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에는 잃어야 얻는다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카를 융의 말
칼 구스타프 융 지음, 변지영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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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아닌 자기로 살아가기'

 

이 책은 개론서가 아니다. 융의 이론을 깊게 설명하지 않는다. 복잡하지도 않고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문장으로 기본 개념들에 대한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융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할 작업이라 생각된다.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발췌할 수 있었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만일 여러분이 융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다면 보통 사십대나 오십대, 빨라야 삼십대 중반 이후일 가능서이 크다.”(p. 5) 동의한다. 사회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세대는 어쩌면 융에 관심을 두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독자는 아마도 이러한 세대일수록 더 깊게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읽으면서 계속 ‘데미안’을 생각하게 되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자아와 자기, 개별화 또는 자기실현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에서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세세한 내용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융의 전집을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이 전집과 융의 저작들에서 발췌한 것이니 앞 뒤 맥락을 함께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짧게는 하나의 문장부터 긴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로, ‘개별화’로의 목표를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한 번에 읽어내도 좋을 것이지만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이어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p. 299에 있는 ‘용어 설명’부터 보는 것을 추천하겠다. 융 이론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 용어들에 대해 알아두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 더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가는 나로서는 이 책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걸 잘 안다. 한 문장이라도 쉽게 읽고 지나갈 수 없었다. 두 번, 세 번 읽고 지나간 대목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면을 계속 들여다보려 애쓰며 읽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면면, 해석되지 않던 여러 꿈들도 생각하게 되었다. 융이 이룩한 ‘분석심리학’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싶다는 욕구도 커졌다. 이 책이 좋은 자양분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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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러분이 융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다면 보통 사십대나 오십대, 빨라야 삼십대 중반 이후일 가능서이 크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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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헬렌 듀런트 지음, 황성연 옮김 / 서사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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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증오 그 사이 어딘가’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FUNERAL”이다. 장례식이란 제목을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로 변경한 것은 신의 한 수 같다! 서두에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제목으로 치환한 것은 아주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에 강하게 끌리는 경험이 흔치 않지만 영문 제목 그대로를 한글 제목으로 썼다면 이 책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듯하다.

망자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인 장례식에 초대받는 것, 그 기분이 어떨까 하는 호기심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처음에는 자신인 줄 모르고 초대받은 곳으로 향한 주인공은 신분을 바꾸고 숨어살고 있는 처지인데 누군가의 – 발신인이 없는 – 초대를 받고 식장으로 향한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뭔가 남겨놓았다는 어쩌면 달콤한 유혹에 끌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처지였으니 유혹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이 시작된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대상a)을 찾아 헤매며 살아가게 된다는 라캉의 말처럼 이 책의 인물들 모두가 이 말에 있어 자유롭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신분을 감춘 채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주인공을 비롯해 각 인물들 모두 각자 욕망하는 것을 위해 고된 인생의 굴레에서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펼쳐두고 보니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애잔하고 씁쓸하며 한편으로는 저럴 수밖에 없었을 테지 하는 생각에 이르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또한 욕망의 노예에 불과한 법, 예외는 없다.

‘영아 매매’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이슈로 꼽는 비중 높은 소재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전쟁 중에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이 비참한 수레바퀴는 언제쯤 멈추게 될까? 잊을 만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 다 성장한 후 부모를 찾아 내한하는 이들의 소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영아 매매 실태라는 걸 어떻게 부정한단 말인가. 이를 소재로 한 컨텐츠 또한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현실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씁쓸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정말 간만에 좋은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다! 여기저기 놓아둔 빵 부스러기를 찾아내는 기분도 좋았지만 작가 특유의 사건 풀이도 재밌었다. 무엇보다 속편이 나올 것인가 하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한 결말은 정말 영화 같았다. 정말 영화로 제작해도 좋을 매력적인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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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 서사원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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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으로 들어가기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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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교훈을 얻거나 감동을 느끼거나 하는 것과 다른 경험 – 내 깊은 저 어딘가에 있을 감춰진 감정, 상처, ‘나’를 맞닥뜨리게 되는 것 말이다.

 

