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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돌아, 산책 갈까?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라미 지음 / 미메시스 / 2019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서서 서평단을 신청하여 받게 된 책.
라미 작가님은 식이장애를 다룬 전작인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가
책으로 나오기 전, '롱롱 데이즈'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연재될 때 알게 되었다.
연재될 당시 만화를 너무 인상 깊게 보아서 책이 나왔을 때도 고민 없이 샀던 전력이 있는데
이렇게 또 반려견인 은돌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주셔서ㅠㅡㅠ
팬심으로 바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
마침 우리 집에도 강아지 친구가 있어서 '잘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슬프고 아름다운 만화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라미 작가님께서 키우던 반려견 은돌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려낸 이야기.
개를 좋아하거나 키우는 분이라면 마음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경험으로 마음 아파하는 사람에게
이 책만큼 위로가 되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아마 없을 것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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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의 단단한, 예쁜 책표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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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이렇게 귀여운 은돌이 그림을 그려 보내 주셨다ㅠㅡㅠ
고맙습니다...♥
은돌이 너무너무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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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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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너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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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너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이야.
돌아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기다림은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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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이어서
그렇게 매번 반겨 줬구나.
한없이 긴 기다림.
한없이 깊은 그리움.
끝도 모를 시간.
하지만 끝은 분명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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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
나에겐 끝이 있고
그 끝엔 네가 있을 거라는 거.
언젠가 시간도 공간도 구분이 없어지는
<그곳> 긔고 <그 순간> 만날 수 있다면,
그때 우린 함께 있겠지.
서로 그것을 알 수 있겠지.
나도 생에 끝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데
이렇게 보니 또 그 정도와 무게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인트로부터 너무 슬프고 또 슬퍼서
'아... 어떡하지, 어떡해...'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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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마지막 산책이 될 줄은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 장난이 될 줄은 몰랐다.
맞다.
그래서 늘 '마지막'의 자세로 해야 하는데, 그래야 마땅한데.
쉽지가 않다.
그래도,
그래도 자꾸만 상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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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너무 슬픈 일을 당했는데 괜찮아 보인다면,
그의 목울대를 보라고 하고 싶다.
끊임없이 슬픔을 삼키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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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은 그저 한낱 자기 연민이 아닐까….
죄책감의 전시일까 봐
난 네가 그립다는 글 한 줄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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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곰돌이 인형 노란 멍이와 함께 은돌이의 세계로 들어온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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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돌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은돌이가 좋아하는 정도에 비례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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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에서 가장 큰 존재들은 다름 아닌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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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잃고 나서는 내 세상의 절반이 생기를 잃었어.
이렇게나 커다랗고 이렇게나 가득히
내 세상을 메우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
그런데 너의 세상도 우리로 가득 차 있구나.
여전히 우리는 같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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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고 나서
온 세상이 네가 되었어.
따듯한 햇살에도 네가 있고
작은 돌멩이에도 네가 있어.
모든 것이 너를 닮아서
어디를 보아도 네가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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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부재로 인해 언제나 너를 생각해.
정말로 잊어버린 것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니까.
슬픔이 내 안에 있는 한 너는 내 안에 함께 있어.
그러니 이 슬픔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가 따로 적어둔 문구.
'슬픔이 내 안에 있는 한 너는 내 안에 함께 있어.
그러니 이 슬픔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슬프지만 외롭지 않게 해주는
소중하고 따뜻한 슬픔도 있다.
와, 그리고 은돌이를 생각하는 이 마음은 정말 사랑 아닌가요.
시를 한 편 읽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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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몰티즈인데도…
은돌이랑 정말…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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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단 한 번뿐이라고.
너는 두 번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감각으로 체화한 것은 처음이었지.
삶에 좀 더 충실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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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미리 걱정하지 말기.
매일 좋아하는 일 하기.
세상을 겁내지 않고 사랑하기.
강아지를 키우면서 배우는 것들은 정말로 많다ㅎ_ㅎ
은돌이는 산책하다가 다른 개에게 물려 크게 다치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긴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나 기적을 보여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가족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병세가 악화되어 갔던 은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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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려면 최소한 두 명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참 공감이 갔다.
돈이랑 시간, 에너지가 무척 많이 든다.
이것들을 개에게 충분히 쏟을 수 없다면 키우지 않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의료 보험이 꼭 적용 되었으면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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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의 삶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반려>라는 말이 무색하게 실상은 참담하다.
개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것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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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돌이를 사랑하면 할수록
은돌이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
은돌이에게 받은 사랑에 비하면
내 사랑은 보잘것없다.
세상을 많이 원망하고 냉소하면서 살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은돌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겁내지 않고 세상을 마음껏 사랑해 보려고 한다.
은돌이가 살다 간
은돌이가 사랑한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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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나를 한 톨도 남김없이 세상에 다 쓰고 사라질 것이다.
영혼도 천국도 없을지 모르지만
죽음 뒤에 무언가가 더 있다는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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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돌이의 흔적이든 잔상이든 사랑이든 기억이든 간에
세상 여기저기에 은돌이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내 삶의 끝에 나도 같은 물질 혹은 비물질이 되면 우리는 만날 거라고, 하나가 될 거라고.
그렇게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결국에 은돌이가 반려인에게 주고 간 것은
삶의 의지, 삶 그 자체였다.
은돌이가 주고 간 전부를
그를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모두 찾아내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라미 작가님의 자세에도 눈물이 났다.
많이 슬퍼하고, 또 살아가자.
끝에 있을 그 날을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이가 사랑했던 세상을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