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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향이 나는 1만 1천 권의 고서들

- 김인숙, 『1만 1천 권의 조선』을 읽고 -


개항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물은 의아함과 혼동을 안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서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려왔던 역사상과는 상이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당연시하던 풍습이 그들에게는 폄하되거나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 그들의 서술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이들의 저술을 접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거리감이 많이 느껴진다. 물론 당시의 역사상이나 민중들의 생활상을 알아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됨을 부정할 수 없으며 – 실제로 그들의 저술을 토대로 몇몇 글도 저술해 보았다. 꽤나 재미있었다. - 결국 역사는 일종의 ‘해석 작업’이기에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은 숙지해야만 할 것이다. 요리사나 장인이 재료 탓, 도구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이들의 저술만을 인용해 그것을 단장취의, 침소봉대하면서 왜곡된 역사상을 그려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또 생각하면은 이는 한번쯤 반드시 건드려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김인숙의 『1만 1천 권의 조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양인이 저술한 한국 관련 저술”이라는 하나의 사료군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유용한 내용을 추출해 낼 수 있는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1만 1천 권’이라 함은 명지-LG 한국학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 수를 일컫는데, 저자는 그중에서 몇몇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에 관한 소개를 책에서 다루고 있다. 지나가면서 들어보았을 『하멜 표류기』부터 시작해서, 이런 책도 있었구나 싶을 독특한 구성을 지닌 책까지, 다수의 책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책을 다루고 있기에 한권 한권을 다루는 책의 깊이가 다소 얇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나중에 한번 찾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흡인력은 충분히 있었다.

책에서는 소재가 된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설명하거나, 혹은 그것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논지를 논박하지는 않지만, 책이 저술된 계기나, 저자의 생애만큼은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각각의 책이 어떠한 맥락에서 당대 한국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책에서는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소개되는 책 하나하나를 연구 사례로 생각하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일련의 사료군을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혹시 더 좋은 관점이 있을지 나름의 생각이 떠오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책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서지학적인 부분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는 다수의 고서 도판을 수록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이 처음으로 고서를 접했을 때 느껴졌던 감정이나 느낌, 그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책의 내용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도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서지학에 관련된 기본 정보를 알아두면 의외로 써먹을 때가 많다. 박물관에 다수의 서책이 전시되어 있을 때 가장 쓸모있는 지식은 역사가 아닌 서지학 지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책의 장정, 구성, 형태, 서체 등 여러 요소를 보면, 책이 무슨 책인지는 감이 안 잡혀도 알차게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올 수 있다. 책에서 전문적인 서지학 지식을 뽐내거나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바라보는 신선한 방식을 알려주고 있고,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도 읽는 재미가 있다.

