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과 하강, 침잠과 부상. 아직 부력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도담은 부력이 있으면 다 물에 떠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가라앉는 거냐고 창석에게 물었다. 부력에는 가만히 있으면 뜨려고 하는 성질의 양성 부력, 밑으로 가라앉는 음성 부력이 있다고 설명하면서창석은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인 중성 부력이 스쿠버 다이빙의 기본이라고 했다. "중성 부력에서는 무중력 상태처럼 자유롭지. 아빠는 도담이가 중성 부력에서처럼 평온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 P13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 P32
"벌을 주자." 도담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어떤 말은 혀를 통해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의식을 붙들어 매고 돌이킬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자욱해진 물안개 너머로 가파른 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고 댐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물을 토해 내고 있었다. 도담은 기이한 압력에 짓눌리는 기분이었고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고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곧이어 물안개가 두사람을 집어삼켰다. 가까이 서 있는데도 서로가 보이지 않을정도 였다. - P39
"도담아,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미래만 생각하자. 미래만." - P85
연애라는 건 상대방이라는 책을 읽는 거라고, 그렇게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거라고, 태준은 말한 적이 있었다. 도담은 자신이 펼치고 싶지 않은 책,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책 처럼 느껴졌다. 전부 말뿐이었다. - P99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도담이 외롭다는 것을 감지하고 남자들은 어디선가 나타나 접근했다. 시체를 뜯어 먹으려고 강바닥에 숨어있다 모여드는 다슬기처럼. 도담은 그들과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에게 쉽게 빠졌고 쉽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도담은 고백해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 P100
젊음으로 가득한 캠퍼스에서 해솔은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미 아주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강의하는 노교수보다도 더 죽음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것처럼 구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라면 해솔은 젊음을 잃어 버렸다. - P107
해솔은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언제 갑자기 땡하고 터져 버릴까 봐 아슬아슬하고 벅찬 기분이었다. 그간 겪은 큰 불행에 익숙해져서 담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가 쪼그라든 것 같았다. - P128
"나는 모든 가능성을 살 거야. 여행처럼 신나게 살 거고, 모든 걸 경험해 볼 거야." - P131
도담은 해솔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해솔이 외로우면 안 되는데, 해솔은 듬뿍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나는 어떻게 해솔에게 사랑을 주나. 도담은 다시 슬퍼졌다. 예지가 말한 것처럼 나는 해솔과 어울리지 않나? 해솔에 비해 한심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 해솔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해솔이 자신처럼 같이 비틀거리고 엉망이 되었으면 했다. - P137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 P159
외로웠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도담은 승주의 다정함에 끌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기에. 도담은 더 이상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 P192
"도담 씨, 그런 얘기 들어 본 적 없어? 7년인가 지나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가 교체된대. 10년이면 도담씨 온몸의 세포가 교체된 거야. 그러면 이제 도담 씨도 그 사람도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 P227
"한 번 깨진 관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하는 건 비유일 뿐이야.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는 깨진 게 아니라 조금 복잡하게 헝클어진 거야. 헝클어진 건 다시 풀 수 있어." - P252
"불에 휩싸인 네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꼭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처럼 느껴졌어, 구조 신호를 보내는 사람처럼." - P255
"두려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해솔과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도담이 말했다. 도담의 머릿속엔 급류에 휩쓸려 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나쁜 쪽으로 삶이 반복되리라는 불안과 공포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다른 방도는 없었다. 불안에 맞서 서로를 안아야 했다. "지금 너는 행복이 두려운 거야." 해솔이 도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도담의 눈을 바라봤다. "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 P256
왜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지못했을까. - P268
도담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역시 내게는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구나. 나는 불행한 사람인데, 내가 감히분에 넘치게 행복하려고 했구나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도담은 표독스럽게 하늘을 노려봤다. 마치 다시 행복해지려는 희망을 품기만 하면 짓밟으려고 벼르고 있던 것 같은 하늘을. 얼마만큼 더 할 예정이냐고 하늘을 향해 욕을 퍼붓고 싶었다. 해솔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시간들이 도담의 몸과 마음을 전부 적실듯,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 P273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 P290
도담은 여유롭게 헤엄치며 웃었다. 자유롭다.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했던가. 수면에 나와 눈부신 햇살을 받으니 살아 숨쉬는 그 자체로 좋았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있을지모를 미래에 목매지도 않으면서 진정으로 살고 싶어졌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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