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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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와 4시 사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일거리를 옆으로 살짝 치워둔 채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러자 어느 표지가 내 눈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맘에 드는 연필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림에, 예전에도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작가가 정혜윤이라고 아주 이쁜 글씨체로 써있길래 나는 주저없이 바로 주문했다.

다음날 받아본 책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내게 많은 울림을 가져다 주었고, 이젠 내게 아주 '큰 책'이 되었다. 나는 굵은 색연필로 문장에 밑줄 치곤하는데,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이러다 모두 연필 밑줄로 가득차게 생겨버렸다. 그래서 정말 좋아도, 정말정말정말 맘에 들 때 밑줄 그었다(그래도 참 많이 그어서, 나중엔 포스트잇을 사용했다). 


정혜윤 작가를 좋아하게 된 건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2014) 덕분이었다. 종종 보이는 뉴스헤드라인 속 쌍용자동차 관련 소식들은 내겐 달나라 뉴스였다. 그런데 그 책 덕분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고 연민도 느꼈고 나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괜찮을까 등등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좋은 기억이 남았던 책이다.


그리고 이 책 '아무튼, 메모'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난 메모속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은 적이 종종 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써두었다고해도 이렇게 쓰지 못했을텐데,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게 되거나, 순수했던 과거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기쁠 때, 나는 메모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메모는 일기처럼 노트에 적어낸 긴 글일 수도, 아니면 메모앱에 짧게 캡쳐한 사진이나 글이 될 수도 있다. 기억속에 잊혀졌다가 불현듯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난데없이 나타난 쑥쓰러운 과거가 이상하게 힘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잊었던 메모들을 다시금 찾아내게 해주어서 작가에게 고마웠다. 내가 사소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찮은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우리를 좌우하는 '자그마한 기적'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확신에 찬 어조가 힘이 되었다.


책읽는 재미를 많이 느꼈다. 연초에 산 책들은 아직 쌓여있지만, 새로 산 이 책이 가장 빨리 읽혔다. 책에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내가 기특하기까지했다. 유튜브며 인스타며 넷플릭스며 온통 시간 보내기 좋은, 그렇지만 보내고나면 찜찜한 기분이 드는 매체가 도처에 널린 세상이다. 그럼에도 작은 포스트잇과 펜만 있으면, 아니 핸드폰 메모앱만있어도 우린 순간을 저장할 수 있다. 내가 본 시의 구절, 좋았던 문자, 중2처럼 남긴 일기 모두가 미래에 나를 위해 남겨진 메시지가 될 것이다. 메모를 집으로 돌아가려는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조약돌같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는 앞으로도 사소한 것들의 순간순간을 포착해보려고 한다.

돈 때문에 정말 많은 성장 이야기들이 사라졌다. - P53

나는 나 자신의 ‘후짐‘ 때문에 수시로 낙담한다. - P43

메모장이 꿈의 공간이면 좋겠다. - P162

우리는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지 않냐고.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지 않냐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지 않냐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지 않냐고.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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