김인숙의 『1만 1천 권의 조선』은 전문 서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고 있었던 책들을 설명하는 소개집이다. 저자는 책에 자신이 고서들을 보고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혹시라도 서양 세계의 조선관이 궁금하거나 관련 사료군을 조사해보려면 이 책으로 가볍게 자료들을 훑어보면 좋은 자료나 시사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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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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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모든 사물과 생명의 이치와 원리를 깨닫고 그것을 관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라고 간결히 정의되면 좋겠지만, 그 실재와 형태는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아마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화두 중 하나가 아닐까. 가끔은 주먹다짐과 총격 소리도 좀 곁들어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렸을 적에는 별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어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아마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멋모르고 외치는 명언 아닐까. 그 속에 담긴 한 철학자의 사색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순진함과 오만함만을 담은 채로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 성숙해지게 되면, 어렸을 적의 치기에 실소가 나온다. 그때에는 조금이라도 인문학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신’이라는 존재를 끝도 없이 대면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신의 존재에 대해 자문하고 사색한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잠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구축한 견해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그는 자신이 신에 대한 사안에 있어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라고 말하지만, 세간에서는 무신론자라고 종종 불린다.)도 그중 한 사람인데, 『신, 만들어진 위험』은 그의 견해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도발적인 제목은 책 표지를 보자마자 호기심과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원제는 ‘Outgrowing God’이기에, ‘신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번역이 원제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더 정확히 전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1부 ‘신이여, 안녕히’와 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다르지만, 도킨스가 신의 불가지성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두 장의 서술 목적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유의해야 할 점은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은 ‘신의 무존재’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도킨스의 입장에서 잠시 변호해 보자면, 도킨스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신의 불가지성’이다. 그가 신의 존재를 신뢰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가 믿어서는 아니다. 이제까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바라고 생각되어 왔던 것들을 부정하는 도킨스의 언사가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에게 지나친 적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진리는 언제나 양극의 주장 모두를 들을 때에 이르러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도킨스가 말하고 검증하려는 ‘신’은 대개 ‘기독교의 신’이다. 이는 아마 그의 생애를 둘러싼 사회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은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 외에도, 기독교적 사고만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1부에서는 ‘기독교 신’의 경전인 성경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를 수행함으로써 신의 신뢰성을 묻는 동시에, 신의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신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도킨스의 신념인 신의 불가지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는 신화와 설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성경에서 보이는 모순점들을 지적하면서 성경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더 나아가 신이 실재한다고 믿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피력한다. 이 부분은 꼼꼼한 자료 비판이니 대략적인 주장만 제시하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혹시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한번 일독해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또 다른 주안점인 신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저자는 성경 속에서 ‘유일신’이 보이는 행보와 언사가 후대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구약 성경에서 자주 보이는 이민족 학살, 타종교에 보이는 배타적인 태도에 관한 기사는 이에 대한 근거이다. 거기에 현대의 윤리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구절들도 있다. 거기에 그는 신약 성경과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본받을 만한 기사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유용성을 판단하는 근거는 성경이 아닌 인간 개개인의 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성경이 ‘명저’라고 불릴 수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정도 수용할 지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단순히 종교 경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은 종교 경전임과 동시에 신화집, 설화집이며, 사서(史書) 비슷한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은 종교학뿐만이 아니라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적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존 로크와 같은 사회계약론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을 토대로 원시 사회 양상을 추측한 것은 이를 잘 드러내는 예시이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성경을 가끔씩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더 바람직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2부에는 진화론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좀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유신론자 중에 생명의 탄생이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진화론과 관련해 큰 업적을 세운 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도킨스가 이를 다루는 이유는 그 밖에도 더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얼핏 보면 마치 평범한 과학 대중 교양서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진화론 = 자연선택설’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세세하게 진화론에 대해 설명한다. 진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 진화에서 유전자(DNA)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유전자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등등. 저자의 유명한 저작인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이전에 이 부분을 잠깐이나마 일독하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자, 그렇다면 도킨스가 난데없이 진화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신의 불가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가 진화론에 관해 깊은 연구를 진행한 학자이기도 하고, 생명의 탄생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생명’이라는 정교하고도 숭고한 개념이 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킨스는 이를 통렬하게 지적하기 위해 진화론을 설명함과 동시에 왜 인류가 종교를 믿게 되었는지, 다름 아닌 ‘진화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신은 그저 인류의 상상력 속에서 창안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킨스에게 있어 신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 희곡 속에 등장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이상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생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기에, 그는 신의 불가지성을 다시 한번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가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다. “신이라는 불명확한 존재를 제외하더라도, 세계의 작동 원리를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가 존재할까?”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표지만을 보고 그가 과거의 어느 철학자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오히려 그의 모습은 창가에 ‘세상은 무엇이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신’이라는 재료를 빼고 생각하는 사색가에 조금 더 가깝다. 물론 그게 무신론자의 주장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도 저자의 논조나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생각될 때도 있다.) 저자가 사색하는 법은 배웠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관용을 잠시 베푼 다음, 한번 그의 주장을 경청해 보자.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책은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비판 없는 논리는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바티칸을 중심으로 카톨릭교가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비록 과거 부정과 타락에 깊숙이 빠져든 때가 있었더라도 신의 기적을 보이는 성인들을 검증하기 위한 시성(諡聖) 과정에서는 엄격한 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초청되는 것 역시 이 순간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간이 가장 깊은 신념을 지닐 때는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할 때가 아니다.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하고,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 내려고 할 때가 인간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한층 더 성숙해지며,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초자연적 존재에 가까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신 역시 그러한 태도를 바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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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 - 기후위기 시대, 미래를 위한 선택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톰 리빗카낵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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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환경 관련 책을 받아 읽어 보게 되었다. 저번에 읽었던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와 어떤 부분을 공유하며, 어떤 부분에서 색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을까. 책을 받자마자 드는 생각이었다.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는 코스타리카 대통령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의 딸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을 지내는 동안 파리협정 체결에 주도적인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코스타리카가 신재생 에너지로 국가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며, 군대를 폐지한 국가라는 점,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저자가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저자인 톰 리빗카낵 역시 피게레스와 함께 환경 운동과 파리협약 체결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이다.


