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6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6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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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많고 탈많은 재위 6년의 《태종실록》을 읽으며, 나는 새삼 약소국의 입장을 생각했다. 이해에 태종은 명나라 때문에 체면을 심하게 구긴다.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카리스마가 뛰어난 태종이더라도, 명나라에 비춰보면 그저 변방 약소국의 '패왕'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명을 상대로 국방을 넓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여진 세력을 쉽게 명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명의 사신이 갑질하는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물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함과 동시에, 뒤로는 명의 사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노력했다. 감정적인 그였으나, 역시 냉혹한 국제관계 앞에서는 이성적인 두뇌로 외교에 임한 것이다. 이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정도전의 말대로 태조 시기에 북벌을 했으면 어땠을까.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신생국가 조선이 과연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또 하나는 과연 조선이 요동으로 침략하면, 명에서 싸우던 연왕 세력과 건문제가 연합할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설사 요동을 잠시 차지하더라도, 훗날 중국을 통일한 연왕 주치에 의해 역풍을 맞이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태종은 젊은 시절 명을 방문한 경험이 있으며, 그때 명의 민심과 명의 문화 수준, 국방을 세심하게 관찰했을 것이다. 거기다 훗날의 영락제인 연왕 주치도 직접 만나보지 않았던가. 아마 태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에 두고 '명과 싸웠다간 도리어 조선이 손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과 영락제 주치는 매우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차이라면 태종은 조선의 왕이었고, 영락제는 명의 황제였다. 애초에 물려받은 기반 자체가 달랐으며, 영락제는 명나라의 초절정기를 열었던 전쟁 군주였다. 그랬기에 태종은 자신의 성격을 죽여야만 했다. 만약 태종이 조선 중기의 군주였다면 어땠을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국방이 강했을 때에는 늘 중원이 분열되었다. 만약 태종이 명청 교체기의 분열된 중원 시대에 조선의 군주였다면 분명 조선을 한층 더 팽창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실록 기록을 살펴보면 태종은 그럴 공산이 다분한 군주다. 그러나 이방원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황제가 하나로 통일한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는 중원에 만족하지 않았던 군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과의 싸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그는 조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약소국의 자존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시대의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읽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강대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괴테는 권력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지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쉽고, 통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어렵다.' 이를 내 식으로 풀이해보자면 그렇다. 지배라는 것은 그저 권력을 통해 타인을 부리는 것만을 뜻한다. 통치라는 것은 자신의 권력에 책임을 지고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지배는 쉽다. 그저 타인을 힘으로 억눌러 내 뜻대로 부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통치는 어렵다. 타인을 이끌며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태종 이방원은 얼핏 보면 전자에 가깝다. 그의 권력은 그저 지배만이 전부인 것 같다. 물론 그의 권력에는 지배에 대한 속성도 내재한다. 근대 이전의 권력은 태생적으로 '지배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권력이 지배만을 지향한 것은 아니다. 그의 권력은 지배와 더불어 통치의 속성도 내재하고 있었다. 그는 숱한 정쟁 속에서도 민본을 잊지 않았다. 신하들과 싸우는 도중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대목이 많았으며, 일탈이라 할 수 있는 사냥을 하면서도,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한 권력을 가졌고, 충분히 백성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였지만, 늘 백성을 무서워하고 조심히 생각했다.

 현실적인 정쟁에도 능하면서,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정쟁에 능숙한 지도자이기에 매우 부담스럽겠지만,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민생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지도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태종은 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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