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상앙의 《상군서》는 나라의 제도적인 부분을 뜯어고치는데 중점을 뒀다. 법에 근거한 정치, 그리고 군사 조직의 개편은 결국 진나라의 외형적인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들이며, 진 효공은 이런 상앙의 변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수용하였다. 그 결과 진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부국강병에 있어서 훨씬 우위에 있게 되었다.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럼 상앙의 《상군서》는 국가의 외면적인 제도에만 집중하는 부국강병만 다루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상군서》는 표면적으로는 엄격한 법치와 군사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한 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내면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있으며 이를 깊이 있게 이해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상앙은 《상군서》를 통해 말한다. '백성들이여, 법을 지켜라. 그리고 군대에 가서 노력해라. 그러면 너희에게 돈이 떨어질 것이다. 너희가 군공을 세운 만큼 국가는 보상할 것이다. 법을 지키는 자는 떡을 줄 것이요, 법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법만 지키면 너희가 바라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고, 나라에 공을 세우면 그러한 공에 합당하게 신분 상승을 약속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제도적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이익이며, 백성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이기심을 적극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정책에 적용한 상앙의 철학은 당대에 모럴리스트들인 유가 학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백성들은 이렇게 엄격한 상앙의 변법에 불만이 없었을까? 당시의 기록으로는 백성들이 대체로 상앙의 변법을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상앙의 변법은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지배층과 특권 계층인 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귀족들 역시 세습적으로 누리는 특권들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시대 나라는 귀족과 특권 계층은 엄청난 특권이 주어졌고, 커다란 공이 없이도 지위를 세습하며 권력을 누렸었다. 이러한 예를 우리 역사에서 들어보자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왕조의 양반 계층을 생각하면 된다. 그들은 문벌에 의지하여 각종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신분적 특권을 누렸는데, 전국시대의 분위기도 이와 같았다. 아무튼 이런 세습적인 특권이 상앙의 변법 아래에,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나아가 상앙은 커다란 특권을 누리는 귀족들에게 누진세를 강하게 주장하여 귀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진 효공의 입장에서는 상앙의 변법론을 잘만 이용하면 거대 문벌을 이루는 신권 세력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상앙의 개혁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진나라는 상앙의 개혁 아래에서 나라의 하드웨어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리고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진시황제 때에 천하통일을 달성한다.

 

《상군서》를 보면서 상앙의 제도의 장점을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로 상벌이 명확하다는 점, 두 번째로는 배경이나 연줄이 아닌 실력 위주의 인사배치를 지향한 점, 세 번째로는 법을 통하여 국정 정책에 기준을 세웠다는 점, 네 번째로 병농일치의 군사력 확대를 꾀했다는 점, 다섯 번째는 인간의 이익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받아들인다는 점 등이다. 그럼 반대로 단점을 꼽아보자면, 첫 번째로 극단적으로 전제 왕정을 옹호하는 사상, 두 번째는 극단적인 법치주의를 주장하여 사회의 경직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세 번째는 농사를 중시하고 상공업을 멸시하여 상품 경제의 발전을 저해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상군서》에는 유가 학파의 철학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가 학파들은 말만 하면 상고시대의 법과 제도를 계승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오늘날의 시세는 상고시대와는 전혀 다르므로, 오늘날에 맞게 현실성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상앙은 《상군서》를 통하여 약육강식이 빈번한 전국시대에 맞는 시스템은 법을 중심으로 한 법가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사회의 진보는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성사시켰을 때 이뤄진다.'라는 논리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논리는 상고 시대의 복고주의를 주장하는 유가 학파의 사상에 비해 굉장히 융통성 있고 현실을 고려했다는 부분에서 높게 살 만하다.그렇기에 상앙의 논리를 고려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군서》는 뛰어난 고전이다. 중국의 제도는 진나라의 통일을 기반으로 하여, 진의 제도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는데, 그런 시발점이 바로 상앙의 변법에서 시작됐으니, 어찌 보면 중국의 왕조국가들의 틀은 상앙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오늘은 상앙이 살던 왕조 중심의 국가와는 다르다. 제도도 다르고 시민들의 위치와 권리 역시도 상앙의 시절과는 상이하다. 그러므로 상앙이 주장했던 《상군서》를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늘날 시류에 비교해볼 때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러므로 상앙의 철학은 중국 제도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지만, 오늘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상앙이 법치주의를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 중에서, 조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벌이 명확하고, 법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며, 능력을 우선하여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제도의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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