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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캔들플라워>, <바리공주>의 김선우 시인의 첫 여행 에세이다.
(친필 사인본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
여행 에세이를 쓰지 않는 김선우 시인에게 있어 어쩌면 유일한 책일지도 모르게 한, '오로빌'이라는 곳이 있다.

:오로빌
'새벽의 도시'라는 뜻의 오로빌은 인도 남부 코르만젤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꾸던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신념에 따라 1868년 첫 삽을 떴다. 전 세계 40여 대국 2천여 명이 모여 평화와 공존을 실험하고 있는 생태 공동체이자 영적 공동체이다.

나는 인도를 여행해본 적이 없다.
김선우 시인의 말을 인용해보면 인도는 여행자에게는 무언가 불편한 곳.
동남아와는 또 다른 마인드의 사람들, 찌는듯한 폭염, 그들만의 사상과 장소가 주는 독특함..
인도로 가는 표를 쉽게 끊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한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라.
그런 인도 남부에 유토피아를 위해 실험하고 꿈꾸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돈과 명예에 휘둘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연을 해치치 않고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실험 공동체.
이 책 한권으로 오로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오로빌은 '노력하고 꿈꾸는 도시'라고 정의내려본다. 나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기억나는 스리 오로빈도의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것으로 나아가라.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마음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교육의 세 가지 원칙.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성장하는 교육.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지 않는 것.
계속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한가지 욕망을 여럿이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로빌리언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사소한 것이라도 자발적으로 행하고
일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직업을 바꾸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것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동기에 의해서만 일을 하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행복이 아니라 쾌감이라고 하는데
쉽게 훼손되고 잃어버릴 염려가 있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질 높은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마음을 열어놓는 일, 자신을 비우는 일.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데! 라는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일. 이것은 오로빌 바깥세계에서도 개인의 행복을 위해 아주 필요한 마음자세이기도 하다. 오로빌의 사는 사람들의 경우, 어느 누구 하나 슬렁슬렁한 사람들이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다른 출발선 위에 놓으려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개성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 그런데 오로빌은 인류의 화합과 조화를 꿈꾸고 일체성을 꿈꾸는 공동체이니 아상을 내려놓아야만 행복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나간 나를 잊고 다시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서는 것.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행복을 위해 과거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
오로빌에서처럼 지금의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사다나 포레스트. 황무지땅을 숲으로 만들어 완전한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오로빌은 실험적 공동체이고 자발적인 교육이 행해지고 있으므로 오로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학을 갈 때가 되면 정규 교육을 받으러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그런데 정규교육 이후 다시 오로빌로 컴백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물질도 풍족하지 않고 기후도 열악한 이곳으로 그러나 오로빌리언들은 다시 돌아온다. 쾌적하고 안락한, 원하는 모든 물건들이 가게마다 즐비한 대부분 선진국이라 할 나라들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고 나면 돌아오기 싫어질 것도 같은데 왜 그들은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까. 체감하는 삶의 질, 삶의 만족도가 크기 때문일거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

 


 


   
 
나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즐기는 삶이 더 근사해 보인다. 무엇을 하든 예술과 멀리 떨어져 살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림 그리는 농부, 음악하는 어부, 교사이면서 로커, 목수이면서 종교인, 헤어디자이너면서 영화감독, 청소부이면서 첼리스트, 뭐 이런 일들의 조합들이 떠오른다.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정체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생활이 편안해진다는 장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신의 고양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는 단점을 내포한다. 탐험이 정지된 삶의 권태와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평생 몸담은 분야의 지식과 기술은 늘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놓치기 쉽다.
 
   



생활의 안정감 vs 생활의 두근거림.

이 미묘한 선택의 경계에서 나는 늘 고민한다.
흥미를 느끼는 모든 일들에 도전하기에 안정감이 주는 풍족함을 놓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늘 조금씩 시도했다 포기하고 금방 의지도 약해져 버리고
결국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게 되고.
인생은 통틀어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한다는 자세를 갖고 싶다.
꼭 오로빌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꿈 없이, 안전한 길로만 골라 디디며 지루하게 살고 싶은가. 정말로? 라고 이곳에 오는 게스트들에게 오로빌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묻게 되는 곳이다.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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