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존 이야기 - 상처받은 영혼과 어리바리한 영혼이 만났을 때
로버트 윌리엄스 지음, 김현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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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의 두 소년이 만들어가는 성장소설이다.
소년들의 두배보다도 더 많은 나이에 읽는 성장소설이란, 내가 학창시절에 읽으며 공감했던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내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고 극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한 어른이 된 것도 아닌데, 그 나이에는 그 나이에 맞는 어떤 고민, 슬픔, 상처들이 제각각 존재하는 법이다. 열네살의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지난 일기장을 들추어보면 참 촌스럽고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이런 고민들을 했었구나 싶기도 하고, 특별한 해결책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잊혀진 것도 있었다. 다행인지, 나의 어린시절에는 얼마간의 질투, 슬픔, 외로움 들이 존재하기는 했어도 내 인생을 변화시킬 커다란 굴곡이 될만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라 평범하게 자라왔던 것 같다.

갑작스럽게 하루아침에 사고로 엄마를 읽게 된 루크와,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시며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는 존. 책의 부제가 <상처받은 영혼과 어리버리한 영혼이 만났을 때>라는 것처럼, 그들 각각의 캐릭터는 꼭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느껴봤을 법한 어린시절의 모습이다.

누구나 상처를 받고 극복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그들이 사라졌을 때 더 큰 상처를 받지만 결국 극복하는 것도 그들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어떠한 이유로 헤어지거나 사라졌을 때,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커다란 상처가 다가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두렵고 겁이 난다. 항상 함께 했던 사람의 부재는 어떤 방식으로서라도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내가 더 이상 아니게끔 만든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아빠는, 예전의 그 아빠가 아니다. 만약에 아빠가 엄마처럼 사라졌다면, 엄마도 예쩐과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는 못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어느 정도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고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 사전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은, 죽음은 곧 사라짐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고 일상에도 영혼에도 커다란 빈 공간만 남는다.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동 마술은 없을 것이다.
 
   




소년이 소년을 위로하는 방식. 아버지가 아들을 위로하는 방식.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하는 방식.
놀랄만큼 담담한 소소한 일상의 몇마디 뿐인 대화지만 따뜻한 마음이 전해온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거라면, 나에게 다가올 상처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받았을 때에도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픈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고, 지난 날 마음아팠던 시간들은 그렇게 보상받는다는 느낌이다. 절대 감상적인 소설은 아닌데, 성장소설을 읽으면 유난히 감성적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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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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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친듯이 열심히 살면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은 마음과
삶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여유있고 천천히 살고싶은 마음.
이 충돌되는 두가지 욕망 사이에서 고민중.

인생은 길다. 나도 안다.
지금 모든걸 다 이룰려고 파닥파닥 발버둥 치다 보면 그게 다 이루어지지 않아 계속 힘든 나날들만 계속되며 삶의 질은 최하로 떨어지게 되고 (물론 안되는게 당연하지만) 설령 이루어진다 해도 계속되는 욕심으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게 현실이다. 어쩌면 더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쉽게 추락하게 될까봐 중간에 멈추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목표도 없이 꿈도 없이 현실안주 경향을 보이며 적당히 돈벌며 취미활동 간간히 하며 삶을 살아야되는건지?

정규교육기간을 포함해서 무한경쟁모드에서 무려 이십년을 살았다. (헉!) 지금에야 많이 무덤덤해졌지만 지는건 죽기보다 싫었던 때도 있었다. 학점 나쁜 여학생이나 일못하는 여사원들을 보면 괜히 발끈해서 밤새며 공부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좀더 자유롭게, 여유롭게, 편하게, 살고 싶었다. 그랬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던 2004년 첫학기를, 그래서 지금도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때는 내가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던 학점 F를 받아도 좋았다.

알랭드보통은 <불안>(좀더 정확히는 지위에 대한 불안)에서 이러한 불안의 원인을 다섯가지로 정의한다.

-사랑결핍
절대궁핍을 경험해본것도 아니고 막내딸에 대한 부모님의 무한사랑+친구들, 애인의 퍼다주는 사랑을 보면 이게 원인은 아니다. 단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문제가 될수는 있겠지만 -_-


-속물근성
가장 유력한 원인. 명예롭거나 경제적으로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다는 심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래봤자 이런거(왼쪽 그림)지만, 타인의 칭찬에 민감하고 비판에는 더 민감한 탓이다. 지인들이 없는 외국땅에서 살게 되면 지금과 같은 성공에 대한 열망에서 좀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칭찬도 비판도 없는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으면 얼마나 발전이 있을까. 자유로움과 폐인스러움-_-은 (경험상) 정말 한끗 차이다. 해결법으로 제시된 보헤미아처럼, 속물근성을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것도 굉장한 의지가 없다면 삶을 즐길수 없겠지. (결국 의지의 문제로 극복하지 못하면 해결不)


-기대
기대에 부응하기. 이건 딱 스무살까지만. 라고 썼다가 지금 내가 쉽게 사표를 던지지 못하는것도 (심지어 쓰지도 못하는것도) 결국 주변인들에게 '훌륭한 S사에서 적응하며 잘살기' 라는 기대감에 배신할까봐 라는 두려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발등찍힌 기분.