2015년에 기후 변화 방지를 목적으로 체결된 파리협정은 이제까지의 국제 협력 관계 구축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물론 이후 미국의 파리협정 파기로 그 의의가 바래졌지만, 수많은 국가들이 처음으로 탄소 배출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하나로 합치고 협조하는 순간이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이상, 국제 사회는 탄소 배출 감소와 기후 변화를 막아내는 데에 노력해야만 한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존재하는 선진국 사회는 - 그동안 발전을 대가로 막대한 탄소 배출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 더욱 이를 위해 정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사람들 대부분이 환경 관련 이야기를 들을 때에 곧바로 던지는 반문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환경주의자가 말과 저서를 통해 그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과 근거에는 상충하는 부분도 존재하고, 같은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해법이나 자세를 제시하기도 하겠지만, 결국 요점은 ‘나’라고 하는 지구의 구성원이 기후 문제라고 하는 지구적 문제에 어떠한 자세로 갖추어야 할 지이기에, 다양한 의견을 듣고 수용하고 자신만의 환경론을 구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비판적 사고와 도덕적 숙의가 엄격하게 더해져야만 한다.



자 그렇다면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저자인 피게레스는 환경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해야만 환경 문제에 대해 – 이제까지의 소극적인 행보나 문제 회피적인 태도를 버리고 -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할까.


저자는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을 제시한다. 여기에 옮겨보자면 ‘단호한 낙관’, ‘무한한 풍요’, ‘철저한 재생’이다. 어떤 부분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자원 낭비와 탄소 배출을 막아야 할 시점에 ‘무한한 풍요’라고? 무언가 논리 전개가 맞지 않는 부분이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자.


피게레스는 환경 문제를 대처하는 21세기의 인류가 ‘단호하지만 낙관적인 자세를 지니며’, ‘타인과의 자원 경쟁에 지나치게 골몰하지 않고’, ‘소비만이 아닌 재생을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아직도 추상적이니 조금 더 길게 풀어 써보도록 하겠다. 미래가 앞으로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지면서 이를 성취하기 위해 단호하게 대처하고(단호한 낙관), 지구의 자원을 한정 짓지 않고 무한하다고 여기며 타인과 자원을 함께 나누는 이타적인 자세를 갖추고(무한한 풍요), 자신이 소모한 자원들을 어떻게 다시 되살릴지 생각하라는(철저한 재생) 의미이다.


이 세 가지 마음가짐은 우리가 이제까지는 올바른 자세라고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철저하게 준수하지 못했던 준칙이라고 볼 수 있다. 피게레스는 이러한 준칙들을 다시 강조함으로써 환경 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어지는 장에서 피게레스는 구체적으로 들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10가지 행동을 짚는다. 그런데 피게레스가 말하는 10가지 행동은 환경이라는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행동들은 환경을 넘어서 사회 개선에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시민 의식 함양과 정치 참여에 방점이 찍히는데, 그러한 행동이 정부가 향후 환경 운동에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제생활 속에서도 환경 보호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고 피게레스는 말한다. 화석연료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친환경 사업을 벌이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경제 구조 속에서 친환경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보고 투자 정책을 수립하지 말고, ‘가치 투자’를 행할 것을 그녀는 강조하고 있다.



