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 소작품집
크세노폰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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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의 대표작 《키로파에디아》를 읽은 뒤, 그의 사상에 대해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보니 마침 《키로파에디아》를 번역하여 출판한 곳에서 《크세노폰 소작품집》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알게 됐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은 크세노폰의 저작들 중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경제학적인 소작품들을 묶어서 번역한 책으로 책 안에 포함된 작품은 《히에론》, 《아게실라오스》, 《라케다이몬의 국제》, 《수단과 방법》, 《기병대 사령관》, 《기마술》, 《사냥술》, 《아테네의 국제》 등으로, 총 8개다. 이 8개의 단편들은 매우 짧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명료하게 서술되어서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우선 정치적 색깔을 지닌 작품은 《히에론》, 《아게실라오스》, 《라케다이몬의 국제》, 《아테네의 국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크세노폰은 자신의 정치사상을 사회 구조적인 측면, 그리고 지도자의 뛰어난 개인적 역량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저작은 《라케다이몬의 국제》와 《아테네의 국제》다. 《라케다이몬의 국제》는 스파르타의 정치제도를 고찰한 책으로, 주요 내용은 스파르타의 현자 리쿠르고스의 극단적인 공리주의 법제 시스템을 찬양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국제》는 위작으로 분류되는 저작인데, 주요 논지는 아테네의 민주정을 비판하고 있으며, 과두정을 최선의 정치제도로 꼽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의 포퓰리즘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데, 논지 전개 과정에서 다소 서투른 모습이 보였지만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꼬집는 느낌이었다. 크세노폰은 법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키로파에디아》와 《라케다이몬의 국제》에서 적극적으로 피력하는데, 그는 법률상 평등주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의 소작품집》에서는 귀족 우위적인 관념을 표하고 있어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정치사상을 개인적 관점으로 고찰한 저작은 《히에론》과 《아게실라오스》다. 두 작품은 모두 실존하는 인물을 내세워 쓴 기록인데, 《히에론》은 플라톤의 대화편과 비슷한 구성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한 담화록이었으며, 《아게실라오스》는 크세노폰이 주군으로 모셨던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의 행적과 위업을 고찰한 기록이다. 《히에론》의 초반부는 지도자의 왕관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후반부는 옳은 지도자의 덕목들을 열거하고 있다. 《아게실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제2의 중흥기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던 아게실라오스를 칭송하고 있는 저작으로, 역시 아게실라오스의 칭찬을 빌미로,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논하고 있었다. 《히에론》과 《아게실라오스》는 크세노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키로파에디아 - 키루스의 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키로파에디아》를 읽을 때 두 작품을 참고 자료로 읽는다면 매우 유용할 것 같다.