‘이다’는 십 대 초반에 언니와 이별하게 된 후 몇 년 후에 엄마와도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이다는 엄마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도망하기’, ‘부인하기’, ‘외면하기’, ‘위험을 무릅쓰기’ 등등의 행동을 반복한다. 엄마와 살던 집에서부터 도망쳐서 ‘뤼겐’이라는 섬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내면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인하곤 한다. 언니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원하지만 말로는 ‘아니’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는 ‘라이프’의 마음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리고 넘어지면서도 산길을 무작정 달리기도 하고 높은 곳을 기어오르기도 하며, 새벽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에 바다로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죽을 것처럼... 아니, 죽음충동에 휩싸인 것처럼! 이런 것들이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언니와 헤어지고 엄마와 단둘이 살게 된 것은 외로움과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삶이었다. 간간히 언니와의 상봉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사마라’ 외에 그에게 친구는 없다. 뒤이은 엄마의 자살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 도망친다. 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정하듯이 어릴 때 이별과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하는 것은 인생 전체에 있어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잘 다루고 받아내고 인정할 힘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지나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잘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은, 꼭 한 번은 큰 파도처럼 나를 덮치는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일 것이다. 이다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보살펴 주는 이들을 만나고 사랑도 하게 되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며 어쩌면 큰 탈 없이 그 시기를 지나가는 듯하다.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뒀어.”(p. 281:12)라며 깊숙이 감춰둔 상처를 꺼낸다. 나도 하지 못하는 – 부럽기만 한 행동을 해내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김형경 작가의 ‘꽃피는 고래’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작인 ‘스물두 번째 레인’의 후속이라 한다. 전작을 만나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이 내용은 @dear_haru_ 님의 서평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다의 시각과는 다를 ‘틸다’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해당 책을 찾아서 구매했다.

내면에 해결하지 못한 상처를 갖고 있는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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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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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을 알면 더 친해질 데미안’

 

목차에서 주목한 것은 ‘두 세계’와 ‘에바 부인’이다. 서문을 읽고 ‘이건 정신분석 이야기구나.’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속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서문 마지막 문장이다.

 

‘나’ -> ‘싱클레어’ -> ‘데미안’ -> ‘베아트리체’ -> ‘에바 부인’

처음에는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사건이 전개되지만 곧 주인공의 이름이 ‘싱클레어’라는 걸 보여주고 뒤이어 ‘데미안’이 등장한다. 둘은 함께 유년기를 보내는 것 같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형이라 부른다. 자신의 곤란한 일을 해결해주는 고마운 형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이름을 만남이 이어진 후에야 부른다. 이게 좀 이상했다. 보통 그러지 않지 않나? 여기에서 데미안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다. 이야기를 잘 따라가니까 이해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정신분석으로 보아야 이해가 된다는 것을.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참 나’이고 베아트리체를 거쳐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여성성이라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싱클레어의 ‘아니마’인 셈이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이 등장인물들을 종합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융’ 심리학(심층 심리학)을 이해할수록 이 작품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다.

 

시시콜콜 내용을 다 들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정말 유명한 책이고 관련된 자료만 해도 엄청날 테니까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 책을 제대로 볼 일이 없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눌려 살았으니 그도 무리는 아니었다. 두 세계 중 밝은 세계다. 그러니 어린 싱클레어와 별 다를 바 없이 자랐던 터다. 지금이라도 이 유명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해설을 읽어도 좋고, 나름의 분석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서처럼 “헤르만 헤세의 대표 성장 소설”로 이해해도 좋고, 니체의 사상 - ‘신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때려 부수고자 하는 사상 - 으로 이해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두 세계를 나누고 있던 어릴 때의 세계관이 나중에는 합쳐지니까 그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융도 참 나로 향하는 것을 주창했고, 니체도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중요시 했으니... 하지만 그 중심에는 정신분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같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을 헤세가 ‘심층적 구조’로 썼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 그런 것은 몰라도 상관없다. 융의 심층심리학을 자세히 몰라도 괜찮다는 말이다. 꼭 그런 이론들을 몰라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누구나 알을 깨고 나서고픈 욕망이 속에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시도했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그런 소망쯤은 품고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도 이 작품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소담’에서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어 개인적으로 무척 감사하다. 제대로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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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 나를 되살리는 이타와 돌봄의 윤리학
지카우치 유타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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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A라고 말했는데, ‘너’는 B라고 이해하는 경우 말이다. 분명히 나는 너에게 제대로 말을 전했다고 판단했는데도 너는 내 말을 잘못 이해했다고 전해 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큰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작가는 이타와 돌봄의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내린다. “이타란 자신에게 소중한 것보다도 타인이 소중히 아끼는 것을 우선하는 행위다.”_p.13 이렇게 정의하지만 이것은 계속 조금씩 수정된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작가는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이타와 돌봄을 재정의해 나간다.

 

작가는 우리가 왜 타인의 언어와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너무나 자세해서 철학적 의미가 적지 않음에도 술술 읽힌다. 편집의 힘이기도 하겠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여느 철학책들과는 다르다고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그 중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이론과 사고실험 등을 기반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단연 돋보인다. 들어보지 못한 독자라 하더라도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라캉’은 언어가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의미를 서로 이해하기에 어렵다고 말한다. 흔히 ‘미끄러짐’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 책을 이렇게 바라보아도 큰 무리는 없겠지만 작가는 그 원인에만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명쾌하게 말이다.

 

내 말이 타자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타자의 말이나 마음이 나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어려운 철학책 같지만 쉽게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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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나의다정함이당신을상처입힐까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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