-능력주의
현대사회는 능력주의다? 옳으신말씀. 실제로 운이 좋게도 (좋은건지 나쁜건지) 뛰어난 실력+노력가들로 소위 잘나가게 된 사람들을 보면 저게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뿌듯하다가도 눈을 돌려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능력주의10% + 학벌/인맥90%로 구성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결론은 능력의 잣대도 결국 돈. (속물근성과 다를게 뭐야?) 이걸보면 바로 한방에 공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확실성

정해져 있어서 순리대로 잘 처리되면 좋겠지만 그럼 The road not taken 을 선택할 이유는 없겠다.



내가 지금의 이 답답하고 숨막히는 불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부모님과 친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야 하고 지금과 동일한 수입이 있어야 하며 (혹은 나중에 그만큼 보상받을수 있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단기간에 무언가를 보란듯이 이뤄내서 '퇴직'에 대한 justification을 찾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란 결국 맘편하게 살아가기와 다름없는거고, 이 시대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기란 어찌나 힘든일인지 절실히 현실을 깨닫게 된다..;; 차라리 이룰수 없이 마음속에 별★로 간직해둔 꿈을 갖고 있는게 마음편한 일인지도 -.-


문제는 알겠는데 해답을 찾을수가 없다.




Those crazy years, that was the time Of the flower-power
But underneath we had a fear of flying
Of growing old, a fear of slowly dying
- ABBA, Our Last Summer (Mammamia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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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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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한 작가의 삶을 받아들이는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주옥같은 말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콩닥콩닥 거리게 한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진지하고 솔직하게 삶을 받아들이는 말들이.
속삭이듯 혼자말하듯 말하지만
나를 기쁘게도 했다가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도 했다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더불어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이긴 하지만
하루키의 가치관을 닮은 또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일단 시작하면 다른것은 보지 않고 전력질주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하여 그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은 하루키가 '러너'의 자세로서, '작가'의 삶을 생각한 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 회고록.
사람들의 평처럼 그의 책을 읽고 싶은 동시에 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결코 잘 달리는 사람도 아니고 러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리는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달리기에 관해서 나만의 특별한 기억, 이라고 할만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때의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려고 했던 일종의 모티베이션으로서 작용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문득 달리고 싶게 되었다.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을 받으면 물론 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그런데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상은 그처럼 단순하게 되어있지는 않다,라고 해도 무방하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계속 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계속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기에는 의지와 같은 것도 조금은 관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다. 설령 그런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오히려 몸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루키는 결코 노력하면 다 되는것- 이라고 뻔한 스토리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이 달리기를 찾았듯, 누군가에게 맞는 무언가가 있어야
-그리고 삶은 우리의 인생을 맞는 쪽으로 맞게 흘러가게 되있고- 그때 의지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것이라면. 20년 이상 달려왔던 그로서는 달린다는 것이 즐거움이자, 삶의 의지가 되고 과정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인생의 한 분기점 같은 서른세 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그런 나이에 나는 장거리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은 출발점이 섰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과 함께 시작한 달리기. 그리고 또 시작된 인생의 두번째 막.
결코 부유하거나 엘리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삶의 모양새를 갖추어갈 때 그는 송두리째 벗어버리고 소설쓰기를 시작했다.
어느날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쓰기 위해서라면 한가지 일을 할 때에만 전력질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로운 인생의 한 분기를 만들어냈다.

문득 부끄러워졌다고 해야하나. 씁쓸해졌다고 해야하나.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한 곳을 보고 전력질주할 수 있는 힘의 여분을 다른 곳에 조금 남겨두고
지쳐 쓰러질때까지, 라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인생의 한 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하나의 가지를 둘로 나누어 어느한 쪽을 선택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로 새로운 인생의 한 분기를 원한다면
다른 쪽에 대한 욕심과 미련은 과감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가령 불공평한 장소에 있어도 그곳에 있는 종류의 '공정함'을 희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공정함'에 굳이 희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어떤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재량이다.


