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장궈강 지음, 오수현 옮김, 권중달 해제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동양고전, 그리고 중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자치통감》을 완독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평생 독서에 있어서 목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치통감》 완독이었다. 그러나 그 목표는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치통감》의 방대한 분량 때문인데, 《자치통감》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1362년, 어림잡아 1400년인데, 이런 방대한 시기를 294권 한자로 300만 자 분량으로 정리했기에 읽는 것만 해도 심히 부담이 되며, 설상가상으로 동양고전에 흥미가 없거나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더더욱 접근하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나에게 물었다.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왜 읽고 싶냐고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도 아니고, 중국의 역사책인데다 1400년이나 다룬 저작인데,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 문명이 발전한 오늘날 중국을 다룬 역사서가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확실히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자치통감》은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자랑한다. 최근 완역된 《자치통감》의 한글 번역본은 500~600페이지 양장본 책이 31권으로 구성된 거대한 전집인데,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책을 읽기도 전에 분량에 압도될 법 하다. 굳이 이런 막대한 분량을 읽을 필요가 오늘날에 있을까?

 

《자치통감》은 그냥 대충 정리한 역사서가 아니다. 근대 이전 동양에서는 역사라는 과목이 그저 교양을 위한 과목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정치 공부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었다. 왕조국가에서 지도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서 세워지고 흥망 했던 왕조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귀감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역사는 지도자의 정치 교육 함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다. 《자치통감》 역시 여느 다른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올바른 치국, 그리고 올바른 정치를 역사적으로 정리한 저술이다. 그럼 왜 중국의 숱한 역사 고전들 중에서 《자치통감》을 으뜸으로 꼽는 것일까?

 

《자치통감》은 북송대 사마광이 주도하여 편찬한 저서인데, 당시 송나라 황제였던 영종과 신종의 정치를 돕기 위해 역대 역사서들 가운데 최고지도자가 참고할 만한 사항만을 기록한 책이다. 당시 송나라의 황제 영종은 나라 내외의 문제를 역사 공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지만, 문제는 기존에 편찬된 사서가 너무 방대했다. 중국에서는 원래 하나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생기면 새로 세운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해왔다. 그렇다 보니 송나라까지 내려왔을 때 공식적으로 내려오는 역사서가 《사기》를 필두로 하여 포함하여 17개나 있었고, 이를 권수로 환산하자면 1600권 정도라고 한다. 이런 막대한 분량은 직업이 없는 선비가 읽는다고 해도 꼬박 50년이 걸린다고 하니,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황제의 입장에서는 언감생심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영종은 사마광에게 부탁해서, 지도자의 정치에 도움이 될 만한 책, 그리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요구하였고, 이 부탁을 받은 사마광은 19년 동안 성실한 작업을 통하여 《자치통감》이란 저서를 완성했다. 책이 완성됐을 당시, 영종은 이미 죽었고, 영종의 뒤를 이은 신종이 이 책을 받았다.

 

그렇기에 294권 300만 자 분량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이지만, 1600권의 역사서와 비교해본다면 엄청나게 줄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기존의 사서들을 압축하여 저술하는 과정에서도 역사에 있어 핵심과 필요한 부분은 모두 기록하고,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사안들은 나름의 근거를 들어서 깔끔하게 정리했으니, 후대의 역사가들은 《자치통감》의 기준에 따라 정사와 야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세간에서는 《자치통감》과 《사기》를 비교하며 어느 역사서가 좋은가를 논하기도 하는데, 《사기》와 《자치통감》은 같은 역사서이긴 하지만 역사를 기술한 방식은 전혀 다르다. 《사기》는 역사를 '기전체'라는 체제로 정리했는데, 쉽게 말해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한 역사서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위인전 전집 혹은 인물 사전과 같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치통감》은 역사를 시간의 흐름대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런 기술 방식을 '편년체'라고 한다. 즉 《사기》는 기전체를 대표하는 역사서고, 《자치통감》은 편년체를 대표하는 역사서다. 내용적으로 비교해보자면 《사기》에는 정사와 야사가 섞여있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역사가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문필가였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민가에 떠도는 야사나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사기》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사기》를 두고 어떤 사람들을 역사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자치통감》은 허무맹랑한 야사나 민담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렇기에 《사기》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드물지만, 반대로 《사기》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가 굉장히 뚜렷하게 밝혀져 있다.

 

그렇기에 《자치통감》은 중국 역사를 현실적으로 고찰하여 정리한 핵심 요약서이자,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위기 대처 매뉴얼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역사에 대한 교양과 더불어 실제적인 정치의 올바름까지 제시한 역작이었기에, 중국에서는 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 많은 지도자들이 애독했으며, 우리나라의 성군 세종대왕 역시 이 책을 구하고 완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자치통감》은 왕조 국가의 흥망을 정리한 책인데 과연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지혜인가?'

 

사회제도와 국가의 형태, 신민과 시민의 역할 등등 왕조 시대와 오늘날의 시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사회의 처세법이나, 삶의 지혜에 대한 부분은 왕조 시대나 오늘날이나 크게 변한 부분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정치 철학자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당시 사분오열된 이탈리아반도의 운명을 고민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리비우스 로마사》라는 책을 몰두해서 읽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저자 리비우스는 기원전 59년에 태어나 기원후 17년에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 《리비우스 로마사》는 마키아벨리가 활동했던 시대인 15 ~ 16세기로부터 약 1400년 전에 저술된 방대한 로마사 전집이다. 이렇듯 이름난 현자들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무엇보다도 이전 시대를 기록했던 역사 기록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마찬가지로 《자치통감》 역시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에 저술된 저작이지만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전집이 보관되어 내려오는 데에는 그만큼 값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만 《자치통감》 294권 300만 자를 일반인이 읽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렇기에 《자치통감》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책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는데, 그런 일환으로 최근에 나온 책이 바로 《자치통감 : 천년의 이치를 담아난 제왕의 책》이다. 이 책은 방대한 《자치통감》의 분량을 770쪽 양장본으로 줄인 《자치통감》의 친절한 안내서다. 이 책의 저자인 장궈강 교수는 《자치통감》을 가지고 온라인, 오프라인 강의를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치통감 : 천년의 이치를 담아난 제왕의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읽어본 결과 확실히 책은 어려운 원전을 풀어서 잘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이 책 하나에 담았기에, 《자치통감》에 나오는 2만 개가 넘는 에피소드를 모두 담을 순 없지만, 시대별로 가장 핵심적인 사건과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저 고전을 풀어내고 설명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서양의 정치 제도 비교, 그리고 원전에 나온 제도 등이 오늘날에 중국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읽기에 부담스러운 분들이나, 《자치통감》에 입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고민되는 사람, 그리고 《자치통감》을 완독하고 정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올 한 해의 목표가 바로 《자치통감》 완독인데, 그런 목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치통감》을 개괄하여 읽는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완역본 완독에 많은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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