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8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ㅣ 이한우의 태종실록 8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이번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태조 이성계의 죽음이다. 사실 태종을 이야기할 때 불효는 단짝처럼 따라붙는다. 왜냐하면 정도전과 방석, 방번을 죽였던 무인정사를 비롯하여, 집권기에 조사의의 난까지, 태조와 태종은 부자관계였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대립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선택한 후계자를 실각시키고, 아버지를 권력에서 끌어내린 점, 그리고 뒤늦게 아버지와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사건은 태종을 불효자로 만들기 충분했으며, 태종 역시도 가뭄이 들 때마다 권력의 정통성에 취약함을 괴로워하며, 아버지와 맞섰던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며 스스로 시인했다. 물론 태종은 '그런 불효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이 된 것에는 하늘의 명이 있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종국에는 정당화하 했지만...
태조 이성계와 태종의 정치적 갈등은 조사의의 난을 끝으로 잠잠해졌지만, 태종은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에게 심정으로 인정받지 못한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 이성계의 진노를 풀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아버지가 불러주고 술을 따라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아이처럼 좋아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던 태종이지만, 아버지 태조의 기분을 위해 태조가 신경 쓰는 절에 있어서만큼은 탄압을 최소화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태종은 시대적 필요에 의해 유학을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웠다. 그렇기에 국왕인 태종은 대소 신민들에게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행동을 그 누구보다도 솔선하여 보여야만 했다.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 중 하나인 《효경》 <천자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님을 공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사랑하고 공격함을 부모님 섬기는데 극진히 한 뒤 도덕적 교화가 백성들에게 전해져 천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천자의 효이다."'
즉 유교적 사회에서 지도자의 치국의 핵심은 효에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태종은 권력을 쟁취하고 얻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노력이 신민들에게 가식처럼 보일까 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어쨌든 태종은 권력을 쟁취한 뒤, 아버지를 무조건 받들려고 노력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칼을 들고 공격하여도(조사의의 난), 아버지의 진노를 감당했고, 아버지가 아플 때에는 항상 곁에 머물면서 수발을 들었다. 팔뚝에 심을 지지고, 자신도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며 말을 달려 위중한 아버지를 향해 달려왔고, 아버지에게 편하게 가기 위해 궐내에 길을 뚫기도 하였다. 그렇게 극진하게 모셨던 아버지가 죽자, 태종은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그런 태종의 포효는 아마 그렇게 노력해도 진정으로 인정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부자간의 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의미했을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나는 태종이 아버지인 이성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권력을 앞에 두고 부자의 생각이 달랐기에 비극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태종은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아마 두 부자가 일반 백성이나 사대부에서 만족했다면 정말 극진한 관계의 부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태조 이성계도 태종 이방원도 권력과 가까이하기 전에는 부자간의 사이가 매우 좋았으니까 말이다. 결국 이런 돈독한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권력 때문이니, 새삼 권력의 무서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대중들은 태종을 두고 불효자로 인식하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역대 왕들을 통틀어 태종만큼 효에 충실했던 군주도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은 집권자 태종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린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없는 사실을 지어서 만든 기록은 아니기에, 이런 태종의 애정 어린 행동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태상왕 이성계의 죽음과 함께,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태종의 삼촌이라 할 수 있는 이화, 그리고 태종의 장인인 민제도 차례대로 부고 소식을 전했다. 조선을 건국했던 중진들이 하나둘씩 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신생국 조선은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