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도시에 살고, 너구리는 땅바닥을 기고, 덴구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헤이안 천도 이래 이어져 내려온 인간과 너구리, 덴구의 삼파전.
덴구는 너구리에게 설교를 늘어놓고, 너구리는 인간을 호리며, 인간은 덴구를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한다.
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렇게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보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나는 이른바 너구리지만, 일개 너구리임을 부끄러이 여기며 덴구를 아득하게 동경하고, 인간 흉내도 무척 좋아한다.
따라서 내 일상은 눈이 팽팽 돌 지경이라 따분할 틈이 없다. - 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