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속 200km로 달리는 대형 블록버스터

 

일본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작가 이사카 고타로가 전작인 <골든슬럼버> 이후 3년만에 <마리아비틀>을 내놓았다. 작가는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으로 도쿄에서 모리오카까지 질주하는 신칸센 하야테(질풍)를 배경으로 열차에 오른 사람들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특유의 재기넘치는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생사를 헤매는 아들을 위해 총을 다시 잡은 전직 킬러 기무라,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끝없는 악의가 공존하는 소년 오우지(王子),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신뢰하는 기묘한 킬러 콤비 밀감과 레몬, 그리고 지독하게 불운한 남자 나나오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소설은 이 네명의 나레이션이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거기에 덧붙여 독살전문 킬러인 말벌, 무식한 양아치 늑대. 전직킬러들인 기무라의 부모와 청부중개업자 마리아, 밀치기전문킬러 나팔꽃, 학원강사 스즈키까지 다양한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의 구성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밀도 있고 치밀한 구성 또한 <마리아비틀>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언뜻 보면 그저 기상천외하게만 느껴지지만 알고 보면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이사카 고타로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신칸센에 모인 이들은 아주 사소한 우연, 사소한 실수, 사소한 사건들이 겹치면서 점점 서로의 존재를 눈치채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커다란 음모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물론 독자들도 그냥 넘겨버렸을 사소한 요소들이 이리저리 맞물리며 중요한 복선의 역할을 하는 절묘한 구성은 후반으로 전개될수록 탄성을 자아낸다.

 



신칸센 하야테라는 독특한 배경은 <마리아비틀>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 안, 게다가 역에 정차하기 전까지는 내릴 수도 없는 밀폐된 공간. 이사카 고타로는 신칸센이라는 독특한 무대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자신의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재탄생시켰다. 열차 내부에만 존재하는 인물, 장치들을 적극 활용하여 신칸센을 말 그대로 최고의 속도감을 선사하는 블록버스터 그 자체로 만들어낸 것이다. 데뷔 15주년을 맞이하는 이사카 고타로의 모든 것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는 <마리아비틀>은 이사카 고타로의 골수팬도 또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다. 먼저 읽어본 사람들이 그만이 쓸 수 있는 가장 이사카 고타로다운 작품이란다. 독자들이 ‘엔터테인먼트 소설’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 <마리아비틀>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시속 200킬로미터로 정신없이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스피디한 진행은 한여름 불더위를 잊게할 만큼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한편의 블록버스터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질풍(하야테)처럼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작가의 물오른 감각적 글쓰기가 못내 부럽다. 

 

피서지에 들고갈 만한 책 <마리아비틀>

 



 

한때 위험한 일에 몸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순한 알코올 중독자 기무라 유이치가 노리던 원수는 14살의 중학생 왕자. 성이 오우지(王子)라 왕자로 불리지만 순진하고 모범생같은 외모와는 달리 교활한 두뇌와 사악함으로 무장해, 또래 아이들을 거느리고 수족처럼 부리는 말그대로 왕자다. 이 왕자가 기무라의 어린 아들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중상을 입힌 것. 왕자가 신칸센에 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왕자를 노리러 왔지만 오히려 전기충격기로 반격을 당해 왕자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만다. 

어둠의 세계 거두 미네기시의 아들을 구해내어 무사히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은 밀감과 레몬. 무사히 구출해서 신칸센에 태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미네기시의 아들이 죽어있었던 것. 거기에 함께 가져오라던 돈가방까지 사라지면서 밀감과 레몬은 신칸센을 이잡듯 뒤지기 시작한다.

