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아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9
손서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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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뜨거운 햇살을 기억한다. 낮엔 숨막힐 듯이 쪼아대던 볕. 그늘만 들어가면 또 살만하네, 여기가 천국이네 하며 마주하던 그림 같은 광경들. 느즈막하게 아침을 먹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꼭 중간에 숙소에서 한잠 자고 나왔던 기억. 밤엔 언제 그랬냐는 듯히 선선한 바람과 함께 유럽 각지에서 휴양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넘쳐나던 섬의 열기. 누구나 한 번 쯤 머물고픈 이 곳이,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시리아에서 건너온 소년, 마이크는 크레타 섬에 안정적으로 살 기회를 찾아 왔다. 이 책에서 그가 만나는 관광객의 반응처럼 나 또한, '시리아'하면 내전, 난민, 그리고 언제 바다로 빠질 지 모르는 보트를 타고 위태롭게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모습들만 떠올랐다. 마이크가 여기서 바란 것은 오직 한 자리! 호텔 웨이팅 스태프로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음식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그는, 관광객들을 찾아다니며 호객행위에 나선다. 남다른 관찰력과 친절함으로 관광객에게 접근해 음식점, 수영복 가게 등으로 인도해 보고, 비지니스의 꿈도 키워보지만...... 타지에서의 삶은. 특히 난민 신분으로서 타지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 하나뿐인 긴 바지를 드라이어로 급히 말리면서도 비지니스의 기본은 단정함이라는 철칙을 세우는 마이크. 그가 한 때 예뻤던 엠마를 만나면서 기이한 일들이 생기게 된다.

엠마는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를 잃고, 한때는 예뻤던 몸과 얼굴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아이였다. 하지만 10대가 되어 뚱뚱해지기 시작하자, 어울리던 친구들,아버지, 새어머니에게도 버림받은 기억을 안고 있다. 그녀에게 '뚱뚱함'이 정말 문제였을까? 혼자 남은 엠마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소년, 마이크에 이끌려 식당에 들어오지만 다른 손님에 밀려 여전히 외면받는 현실에 자신을 유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유령은 누구일까?

마이크는 남았다.

마이크는 있어도 되거나, 나가야 하거나 하는 식으로 호명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마이크는 유령아이였다.

부겐베리아에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유령.

p.60


남의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아 산다는 건

마이크가 보기엔 판타지였다.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 버티는 것.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p.103


  마이크가 아이들과 함께 여행온 카티야라는 여성의 가족을 만나, 그가 하는 호객행위가 노동력 착취라며 제대로 살고 싶지 않냐는 말이 그의 맘 속에 걸린다. 남들처럼 학교도 가고, 주말도 즐기는 삶. 그걸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니까. 바뀌지 않는 것, 안 되는 것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마이크가제대로 살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가 불우한(? )이웃이라는 범주에 그들을 가두고 단순히 불쌍히 여기고 잠깐의 관심으로 선행을 베풀며 전시하는 것. 그것으로 우쭐해져 역시 살만한 세상이야 하고 단정지었던 순간, 누군가는 또 한 번 좌절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들의 국적획득은 커녕 임시 거주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종교며 정치적 상황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우리가 사는 영역에 발딛지 못하게 하는 현실도.

유난히 되는 일 없이 공치는 날, 그는 엠마를 다시 만나 호텔로 초대를 받는데, 그가 기대했던 따스한 차 한 잔 대신 돌아온 것은 폭력과 폭언. 나라도 없고 부모도 없고 집도 없는게... 그렇다. 마이크는 꿈도 있고 계획도 있고 미래도 있고 성실하게 일할 손과 다리도 있고~ 최악의 상황을 맞아 삶의 끝자락까지 바란다는 이들보다 자신이 크게 기울지 않는다고 저항해 봤자. '제 나라가 없는 거'. 문제는 언제나 거기서 벌어졌다.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그어진 선. 그가 유령처럼 맴돌 수 밖에 없는 이유. 정규직으로 채용되려면 잘 보여도 모자랄 마당에, 새로 온다는 사장 눈에 띄면 안되는 이유. 여기저기 차이다가 공처럼 사라져야 했던 이유.

도움이 필요하다고 살려 달라고.

그걸 입 밖으로 꺼내야만 알아들어.

상대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걸 우린 모두 잃고 말았어.

다른 건 몰라도 그런 자질 하나씩은 가지고 살았어야 하는거 아닐까.


  마이크에게 주방의 빵 한 조각이라도 챙겨줬던 마리아 아줌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대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제도와 관심.

미래인의 청소년 소설들은 지금껏 내가 취향껏 골라온 청소년 소설과는 뭔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 미래인 서포터즈를 하며 만난 이번 책도 '난민'소재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개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뒤집히는 상황에서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요청하지 못하는 현실. 죽기살기로 뛰쳐나온 곳에서도 유령처럼 맴돌 수 밖에 없는 마이크의 처지에서. 그가 만나는 관광객들의 바닥과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그의 현실이 마주하는 구성도 흥미로웠다.

  인터넷 검색으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음식점의 이름인 꽃,부겐베리아를 찾아보았다. 부겐베리아 나무는 여름에 꽃을 피우고 흐드러진 분홍색 꽃도 화려하고 볼 만 하지만 무엇보다 넝쿨진 그늘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화려한 색상이 딱 그리스의 푸른 바다와 쨍한 볕 아래 어울린다. 완전한 햇빛이 필요하고 추위에 약하다는 이 꽃이 나무에 달렸을 땐 아름다운 꽃. 떨어지면 쓰레기나 진배없다는 마지막 장면, 마리아 아주머니의 말에서 나무에 꽃이 매달려 있다는 것. 

  이 추운 겨울에 '그저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글은 미래인 써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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