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물은 의아함과 혼동을 안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서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려왔던 역사상과는 상이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당연시하던 풍습이 그들에게는 폄하되거나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 그들의 서술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이들의 저술을 접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거리감이 많이 느껴진다. 물론 당시의 역사상이나 민중들의 생활상을 알아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됨을 부정할 수 없으며 – 실제로 그들의 저술을 토대로 몇몇 글도 저술해 보았다. 꽤나 재미있었다. - 결국 역사는 일종의 ‘해석 작업’이기에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은 숙지해야만 할 것이다. 요리사나 장인이 재료 탓, 도구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이들의 저술만을 인용해 그것을 단장취의, 침소봉대하면서 왜곡된 역사상을 그려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또 생각하면은 이는 한번쯤 반드시 건드려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김인숙의 『1만 1천 권의 조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양인이 저술한 한국 관련 저술”이라는 하나의 사료군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유용한 내용을 추출해 낼 수 있는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1만 1천 권’이라 함은 명지-LG 한국학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 수를 일컫는데, 저자는 그중에서 몇몇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에 관한 소개를 책에서 다루고 있다. 지나가면서 들어보았을 『하멜 표류기』부터 시작해서, 이런 책도 있었구나 싶을 독특한 구성을 지닌 책까지, 다수의 책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책을 다루고 있기에 한권 한권을 다루는 책의 깊이가 다소 얇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나중에 한번 찾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흡인력은 충분히 있었다.
책에서는 소재가 된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설명하거나, 혹은 그것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논지를 논박하지는 않지만, 책이 저술된 계기나, 저자의 생애만큼은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각각의 책이 어떠한 맥락에서 당대 한국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책에서는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소개되는 책 하나하나를 연구 사례로 생각하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일련의 사료군을 어떠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혹시 더 좋은 관점이 있을지 나름의 생각이 떠오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책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서지학적인 부분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는 다수의 고서 도판을 수록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이 처음으로 고서를 접했을 때 느껴졌던 감정이나 느낌, 그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책의 내용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도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서지학에 관련된 기본 정보를 알아두면 의외로 써먹을 때가 많다. 박물관에 다수의 서책이 전시되어 있을 때 가장 쓸모있는 지식은 역사가 아닌 서지학 지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책의 장정, 구성, 형태, 서체 등 여러 요소를 보면, 책이 무슨 책인지는 감이 안 잡혀도 알차게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올 수 있다. 책에서 전문적인 서지학 지식을 뽐내거나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바라보는 신선한 방식을 알려주고 있고,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도 읽는 재미가 있다.
김인숙의 『1만 1천 권의 조선』은 전문 서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고 있었던 책들을 설명하는 소개집이다. 저자는 책에 자신이 고서들을 보고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혹시라도 서양 세계의 조선관이 궁금하거나 관련 사료군을 조사해보려면 이 책으로 가볍게 자료들을 훑어보면 좋은 자료나 시사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