 크세노폰은 그리스 최초의 경제학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는 경제학 저서를 두 권이나 남겼는데, 하나는 《경영론》이며 하나는 《수단과 방법》이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경제학 저서는 《수단과 방법》 뿐이다. 《경영론》은 농지 경영에 대한 이론을 정리한 책으로, 작중 등장인물에 플라톤의 대화편과 같이 소크라테스가 나오는 점이 흥미롭다. 《수단과 방법》은 크세노폰이 죽기 전에 쓴 작품으로, 작품의 내용은 조국인 아테네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서 강구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기원전에 기록된 내용 치고는 굉장히 놀라운데, 국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 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하는데 이 부분은 오늘날 해외투자를 떠올릴 수 있으며, 공노비를 활용하여 은광 사업을 대대적으로 유치하자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그뿐 아니라 원정이나 전쟁에 시민들의 투자를 받아서 승리한 뒤 전리품을 투자한 시민들에게 나눠주자는 부분은 마치 국가가 주도하는 주식사업을 떠올린다. 사실 《수단과 방법》은 경제학 저서로 분류할 수 있지만 크게 보자면 정치학의 구조적인 측면을 다룬 저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크세노폰은 군인 출신이었고, 그 역시 당대의 우수한 기마대 사령관을 역임했으므로, 군사 저작도 남겼는데,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책은 《기병대 사령관》, 《기마술》, 《사냥술》이 있다. 《기병대 사령관》은 기병을 이끄는 장교들을 대상으로 쓴 책으로, 그는 여기서 기마병의 포진과 병사들의 관리 등등을 고찰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사령관이 갖춰야 할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반면 《기마술》은 일반 기병 사병들을 대상으로 쓴 책으로, 말을 잘 선별하고 관리하는 방법과 다루는 방법, 기병으로 무장하는 방법 등등 세세한 부분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냥술》은 사냥의 방법을 자세하게 서술했으며, 궁극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사냥을 권면하여 상무정신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을 읽으며 가장 다가왔던 점은 확실히 저자 크세노폰은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저술한 철학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라이벌이라 불리는 플라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두드러진다. 플라톤의 저작이 사색적이고 관념적이며 이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저술됐다면 크세노폰의 저작은 관념적이기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학, 경제학, 군사학, 역사학 등등 그가 집중적으로 고찰한 부분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복무했던 군사 경험을 토대로 병법서를 저술하였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 포함된 군사 저작을 읽어보면 그가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확실히 그의 글은 매우 담백하고 간결했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지 문장 자체도 투박한 부분이 많았다. 이는 라이벌인 플라톤의 저작과 매우 대조적이다. 플라톤의 저작은 매우 현학적이며 고도의 수사법으로 기록된 문헌이다. 따라서 짧은 저작이더라도 텍스트 자체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크세노폰의 글은 담박하고 투박하며,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다. 저자의 논지가 명확하며, 문장의 구조도 꽤 단순하고 명료한 편이라서 글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저작 속에 자신의 의도를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겨놓고 아리송하게 흐려놨지만 크세노폰의 글은 말미에 교훈적인 내용으로 대부분 끝맺는다.

 

이런 투박한 크세노폰의 글이지만, 의외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꼼꼼하고 세심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마술》과 《사냥술》같은 저작에서 그는 말을 고르는 방법, 관리하는 방법, 사냥개를 관리하는 방법, 토끼를 사냥하는 방법 등, 당대의 지적인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가지고 싶지 않은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사냥술》을 읽으며 굳이 토끼를 잡는 비법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고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꼼꼼함과 세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그리스 사회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바로 극단적인 공리주의 사상이다. 크세노폰은 국가의 발전과 집단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크세노폰의 사상은 오늘날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극단적으로 보인다. 물론 개인의 자유는 사회 집단의 공리를 위해 어느 정도는 제한해야 마땅하지만 과연 크세노폰이 주장하는 대로 극단적인 평등과 집단을 위해 극단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내 생각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은 고대 의 정치에서 집단의 공리성을 극단적으로 내세운 국가들이 대부분 위업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키루스의 페르시아, 중국 진시황의 진나라, 그리고 한국에서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사회 제도를 일원화하면서 고대 국가들이 발전했다. 다만 이러한 사상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 이런 정책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전 세계에서 비난의 화살이 몰려올 것이다. 모든 고전은 태생적으로 시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크세노폰의 공리주의 사상 역시도 이에 속하는 듯싶다.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적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생활 모든 부분에서 현실주의는 이상주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과거의 생활 전반에는 현실주의보다 이상주의적인 관념이 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서양의 전통 지식인층은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플라톤을 크세노폰보다 우위에 뒀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전통은 이어져왔으며,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이상주의가 만연한 시대에서 크세노폰은 현실을 바탕에 두고 현실에 근거를 둔 저술을 남겼다. 그는 자신을 추방했던 아테네의 시민들을 위해 '무언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저작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투박하고 서툴렀다. 플라톤에 비해 세련되지도 않았다. 《사냥술》에서 그가 고백하듯, 그는 글을 쓸 때 쓸데없는 수사에 집중하기보다, 현실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크세노폰은 궤변이나 가르침보다 자신의 행위와 업적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저술의 표현이나 수사보다 내용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행위적 업적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던 것 같다. 소키루스 대왕을 따라 페르시아의 권력 투쟁에 용병으로 참전한 것은, 그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키루스 대왕의 모습을 소키루스에게 기대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거품으로 끝난다. 소키루스는 키루스 대왕처럼 자제력이 뛰어나고 품성이 뛰어난 인물이 아닌 너무나도 속물적인 인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정 도중 소키루스는 죽었다. 그 뒤 만인대를 이끌고 어려움 끝에 그리스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고국인 아테네의 적인 스파르타의 군주를 섬겼으며, 그로 인해 고국으로부터 추방령을 받았다.  그는 스파르타의 아게실라오스에 기대를 걸었고 그의 참모로 활동했지만 뛰어난 능력에 비해 커다란 정치적 업적은 이루지 못하고 아게실라오스는 죽음을 맞는다. 아게실라오스가 죽은 뒤, 그는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키로파에디아》의 저술에 투영했다. 이렇듯 행동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인생은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역사소설 《키로파에디아》의 저술로 끝이 났다. 