환경 보호 운동의 중요성이 반세기 전부터 대중 사이에 퍼져나갔음에도 지금까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친환경 기술의 경제적 문제 등 상용화 문제도 연관이 있겠지만, 기후 변화와 그에 대한 대처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 문제는 현세대 앞에 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큰 장벽이 된 지 오래다. 2050년까지 인류의 탄소 배출량이 0에 수렴하지 않을 시, 인류는 현재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기후 문제로 인한 인류의 쇠퇴는 더 이상 공상 과학 소설에나 나올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인류가 그동안 도외시해 왔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여기에서 '단호한 낙관'이 도움이 될 것이라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미 그것을 증명하는 몇 가지 선례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에서는 일상에서, 경제생활 속에서, 사회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얼마든지 환경 보호에 진력을 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행동이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인류의 활로일 것이다.


우리 자녀와 후손들이 우리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때 무슨 일을 하셨어요?”라고 물을 때

우리의 대답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사실 하나뿐이다.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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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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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 명동성당 中 -


시집을 읽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시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가끔씩 사색하다가 시구를 지어내기도 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들이 쓴 시를 읽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시집을 찾아가면서 좋은 시를 찾아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집의 본연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 시집을 찾은 적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내신과 수능 공부를 위해서 시집을 찾아본 것이 시집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정호승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는 시집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에는 살짝 놀랐다. 책의 두께가 시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책의 두께는 거의 500여 쪽에 달했다. 알고 보니 정호승 시인께서 자신이 지은 시를 골라 엮는 것을 제외하고서도 그와 관련된 산문들을 일일이 첨부해 두었기에 책의 두께가 늘어난 것이었다.


책의 구성은 시와 산문이 반복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문이 시의 내용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부속 부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확실히 뒤에 이어지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들은 당시 정호승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나 관련 시상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호승 시인의 산문에 맞추어 시를 꼭 해석하거나 사색할 필요는 없다. 저자 역시 서두에서 산문이 시의 부속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 두고 있다.


사실 산문보다는 시가 먼저 지면에 등장했기에 저자의 별다른 부언 없이도 시를 먼저 음미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또 읽어보고, 시를 사이에 두고 시인의 상황에 최대한 공감해볼 수 있다. 그 뒤에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시를 통해서 눈치채지 못했던 점들도 알아가고, 시인과 한결 가까워지는 길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한 수 한 수 읽어나가면서 사람 생각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지만 살아가면서 별별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도 이제까지 한 번은 해보았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 바닥에 대하여 中 -


길고도 길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과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다시 꺼내들어 마음에 들었던 글귀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기분 전환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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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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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를 만화로 보다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 1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1학기가 끝나면 항상 학교에서는 독서퀴즈대회를 열었는데, 그 퀴즈대회의 문제 출제 범위 중 하나가 바로 이 『사피엔스』였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책을 빌려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퀴즈대회가 있어서 읽기는 했지만 『사피엔스』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고고학과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되었고, 한동안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역사학에서는 설명하지 않거나 그저 자연스럽게 넘어가던 부분이 세세하게 분석되는 모습이 정말 흥미로웠다. 물론 얼마 안 있어 내신과 입시 공부에 치여 역사학으로 회귀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에 만화로 그려진 『사피엔스』를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만화였지만 대화 상자 안에 들어있는 글과 대사들이 하나하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명저는 만화책으로 그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줄글보다는 만화가 그 내용을 확실하게 기억하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이 아니라 그림에만 집중하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만화 속의 줄글에 집중해 내용을 이해하면 만화만큼 책의 내용과 과정을 정확히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이제까지 『사피엔스』를 완독하지 못한 사람이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는 총 4권으로 집필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1권밖에 출판되지 않은 것인데, 1년에 1권씩 내서 2023년까지는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1권인 해당 책에서는 『사피엔스』의 초반부인 ‘인지혁명’ 부분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전 내용을 만화로 보지 못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2권과 그 이후에 다루어질 『사피엔스』 후반부가 만화라는 기법을 통해 어떻게 묘사되고 설명될지가 궁금해진다.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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