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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 : 리더십을 말하다 - 상 ㅣ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연구센터 국가리더십연구총서 3
진덕수 지음, 정재훈 외 옮김, 김병섭 편집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8년 7월
평점 :
《대학연의》와 유교 철학이 꿈꾸고 있는 이상 국가의 중심은 인간이다. 백성 개개인이 행복지수가 높으며, 도덕과 예가 있는 국가. 내적으로 충만한 국가. 이런 이상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데, 바로 제도적인 역할과 인간의 역할이다. 유교 철학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집중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인간의 역할이다. 한편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의 철학도 이상 국가를 꿈꾸고 있는데, 이들이 꿈꾸는 이상 국가의 중심은 바로 부강이다. 힘과 패권이 강력한 나라, 엄격한 법으로 사회를 단속하며, 끝없는 외적 팽창을 추구하는 국가. 이런 이상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법가의 철학자들은 제도적인 시스템을 주로 강조한다. 법가가 고찰하는 인간의 역할은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둔 것이 아니라, 통치의 제도적인 시스템을 강력하게 구현하는 군주의 역할에만 한정하고 있다.
양자의 철학은 매우 극단적이며 상이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극단적으로 증오했으며, 이런 시각을 《대학연의》 상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어느 쪽이 추구하는 이상 국가가 더 좋은 국가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사상 모두 한계가 있다. 《대학연의》로 대표되는 유학의 치국은 개개인의 행복과 복지가 보장된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한비자》가 추구하는 나라보다 객관적으로 국력이 약할 것이다. 반대로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의 치국은 국가의 부강과 외적인 팽창은 유학이 추구하는 나라보다 훨씬 뛰어나겠지만, 백성 개개인의 행복지수는 유학이 추구하는 이상 국가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가가 추구하는 국가는 극단적인 국가주의 법률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람직한 국가는 외적인 팽창과 발전도 추구하면서 백성 개개인의 내적인 행복도 추구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양자의 국가관은 단독으로 추구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해야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양자의 이상 국가 중에 하나만을 택일하라고 하면, 당연 《대학연의》가 추구하는 이상 국가를 선택할 것이다. 《대학연의》의 이상 국가는 외적인 팽창, 그리고 전쟁을 통한 부강 등등을 권장하지 않기에, 아마 현실에서는 약한 나라일지 몰라도,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 사회를 추구하기에, 개인의 입장에서 행복을 지향하기에는 법가의 이상 국가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졌다. 오늘날 냉정하게 바라볼 때, 고루하고 현실에 맞지 않으며 보수적인 냄새를 풍기는 유학이 동아시아 대륙을 전근대까지 지배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따뜻한 휴머니즘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유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인간적인 냄새를 물씬 느낀다. 반대로 이런 인간적인 따스함을 법가의 책을 통해서는 느낄 수가 없었다.
흔히 유학을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사상만을 쫓는 보수주의적 수구주의적 철학으로 간주하며, 법가 철학을 진보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물론 유학은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원래 유학은 과거 까마득한 상고시대의 모범적인 군왕들의 정치와 행적을 본받고자 하는 취지에서 태어난 학문이므로, 근본적으로는 보수주의와 맥을 함께한다. 반면 법가의 철학은 기존에 내려오는 전통보다 오늘날 현실의 시세에 따를 것을 종용하므로, 전통을 이으려는 유가의 기본 입장과 비교해볼 때 진보적인 색깔이 뚜렷하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단편적인 일반론으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유학과 법가의 철학에 각각 대입 수 있을까. 《대학연의》가 추구하는 이상 국가는 백성 개개인의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복지를 강조하는 입장은 오늘날 진보를 대변하는 입장이다. 반면 《한비자》가 추구하는 이상 국가는 백성 개개인의 행복이나 복지보다, 국가주의적인 태도를 우선한다. 이렇게 놓고 봤을 때 어느 쪽이 더 진보의 이념과 가까운가? 나는 유학이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철학이 국가주의를 추구하는 법가의 시각보다 훨씬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따분하고 지루하게 생각하는 유학의 이면에는 보수적인 성격뿐만이 아니라 진보주의적인 성향도 내재되어 있다.
일제 강점 이후 우리가 줄곧 추구하던 국가철학은 법가의 철학과 닮았다. 외적인 성장을 국가의 목표로 하였고, 그러한 국가주의적 목표 아래 개인의 인권은 처참하게 무시당하는 목적전치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국가가 됐지만, 화려한 겉과는 다르게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국민의 행복지수는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자살률, 도덕적 해이, 갑질 논란, 빈익빈 부익부 등등 내부 문제점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룩한 물질문명의 척도에 비해 정신문화는 엄청 뒤떨어졌다. 이러한 내부적 모순이 정점에 달해 폭발한 사건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이었다.
묻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의 원인을 국가의 행정이나 제도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할지,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의 사람들 개인의 사욕에서 찾아야 할지. 아마 일부 극우주의에 함몰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상식이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열이면 열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 사람들의 사욕이 근본 이유라고 꼽을 것이다. 왜 이렇게 도덕적으로 하차가 있는 인물이 국가지도자가 된 것일까. 우리는 왜 개인의 사욕을 노골적으로 추구한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 것일까. 《대학연의》를 읽으며 생각해본바, 이러한 지도자의 탄생 배경에는 법가가 추구하던 외적 성장 중심의 철학만을 무비판적으로 고수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법가의 국가관이 나쁜 것은 아니다. 행복한 나라는 자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며, 어느 정도는 외적인 토대가 구축되어야 국민 개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법가의 국가관을 무조건적으로, 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사회의 경직성이다. 법가는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발전과 외적인 팽창만을 추구한다. 국가적 목표 앞에서 개인의 행복은 뒷전이다. 이런 극단적인 성장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진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특유의 경직성 때문에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민심의 이반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팽창만을 위해 간과하며 지나쳤던 내부의 모순들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법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진시황의 진나라는 2대를 이어가지 못하고 멸망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한강의 기적을 시작으로 끝없는 물적 성장만을 추구했던 결과가 바로, 정치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의 가득한 촛불 아래에서 나는 격노한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열망은 바로 '인간답게' 살고, '인간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대학연의》 상권에 나오는 인간 중심의 이상 국가 철학을 읽으며, 차가웠던 한겨울에 들어서 더욱 뜨겁게 느껴졌던 촛불의 외침이 떠올랐다. 비정상적인 정부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얻게 됐는가? 국민의 심판은 그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인가? 과연 지금의 정부는 '인간 중심'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부인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할 것이고,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끝이 아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의 단초는 앞으로 들어서게 될 우리나라 정부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고 고민하는 것에서 찾아야만 한다. 우리 정치가 성장만 하느라 어떤 가치를 잊어버리고 외면했는지 깊이 있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성숙한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를 괴롭혔던 정치적 타락과 부패는 더 이상 우리 정부에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모든 고전은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값진 교훈을 전해주기에 우리는 그런 책을 고전이라고 부르고 존중했다. 《대학연의》 상권에 나온 유학 철학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연의》는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라 오늘날 그대로 수용하기란 한계가 있다. 유학과 《대학연의》가 인문학적 뇌피셜로 추측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정리한 인간의 본성론은 현대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의 기준으로 살펴볼 때 결점과 맹점이 많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연의》가 지향한 '인간 중심의 이상 국가관'은 오늘날 외적인 팽창을 추구했던 우리 사회에, 그리고 작금의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류의 시간 앞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