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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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모든 사물과 생명의 이치와 원리를 깨닫고 그것을 관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라고 간결히 정의되면 좋겠지만, 그 실재와 형태는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아마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화두 중 하나가 아닐까. 가끔은 주먹다짐과 총격 소리도 좀 곁들어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렸을 적에는 별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어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아마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멋모르고 외치는 명언 아닐까. 그 속에 담긴 한 철학자의 사색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순진함과 오만함만을 담은 채로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 성숙해지게 되면, 어렸을 적의 치기에 실소가 나온다. 그때에는 조금이라도 인문학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신’이라는 존재를 끝도 없이 대면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신의 존재에 대해 자문하고 사색한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잠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구축한 견해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그는 자신이 신에 대한 사안에 있어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라고 말하지만, 세간에서는 무신론자라고 종종 불린다.)도 그중 한 사람인데, 『신, 만들어진 위험』은 그의 견해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도발적인 제목은 책 표지를 보자마자 호기심과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원제는 ‘Outgrowing God’이기에, ‘신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번역이 원제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더 정확히 전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1부 ‘신이여, 안녕히’와 2부 ‘진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다르지만, 도킨스가 신의 불가지성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두 장의 서술 목적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유의해야 할 점은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은 ‘신의 무존재’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도킨스의 입장에서 잠시 변호해 보자면, 도킨스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신의 불가지성’이다. 그가 신의 존재를 신뢰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할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가 믿어서는 아니다. 이제까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바라고 생각되어 왔던 것들을 부정하는 도킨스의 언사가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에게 지나친 적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진리는 언제나 양극의 주장 모두를 들을 때에 이르러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도킨스가 말하고 검증하려는 ‘신’은 대개 ‘기독교의 신’이다. 이는 아마 그의 생애를 둘러싼 사회가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은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 외에도, 기독교적 사고만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1부에서는 ‘기독교 신’의 경전인 성경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를 수행함으로써 신의 신뢰성을 묻는 동시에, 신의 유용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신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도킨스의 신념인 신의 불가지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는 신화와 설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성경에서 보이는 모순점들을 지적하면서 성경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더 나아가 신이 실재한다고 믿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피력한다. 이 부분은 꼼꼼한 자료 비판이니 대략적인 주장만 제시하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혹시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한번 일독해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또 다른 주안점인 신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저자는 성경 속에서 ‘유일신’이 보이는 행보와 언사가 후대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구약 성경에서 자주 보이는 이민족 학살, 타종교에 보이는 배타적인 태도에 관한 기사는 이에 대한 근거이다. 거기에 현대의 윤리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구절들도 있다. 거기에 그는 신약 성경과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본받을 만한 기사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유용성을 판단하는 근거는 성경이 아닌 인간 개개인의 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성경이 ‘명저’라고 불릴 수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느 정도 수용할 지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단순히 종교 경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은 종교 경전임과 동시에 신화집, 설화집이며, 사서(史書) 비슷한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은 종교학뿐만이 아니라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적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존 로크와 같은 사회계약론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을 토대로 원시 사회 양상을 추측한 것은 이를 잘 드러내는 예시이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성경을 가끔씩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때로는 더 바람직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2부에는 진화론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좀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유신론자 중에 생명의 탄생이 신이라는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에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진화론과 관련해 큰 업적을 세운 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도킨스가 이를 다루는 이유는 그 밖에도 더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얼핏 보면 마치 평범한 과학 대중 교양서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진화론 = 자연선택설’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세세하게 진화론에 대해 설명한다. 진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 진화에서 유전자(DNA)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유전자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등등. 저자의 유명한 저작인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이전에 이 부분을 잠깐이나마 일독하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자, 그렇다면 도킨스가 난데없이 진화론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신의 불가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가 진화론에 관해 깊은 연구를 진행한 학자이기도 하고, 생명의 탄생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생명’이라는 정교하고도 숭고한 개념이 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킨스는 이를 통렬하게 지적하기 위해 진화론을 설명함과 동시에 왜 인류가 종교를 믿게 되었는지, 다름 아닌 ‘진화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신은 그저 인류의 상상력 속에서 창안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킨스에게 있어 신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 희곡 속에 등장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이상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생명의 존재가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기에, 그는 신의 불가지성을 다시 한번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가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다. “신이라는 불명확한 존재를 제외하더라도, 세계의 작동 원리를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가 존재할까?”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표지만을 보고 그가 과거의 어느 철학자처럼 “신은 죽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오히려 그의 모습은 창가에 ‘세상은 무엇이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신’이라는 재료를 빼고 생각하는 사색가에 조금 더 가깝다. 물론 그게 무신론자의 주장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도 저자의 논조나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생각될 때도 있다.) 저자가 사색하는 법은 배웠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관용을 잠시 베푼 다음, 한번 그의 주장을 경청해 보자.


신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이 책은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비판 없는 논리는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바티칸을 중심으로 카톨릭교가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비록 과거 부정과 타락에 깊숙이 빠져든 때가 있었더라도 신의 기적을 보이는 성인들을 검증하기 위한 시성(諡聖) 과정에서는 엄격한 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초청되는 것 역시 이 순간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간이 가장 깊은 신념을 지닐 때는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할 때가 아니다.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하고,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 내려고 할 때가 인간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한층 더 성숙해지며,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초자연적 존재에 가까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신 역시 그러한 태도를 바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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