 세월이 흘러 그는 자신의 경험과 실패를 바탕으로 저술에 몰두한다. 오로지 좋은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펜을 잡았다. 그는 플라톤처럼 이상과 관념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현실 그 자체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추가하여 글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후대의 지식인층은 이런 크세노폰의 글보다 플라톤의 글을 예우했다. 그렇게 그의 저술은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그러한 시각은 시대를 거듭하며 쭉 이어졌다.

 현실과 이상의 대립은 역사를 관통하는 주요 테마다. 이상과 현실이 대립하면 현실이 이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앞서 살펴봤듯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대립에서 역사는 플라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구 근대 철학에서 대세를 이뤘던 학파는 바로 합리주의를 기초로 한 데카르트 - 칸트(물론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했지만 기본적인 골자는 합리론에 기초한다.) - 헤겔의 계보다. 이들은 세상을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기에 어떤 면에서 플라톤의 사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철저하게 경험론을 바탕으로 한 베이컨의 사상은 합리주의의 데카르트에 비해 명성이 떨어진다. 오늘날 근대 철학의 아버지를 꼽으라면 대부분 '데카르트'를 꼽지 '베이컨'을 꼽진 않는다. 여기서도 이상은 현실을 이겼다. 서구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양 사회는 사상적으로 서구보다 더욱 보수적이었다. 유가 철학은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하나의 관념이었고, 동아시아는 이러한 이념의 유학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조선은 이념적인 성리학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다가오는 근대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나라가 아니었는가?

 오늘날에는 이념이나 사상 관념보다 현실이 앞선다. 너무 현실을 앞세우기에, 개념 없는 속물주의가 만연한 것이 오늘날의 문제점일 정도로 사람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만약 크세노폰이 오늘날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아마 그는 커다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지고 있던 실용주의적 마인드는 오늘날에는 매우 높이 사는 덕목이다. 아마 현대에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환생했다면 플라톤은 저명한 대학교수가 되어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이겠지만, 크세노폰은 사업이나 경영 등등에서 활동했을 것 같다. 플라톤은 전문적인 연구 논문 등등을 저술했겠지만 크세노폰은 자신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계발서나 리더십 에세이 등등을 저술했을 것 같다. 플라톤은 복잡하고 진지하며 어렵고 화려한 표현을 했겠지만, 크세노폰은 직설적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소위 '꿀잼'의 서술법을 보여줬을 것이다. 《크세노폰 소작품집》을 읽으며, 나는 그런 21세기의 크세노폰의 모습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가 저평가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그가 시대를 잘 못 타고나서가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크세노폰은 학계로부터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의 책은 원전 번역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주류 철학자들의 번역 역시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 크세노폰의 저작을 번역할 여유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를 전통적으로 폄하해 온 시각은 거둘 필요가 있겠다. 자신을 추방한 조국을 위해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끄적인 글이 이토록 후대에 저평가 받는다는 것을 무덤 속에 그가 안다면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투박한 글이더라도, 그의 글은 나름 진솔했고 전문적이며, 플라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위치를 다시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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