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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얽힌 아련한 추억 되살려주는 타임머신
어릴적엔 책 한권을 사도 심사숙고를 했고 그래서 그런지 내 이름이 새겨진 도장으로 책을 산 날짜를 적고 꽝~하고 찍었다. 그리고 행여나 누가 내 책을 훔쳐갈까봐 책에다 온갖 메모를 하고 맘에 드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는 모서리를 접어 찾기 쉽게 해 놓곤 했었다.
헌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면서 내가 사들이는 책은 주로 육아서와 동화책이 대다수가 되었다. 그러다 <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책 한장 한장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대학시절로 되돌아 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 시절 나는 책에 마치 나의 흔적을 남기기라도 할 양 끄적이고 또 끄적이고.
뭐랄까..이 책은 내게 대학시절 MT 가서 따뜻하게 쬐었던 모닥불같다. 잊고 지냈던 나의 추억들. 나와 책과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지지 대신 책 맨 앞 쪽 비어있는 여백을 이용해 장황하고 간절하게 써댔던 책 편지글까지 다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주부로 살면서 잠시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나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구절도 있었다.
"얼마만큼 살기 편한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치가 있는 일이면 되는 것이다" - 서울에 와 있는 한국사 공부하는 네덜란드 유학생의 말.
학생의 말 치고는 참으로 깊이있고 철학자같은 말이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나 또한 늘 편하고 쉽게 살지 마~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지금 이것은 가치있는 일인가" 라고 묻곤 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추석에 난 이제 4살 먹은 아이를 끼고 추석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시댁엔 늘 강아지들이 바글거려서 그동안 가족들은 명절 때마다 제대로 모이질 못했고 특히 손주들이 태어난 후부터 며느리들은 음식만 장만해서 보내고 명절날 시댁에 가지 않는 기이한 일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유치원을 막 다니기 시작한 아이, 아직 챙길 것도 많고 보살핌이 많이 필요했지만 맏며느리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매 해 명절을 보내다가는 모두들 스트레스 받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강아지 불편해 안 오는 자식들한테 서운하고 자식들은 그날만 강아지들 좀 어디다 맡겼으면 하는데 안하시는 것 때문에 속상하고.
어쨌든 남들 다 떠맡기 싫어하는 시댁 명절 준비를 동서들과 논의해 준비했고 가족 모두들 감사하고 편안한 명절을 보냈다. 친정 식구들을 비롯해 친구들 모두 굳이 왜 먼저 그걸 떠 맡느냐고 했지만 "가족의 화평"을 위해서 누구 한 명은 자신의 입장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책 한구절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또한 이번 추석을 어찌할지에 대한 고민 중 봤던 구절이라 더더욱 판단이 쉬웠던 것 같다. 편한 것보다는 가치있는 것을 하라는 메시지 덕분에.
결혼 전 일과 나만 존재했던 시절. '끊임없이 사유하고 기록하라'는 내 삶의 모토였다. 미치도록 일하고 나면 주말엔 집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했던 기억뿐이다. 메모한 분의 글 중 눈에 띄웠던 부분이 있다.
공허함을 이겨내는 방법: 1. 시간을 좋은 것들로 채울 것! 2. 말을 하지 말 것! 3.끊임없이 사유하고 기록할 것!(일기, 편지 등등)
너무나 명쾌한 조언이다. 요즘 아이를 유치원 보내면서 시간을 다시 계획하고 좀 더 좋은 것으로 좀 더 가치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졌는데 나에겐 참으로 의미있는 구절이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 책은 그야말로 젊은 날 나의 책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 그리고 삶에 대한 방향마저도 잠시 잊고 지냈다가 다시금 각성시켜 준 너무나 향기로운 아메리카노 한잔 같았다. 잠시 옛날을 추억하며 지금을 새롭게 해 줄 수 있는 책이기에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