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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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도서 사이트에서 신간 목록을 보다가 흥미 있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클릭했는데 목차부터 굉장히 관심을 끌었다. 만들어진 진실이라니... 책은 정보화 시대에서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 팩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깊이 있게 고찰하고 있었다. 과거, 옛날에는 정보는 희귀했고, 그랬기에 권력을 가진 집권층만이 정보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져오는 제한된 정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보의 독점은 정보를 향유하는 집권층의 기호에 의해 조작되고 편집되어 내보내졌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제약적이고 편집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달라졌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각종 미디어들이 발전으로 인해 독점된 정보는 개방됐고, 하나의 정보를 여러 시각으로 해석하는 의견들도 다양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정보의 제약적인 공개가 문제 됐다면 오늘날에는 차고 넘치는 정보의 분별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진실》은 오늘날 매우 중요한 덕목을 다룬다. 만연하는 정보 속에서 과연 팩트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에 대해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서 우리는 팩트를 어떻게 편집하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오늘날 개개인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 속에서 사실적인 팩트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책은 이런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는 특정 계층의 시각으로 정보가 쉽게 조작되고 편집되었다면, 개방화된 오늘날에도 과연 여전히 팩트는 편집되어서 공개되는 것일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정보의 개방은 팩트를 확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처럼 여겨지지만, 오늘날 사회를 깊이 있게 관찰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어쩌면 과거보다 오늘날이 팩트의 편집이 더더욱 빈번하게 이뤄지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에게 하나라도 물건을 팔기 위하여 상품의 단점은 언급하지 않고 장점만을 부각하는 미디어 광고. 당선을 위하여 공약용 거짓을 빈번하게 일삼는 정치인. 중립적인 관점의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특정 집단의 이념을 은연중에 드러낸 언론. 입사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스토리텔링으로 멋들어지게 꾸며서 발표하는 취준생. 나의 지갑을 매력적인 떡밥을 동원해서 노리려고 하는 마케터 등등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사실적 팩트보다는 가공된 팩트, 편집된 팩트가 만연하고 있다. 정보의 대중화는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향유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화된 집단의 가공화된 정보에 더욱 쉽게 노출됐다. 이러한 팩트의 공공연한 편집 사례를 대표적으로 언급해보자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최근 스토리텔링이 유행했다. 그냥 날것의 팩트로는 감동을 주지 못하므로, 무미건조한 팩트에 조금의 조미료를 가미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야 한다고 많은 지성인들이 강조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어떤 팩트를 스토리텔링하여 편집하는 과정에는 날조와 과장, 그리고 특정 부분의 축소와 확대 등등이 필연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럼 이런 이미지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안에서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편집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는 팩트의 편집 유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책에서는 그런 팩트의 편집 사례를 유형별로 나눈 뒤 각 사례에 대한 예시를 들어 분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확실히 서양 저자가 저술한 책이라서 그런지 팩트의 편집 사례에 대해 분절적으로 나눠서 깔끔하게 정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분절적인 전개는 딱딱하고 기계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설명하는 개념에 대해 깔끔하게 전달한다는 장점도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저자가 깔끔하게 분류해놓은 예시를 보니 특정 개념을 분절적으로 쪼개고 쪼개서 설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저서가 떠올랐다. (서양의 자기계발서, 철학서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도식화, 분절화하여 논제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에서 다양하게 분석한 팩트의 가공 사례를 다 언급하기는 지면상 무리지만, 어쨌든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이미지화된 현실에 있어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본질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팩트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가공과 편집의 극대화를 하기 위해 팩트를 잘 알아야 하고, 팩트를 소비하는 경우에는 편집과 가공 떡밥에 속지 않기 위해 팩트 구분법을 알아야겠지만, 그럼 과연 날것의 팩트, 그 자체는 현실 속에서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가만 생각해보면 날것의 팩트는 가공과 편집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날것의 팩트를 분별하는 데에도, 날것의 팩트를 구분하는 데에도 결국은 가공과 편집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날것의 팩트는 이미지화된 가공의 팩트가 만연하는 작금의 시대에 그 자체로는 힘을 발휘하진 못하지만, 이렇듯 편집과 가공과의 역학관계 속에서는 가치를 빛낼 수 있는 덕목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예시 위주로 풀어나가는 전개라서 부담도 없었고, 사례들의 분석도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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