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가 알려 주는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 - 모랄리아 선집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은 《우리 아이 온전히 기르기》인데, 원제는 《모랄리아 선집》이다. 따라서 리뷰에서 책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쓰도록 한다.

 

 

《모랄리아 선집》은 영웅전으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작을 정리한 수필집이다. 모랄리아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책은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외에도 작가의 소소한 생각을 표현한 것도 있었다. 원전은 총 80여 편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는 육아와 윤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5가지를 골라 번역했다. 번역된 내용의 제목은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강연을 잘 듣는 법>, <친구와 아첨꾼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화를 다스리는 법>, <운명에 대하여>로 각각의 편명은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들이다.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바뀌지 않는 보편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들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고대 로마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히 엄마 아빠들은 육아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사회에 나가서는 교우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삶을 살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생각하니까 말이다.

책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사실 조금 책을 읽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잔소리로 들릴 법 하다. 나 역시 신선한 내용을 기대하고 책을 열었지만, 뭐랄까 나쁘게 표현하자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다가왔다. 문체 자체는 단조로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 고전들을 인용하고, 그리스의 인물 사례에 비유하며 논지를 전개하기에 마냥 쉽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갔다.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이 책은 그리스와 로마 인물들을 비교하는 열전으로, 서구 역사 고전의 명저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역사책을 저술한 저자여서 그런지, 확실히 그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모랄리아 선집》도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일삼는 내용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실천 중심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플루타르코스는 책에서 플라톤을 비롯한 형이상학적 철학가들의 가르침을 높이 사고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플라톤의 저서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는 분위기와 어조, 그리고 문체와 다루는 영역이 매우 상이하다.

 플라톤의 사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그리스 철학과 형이상학의 정점을 이룬다. 반면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은 그리스의 학풍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그의 사상은 그리스 사상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훨씬 실천을 강조하고 있었다. 플라톤의 언어와 비유는 매우 현학적이며, 그 특유의 언어유희와 중의적인 표현 덕분에 현대 학자들이 해석을 두고 아직도 논쟁 중이지만, 플루타르코스의 문체는 그리스 고전과 문학, 인물들을 비유하며 표현하였지만, 플라톤에 비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글은 현학적인 부분이 있고, 또 숱한 비유가 있지만 그의 글은 플라톤보다 훨씬 친절했으며, 훨씬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나는 이런 차이가 바로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플라톤의 사색적인 부분,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은 그리스 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했다면, 플루타르코스의 행동 중심의 철학과 현실적인 철학은 실천 중심의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 하면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식처럼 떠오르지만 로마 철학자 하면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책을 좀 읽은 사람이라면 키케로와 세네카를 꼽겠지만(애석해게도 플루타르코스는 철학자보단 역사가로 꼽아야 할 듯싶다.), 그들을 로마의 대표 철학자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포스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로마는 사색과 숙고가 아닌 행동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기에 대표적인 이론 철학자를 꼽기가 매우 애매해서 그렇지 않을까.

  《모랄리아 선집》은 국내에 완역된 책이 아니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총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이 책이고 다른 두 책은 천병희의 역본과 허승일의 역본이 있다. 이 책은 영어 중역본이지만 천병희 번역본과 허승일 번역본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과 허승일 역본의 내용은 많은 부분이 겹친다. 허승일의 역본도 이 책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철학에 집중했는데, 자식 교육, 철학 강의 듣는 법, 그리고 아첨꾼과 친구의 구별은 이 책의 내용과 완전 일치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그 외 시를 듣는 법, 덕을 갖추는 법에 관하여 등은 이 책의 내용과 중첩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허승일 역본의 큰 단점은 바로 가격이다 정가가 43000원인데... 완역도 아닌데 이렇게 비싸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선뜻 구매하기 힘든 가격이다. 한편 천병희의 역본은 적당한 가격에 이 책의 내용과도 크게 중첩되는 부분은 없다. 이 책과 중첩되는 부분은 분노에 관하여 밖에 없고 나머지는 수다에 관하여, 아내에게 주는 글, 동물의 이성에 관하여, 소크라테스 수호신, 결혼에 관한 조언 등등이 있다. 따라서 《모랄리아 선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현재로서는 이 번역본과 천병희 번역본 두 개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완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분명 책은 오늘날 현대인이 보기에는 뻔하고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은 기원후 50년 ~ 120년 사이에 저술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책이라면 분명 오늘날에도 의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책의 주장이야말로, 인류를 만성적으로 괴롭혔던 아이 키우기, 공부하는 방법, 교우 관계, 분노 조절에 관한 모범 정답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자,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누구나 다 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따위가 2000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아마 전해지는 과정에 폐기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은 식상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살아남은 고전이다. 그렇기에,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꽤나 의미 있는 조언들을 많이 해준다. 비단 아이를 키우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가장 와닿았던 것이 바로 플루타르코스의 중용사상이다. 책을 잘 읽어보면 플루타르코스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과하면 결국 해가 된다는 생각을 책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사상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완역한 책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윤리관을 볼 수 있는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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