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3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3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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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3년 차가 되자 태종의 정권도 서서히 안정됐다. 3년 차에 들어서자 기본적인 조선의 골격은 모두 정비했다. 문관과 무관을 정비했고 중앙과 지방행정을 대략적으로 정비했다. 대외적으로는 새롭게 들어선 명나라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인증도 받았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풀었다. 따라서 태종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막강했다. 재위 1년 차와 2년 차에서는 공신들을 처벌하지 않았는데, 재위 3년 차 중반이 되자 슬슬 공신들을 처벌하기 시작했다. 태종은 지금까지 공신들이 저질러놨던 비행들을 빠트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이것들은 터질 운명이었다.

 재위 3년까지 살펴본 바, '태종의 정치 스타일'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앞서 고찰했듯 태종은 여러 가지 일을 복합적으로 처리하기보다, 지금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집중하여 처리했다. 재위 1년에 중앙정부의 관직과 문반들을 정비했고, 재위 2년에 무관직과 국방에 관한 부분을 정비했다. 재위 3년에는 지방행정을 손봤다. 재위 1년에는 사관들과 주로 싸웠다. 재위 2년과 3년에는 대간들(언관)과 피 터지게 싸웠다. 싸움의 이유는 바로 왕권이었다. 성리학적 시스템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신권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태종은 이러한 제도를 순순히 용납하지 않았고, 그러한 행동이 바로 대간들과의 싸움이었다. 따라서 왕권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간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쓸데없는 것으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로 정치적 판단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간들과 싸웠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이 있더라도, 대간들을 최대한 배려해 주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대간들은 태종에게 억눌리긴 했지만 자신들의 의견을 꼿꼿하게 주장했다. 사실 태종이 바람직하게 생각한 체제는 이런 것 같다. 사간원과 사헌부 그리고 의정부가 서로 상호 견제를 통하여 견제하는 것, 사간원과 사헌부는 의정부의 집정 대신과 공신들의 비리를 밝히고, 의정부의 정승들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권한이 너무 강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삼권분립처럼 권력 기관 간의 상호 견제를 추구하였던 것 같다. 중요한 점은 그 상호 견제에서 왕은 비교적 자유롭고 초월적인 권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태종의 입장이다. 태종은 군주 중심의 막강한 권력을 추구했지만, 그 권력을 최대한 공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눈길이 갔던 부분은 바로 조운선 34척 침몰 사건이다. 이는 오늘날의 세월호 사건과 비슷하다. 태종은 이 급보를 받자마자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책망했고, 인명피해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논의했는데, 하륜과 사적으로 고민을 나눴으며, 대신들을 불러서 경상도의 세금을 어떻게 운반할 것인지를 깊이 있게 토론했다. 그리고 그런 토의 결과, 경상도의 조운을 폐지하고 육상으로 운송할 것을 명했다.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 셈이다. 재위 3년 말에 경상도에서 육상 운송이 힘들다고 조운으로 바꿔달라 주청이 왔는데, 태종은 불허했다. 여전히 태종은 조운선 침몰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태종이 오늘날 세월호 사건을 봤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구할 수 있었던 인명들을 그렇게 보내버린 정부의 조치를 보고 분명 혀를 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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