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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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의 작가 페터 빅셀의 책.
문득 첫 장을 펼쳤다가, 화려하진 않아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아도
일상에 곁에 두고 싶어하는 이야기같은 소소한 에세이가 하나하나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기다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다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기다릴까?
아마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스물한 밤만 더 자면 오는 생일 기다리기, 크리스마스 기다리기, 그리고 드디어 12월 24일 당일이 되면, 이제 선물을 뜯어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는 그 긴 시간. 유치원 입학 기다리기, 학교 입학 기다리기, 잉크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 기다리기, 열두 살이 되기를, 열여섯 살, 열여덟 살, 스무 살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그리고 마침내 아흔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기다림.
......
우리는 왜 기다리는 걸까? 왜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복도에 서서 기다릴까? 아마 우리가 기다림만큼 고통스럽게 배운건 없기 때문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 입학 기다리기, 졸업 기다리기, 은퇴 기다리기, 그리고 어쩌면 기다림조차 기다리기.
<기다림을 기다리기> 中
 
   



기다림에 대한 단상.
우리는 기다림을 싫어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건 어떤 설레임? 기대감? 현재에 대한 불만족?
나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미래에 대한 설레임이다. 그 무언가가 언제나 늘 나로 하여금.. XX가 되면. 언제가 되면 꼭 무언가가 이루어지겠지 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 입학을 기다리고 졸업을 기다리고 새로운 곳으로의 도전을 기다리고 내가 했던 일의 보상을 기다리고ㅡ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보상이라는 것이, 기다림이라는 종착지가 모호해지는 순간 방황하고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나 보다.
항상 무얼 그렇게 기다려온걸까. 아흔살이 되고 나서도 나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살게 될까.





   
  나는 에밀을 존경했다. 그는 내 눈에 진정한 어른이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아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많은,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 나는 에밀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내가 그에게서 뭘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척 많이 배웠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역에 있을 이유 없이, 그러니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감탄하며 무언가 구경하거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서도 그저 거기서 서성이는 법을 배웠다. 그냥 여기 있기, 그냥 존재하기, 그냥 살아 있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中
 
   



이 책을 샀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작가보다는 제목에 끌려서였다.
시간이 많은 어른. 내가 아직 어른이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이스를 잃어버려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던게 습관이 되버린 건지, 과연 언젠가는 나도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좀 더 여유있게, 기다리기. 느긋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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