결코 재능있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도 아니고 -적어도 회고록에서는-
불공평한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대로 공정함을 위해 노력해왔다.
불공평한 것은 당연한 거겠지. 재능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다소 운도 따르는 것이니까.
하지만 일단 레이스 스타트 점에 있으면 그 때만큼은 공정함을 희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달리는 동안만큼은 모든것을 공평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공평함을 희구하기 위해 쉽지는 않지만 걷는 것이 아니라 늘 달리기 위해 하루키는 노력한다.
내가 내 인생에 있어 늘 달리고자 애써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무 지쳤어, 너무 달려왔으니까 쉴틈이 필요해라고 생각하면서
그 때의 페이스를 놓쳐 다시 달리기까지 방황하고 더 많은 힘과 노력을 필요로 했었던 것 같다.

달리기 위해, 소설을 쓰기 위해,
아니, 그 두가지를 통해 내 삶을 주도적으로 컨트롤 하기 위해
그만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시한번 귀감이 된다.
회고록 같은거, 정말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은 책.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는 어록.
-생각한것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재능이다 ㅎㅎ-
잊지 말아야지. 나는 죽으면 내 묘비명에 무얼 기록하고 싶은지도 생각해보아야겠다.



무리를 해서 계속 달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걷는 쪽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주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다리를 쉬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휴식은 착실하게 취했다.
그러나 걷지는 않는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위해 참가한 것이다.
그 때문에 - 그 목적 하나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일본의 북녘 끝까지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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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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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의 작가 페터 빅셀의 책.
문득 첫 장을 펼쳤다가, 화려하진 않아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아도
일상에 곁에 두고 싶어하는 이야기같은 소소한 에세이가 하나하나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당일이 되면, 이제 선물을 뜯어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유치원 입학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 기다리기, 열두 살이 되기를, 열여섯 살, 열여덟 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그리고 마침내 아흔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기다림.
......
우리는 왜 기다리는 걸까? 왜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복도에 서서 기다릴까?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건 없기 때문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 입학 기다리기, 졸업 기다리기, 은퇴 기다리기, 그리고 어쩌면 기다림조차 기다리기.
<기다림을 기다리기> 中
 
   



기다림에 대한 단상.
우리는 기다림을 싫어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건 어떤 설레임? 기대감? 현재에 대한 불만족?
나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미래에 대한 설레임이다. 그 무언가가 언제나 늘 나로 하여금.. XX가 되면. 언제가 되면 꼭 무언가가 이루어지겠지 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 입학을 기다리고 졸업을 기다리고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을 기다리고 내가 했던 일의 보상을 기다리고ㅡ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보상이라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종착지가 모호해지는 순간 방황하고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나 보다.
항상 무얼 그렇게 기다려온걸까. 아흔살이 되고 나서도 나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살게 될까.





   
  나는 에밀을 존경했다. 그는 내 눈에 진정한 어른이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아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많은,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 나는 에밀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내가 그에게서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척 많이 배웠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역에 있을 이유 없이, 그러니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감탄하며 무언가 구경하거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도 그저 거기서 서성이는 법을 배웠다. 그냥 여기 있기, 그냥 존재하기, 그냥 살아 있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中
 
   



이 책을 샀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작가보다는 제목에 끌려서였다.
시간이 많은 어른. 내가 아직 어른이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이스를 잃어버려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던게 습관이 되버린 건지, 과연 언젠가는 나도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좀 더 여유있게, 기다리기. 느긋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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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라 브라바! - 기대해도 좋을 내 인생을 위해
아네스 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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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저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만 해주는 사람들이었어요.
'거기 몇백대 일이래. 말이 되니? 학사 학위만으로는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야'라고 충고해주었는데
그런말들을 들을 때마다 좌절되고 힘이 빠지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어요.
- 유엔 행정 직원 정한나



Follow your heart and do what makes you happy.
Don't let other people push you into something that isn't happy fundamentally you.
- 미셸오바마



10대때는 20대가 되면 뭔가를 이뤄낼 것이라 생각한다.
20대 때에는 그래도 30대엔 먼가 하나 이뤄놓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고 보면 불확실한 미래는 여전하고 경제적인 안정은 물론, 사랑까지도 휘청이며 살아가고 있다.
... 하지만 인생의 성패는 누가 가장 빨리 출발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랜 열정을 가지고 있느냐, 누가 더 끈질기게 달리고 있느냐 에 달린 것이다.
- 파티플래너 유니스배



인생은 곱셈이라고.
아무리 기회가 와도 내가 제로라면 그냥 제로로 남고 만다고.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회는 우리에게 곱빼기로 더 나은 삶을 선물해 줄 거라고.
- LA검찰청 공보관 신디신


+++

읽으면서 틈틈히 적어놨던 말들.
성공한 그녀들의 삶이 처음부터 훌륭했던것도 아니며
20대에 끊임없이 방황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모든걸 다 버리고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목표가 있다면 조금 늦는건, 중요하지 않다고, 끈기있게 끝까지 가는것이 중요하다는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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