청부중개업자 마리아로 부터 밀감과 레몬이 가지고 있는 가방을 빼내 오라는 임무를 받은 나나오. 무사히 탈취하여 정차한 역에서 내리려는 순간 원수 늑대와 맞닥들여 내리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달리는 신칸센에 몸을 실고 함께 달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 정체모를 킬러 말벌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나팔꽃의 이야기. 그리고 총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눈하나 꿈쩍않는 학원 강사 스즈키. 시종일관 뭔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로 나중에 반전을 터트리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했던 스즈키는 알고보니 전작 <그래스호퍼>의 주인공이었다. 나팔꽃, 말벌 등도 모두 전작에 등장해 활약했던 킬러들. 후속작인 <마리아비틀>부터 읽게 되었지만 읽고나니 상당히 매력적이고 찰진 이야기들이라 아직 접하지 못한 <그래스호퍼>도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중심, 그 폭풍의 눈에는 사악함과 악의로 똘똘 뭉친 오우지가 있다. 남들의 불행과 절망을 즐기는 이 어린 왕자는 신칸센 내부에서 벌어진 거의 대부분의 사건과 싸움을 부추긴다. 그의 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문장이 있다.

 

'타인의 인생을 사정없이 으깨어 거기서 흘러나오는 과즙을 마신다. 그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 p.436


독자들은 역자후기에서 옮긴이 이영미씨의 말마따나 시종일관 얼른 누가 이 왕자 좀 처리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잔망스럽고 요망한 것이 어찌나 꼴보기 싫은지. 잔인한 킬러들이지만 나름 순수하거나 담백한 성격을 가진 여타 등장인물에 비해 나이 어리고 순수한 외모를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사악하며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것마냥 소름끼쳤던 인물, 왕자. 왕자에게 총구가 겨눠질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빵~ 하고 쏴버렸으면 속시원하겠다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필시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와 사악함의 화신이 왕자로 그려진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결코 표출해서는 안되는 악의, 그 존재에 몸서리치고 징그러워 하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는 기생충같은 그것. 시작과 발단은 기무라였고, 나나오나 밀감과 레몬 모두 비슷한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도 그렇고 이 <마리아비틀>의 주인공이자 이사카 코타로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인물은 바로 이 왕자가 아닐까 싶다. 마리아비틀은 무당벌레다. 주로 진딧물을 잡아 먹고 산다. 결국 악의 화신 오우지는 진딧물 신세가 되고 만다. 그것이 작가가 마리아비틀을 제목으로 단 이유인듯 싶다. 단 한가지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작가의 자의적인 결말에 독자들은 무조건 호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좀더 시원한 복수를 기대하는 사악한 나의 마음이 문제인가;;;;? 아무튼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책에 몰입시켜준 작가에게 감사를;;;

작가 소개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郞·)는 1971년 일본 치바 현에서 태어나 도호쿠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동시대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주목하는 작가이다. 1996년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에서 <악당들이 눈에 스며들다>가 가작으로 뽑혔으며, 2000년 <오듀본의 기도>로 제5회 신쵸 미스터리클럽상을 수상,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이미 <러시 라이프>, <사신 치바>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 탄탄한 독자층을 갖고 있으며 <마왕>을 통해 일본 문학평론가와 편집자들에게서 일본 문학의 계보를 잇는 진정한 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문제 의식을 심오하게 그려내기보다는 그만의 상상력으로 재구조화한 소설로 승화시킨다. 그는 지금, 가장 뜨거운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젊은 작가의 한 명으로 이 시대 가장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마왕>에서 이사카 코타로는 일본의 극우주의와 파시즘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믿음이라는 새로운 코드와 부딪히게 하면서 초능력이 있는 형제들이라는 색다른 설정으로 그 재미를 더했다. 그의 작품들은 이처럼 "사람을 제물로 동굴에 바치는 풍습이 있는 마을" 등 색다른 설정과 엉뚱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 관습, 사람들의 비뚤어진 의식과 같은 문제점들을 위트있게 지적함으로써 그 매력을 더한다. 때로는 사실감 없게 느껴지는 그의 이야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하며 그만의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 속에 던져진 특이하고도 평범한 우리의 삶에 대하여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2003년 <중력 삐에로>, 2004년 <칠드런>, <그래스호퍼>가 각각 나오키 상 후보에 선정되었다. 2004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단편 <사신의 정도>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 <골든 슬럼버>로 제5회 일본 서점대상과 제21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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