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제국주의 열강은 ‘야만상태의 후진국을 文明化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자유평등론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유인석은 타국(弱小國)에 대하여 협박과 약탈을 일삼는 제국주의의 행태 야말로 ‘野蠻‘ 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야만적 행태는 그들의 자유평등론과 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행태는 분명 그들의 자유평등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인석의 위와 같은 주장은 분명 일정한 타당성이 있고, 따라서 유인석의 ‘誤解‘도 일정한 ‘眞實‘을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유평등론의 한계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 P24

‘소극적 자유‘는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나 가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표방함으로써 정당화되는 것이다. 반면에, ‘적극적 자유‘란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나 가치‘를 전제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에 따르는 것‘ 또는 ‘자발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라고 보는 것이다. 요컨대 적극적 자유란 곧 ‘自律‘을 의미하는것이다. 유교에서는 항상 ‘天理를 따를 것‘ 또는 ‘天理를 추구할 것‘을 주장한다. 공자는 "70살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였어도 法度에서 벗어나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고 하였다. 공자도 ‘마음이 하고싶은 대로‘ 하였으니, 그는 自由人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天理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유교가 추구하는 자유의 진면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유교에서 추구하는 自由는 이른바 ‘적극적 自由‘와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적극적 자유‘ 는 우리가 貪慾 또는 無知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적극적 자유‘는 ‘자신의 自由意志대로 살고 싶어하는 우리의 소망‘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서구 근대 자유주의에서는 대개 ‘적극적 자유‘를 자유로 인정하지 않고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며, ‘객관적 기준‘을 부정하고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자유는 결국 ‘멋대로 자유‘로 귀착되기가 쉽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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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의 생산을 노동을 통한 일의 생산과 분리함으로서, 후자를 역사와 인간성의 영역으로 높이고, 전자를 ‘자연적‘이라고 하고, 후자를 ‘역사적‘이라고 명명함으로서, 이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여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앞에 난관을 조성하고 있다. 여성과 여성 노동에 대해 이들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독일 이데올로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 대한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개념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이들이 각각 자연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과정에서 어떻게 고유의 인간적 혹은 사회적 본질을 형성해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엥겔스 방식대로 하자면, 여성이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진화의 영역과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사실 전세계적으로 기능주의자들과 행태연구자들이 하고 있다.) 여성은 (엥겔스 규정에 따르면 아직 역사의 단계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동물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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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동의 수단은, 다시 말해서 노동개념에서 암시적으로 생산을 의미하는 신체는 손과 머리이다. 여성의 자궁이나 가슴은 그 범주에 끼지 못한다. 따라서 여성과 남성은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 다르게 규정된다. 인간의 신체 자체도 진정으로 ‘인간적인‘ 부분(머리와 손)과 자연적‘ 혹은 순전히 ‘동물적 부분(생식기, 자궁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런 구분이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남성의 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결과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수단으로 직접 사용될 수 있고, 혹은 기계와 곧 연결될 수 있는 인체의 부분에만 관심이 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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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원근법에 의한 사고의 혁명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회화에서 원근법은 작가가 자기의 위치에서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그리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이분법이 이루어지면서, 억압과 희생이 착시 효과와 함께 정당화하게 된다. 작가가 서있는 위치는 합법적인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왜,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가? 작가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어떠한자리였는가? 소위 문학에서 관점이라는 하나의 초점은 어떠한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르네상스의 작가가 서 있었던 위치는, 근대화라는 개념과 절대왕정이라는 정치적인 합목적이 그 이론적인 기초를 이루게 된다-‘하나로 몰고 가기.‘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의 원근법과 개념을 같이하여, 사람들의사고 방식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원근법상의 사고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르네상스적인 사고 방식에서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드러나며, 사고의 전환이 20세기를 마감하는 현금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주인공이 있으되, 그 주인공이 하나가 아니라, 복합의 시점에서 주인공을 보아야 한다는현상이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이미 중세 문학이 시도하였던 하나의 양식으로 우리는 그것을 전근대적이라 하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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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혹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혹은 ‘문명‘은 특히 그런 주장을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시민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모든 노골적인 폭력을 금지하고 이를 총체적 주권자인 국가에 양도했기 때문에 이 ‘문명‘은 다른 모든 ‘야만스럽고
‘미개한‘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주장해 왔다. - P89

독립적인 그룹들은 ‘일인칭 정치‘ 원칙을 고수했다. 정당들이 표를 모으기 위해 자신들의 활동을 이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 지도자를 붙잡고 자신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싸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던 다른 많은 무력한 그룹들의 경험이기도 했다. 이런 ‘대의 정치‘에 반대하면서 독립성의 원칙이 고수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여성이 자신의 투쟁, 자신의 분석, 자신의 조직, 자신의 활동을 다른 어떤 이에게도 위탁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힘으로 정치에 참여할 것임을 의미했다. - P92

신페미니스트운동은 통일된 프로그램과 완성도 높은 이론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 항상 관계하고 있는 사적 영역과 자신의 몸과 관련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남성 지배에 맞서는 반란을 시작하면서 이는 고유의 역동성과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운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사회 구조 깊숙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치운동으로서 페미니스트운동은 오늘날 다른 어느 사회운동보다도 더 광범한 반향을 낳는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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