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란, 외롭지 않았던 적이 있는 자만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라는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 P52
이별을 확신하던 날, 나는 화장실에 숨어 몰래 울었다. 열여덟살 외톨이 소년이 울었다. 두려워했지만, 증오 했지만, 나를 통째 거덜내버린 놈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존재였다. - P57
지나간 며칠은, 태어나면서부터 줄기차게 재수 없었던 인간이 맞닥뜨린 좀 더 재수없는 날이었을 뿐이라고 죽겠다는 생각은 이쯤에서 자고 질기게 살아남아 내 신세가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지켜보자고. - P64
그들의 비행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발밑에서 역동하는 것은 눈부셨다. 자유였다. 하늘처럼 파랗고 7월의 태양보다 찬란한 자유. 그들의 자유, 그들만의 자유. - P158
시간은 바다처럼 존재하고 사람들은 폐허의 바다를 표류하는 유령선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쯤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들은 알 길이 없다. 의미도 없다. 자신이 서 있는 지점과 시간의 흐름이 곧 삶이 되는곳은 반대편 세상뿐이다. 미래가 있는 인간들이 사는 곳, 시계의 숫자판이 의미를 가진 세상. 승민을 미치게 하는 시간은 그쪽 세상의 시계에서 소모되는 시간이었다. 오래전 신이 내게서 거둬 가버린 시간이었다. 어쩌면 애당초 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 P164
복도 바닥을 내려다보며 터벅터벅 걷노라면 기이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불쑥불쑥 목젖을 치받던 삶에 대한 분노도, 아버지를 향한 원망도 견딜 만한 서글픔으로느껴졌다. 미래에 대한 절망이나 운명에 대한 두려움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걷다가 흡연실에 들러 담배 한 대 물면, 낙관이 강아지처럼 기어들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인생이 별건가. 이래저래 살다가는 거지. 경보 선수의 끝없는 경주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했다. 견디고 잊어야 할 일이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이라고. - P181
승민은 보호사나 진압 2인조에게 소리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수 있을 것이라고. - P264
"날고 있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야. 어쩌다 태어난 누구누구의 혼외자도 아니고, 불의 충동에 시달리는 미치광이도 아닌, 그냥 나.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 바로 나." - P286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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