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교의 恕는 항상 推己及人(能近取譬)으로 설명되어 왔는데, 이는 각자 사람들 ‘자신(己)‘이 바로 판단의 준거요 주체라는 점을 의미한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자는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한다는 것은 또한 어려운 일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일을 도모할 때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할 때에는 반드시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바있다.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함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면, 忠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실천의 원리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忠은 다만 ‘권장사항‘에 해당되는 것이었음 또한 분명하다. - P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교에서는 ‘소극적 측면의 恕‘를 더욱 긴요한 실천의 원칙으로 삼는다. 이것은 공자가 종신토록 실천해야 할 하나의 원칙을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로 제시한 것이나, 『대학』의 絜矩之道에 대한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자가 恕를 말하면서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설명하였듯이, 유교에서 恕를 말할 때에는 이 ‘소극적 측면의 恕‘에 우선적 초점이 있었다. - P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주의에 있어서 몽매한 대중을 합리적 이기주의자로 ‘계몽‘시킨다는 것은 있었어도, 정치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책임‘진다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유주의는 오히려 정치적 소극주의를 배태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한 세기의 근대화과정을 반성해본다면, 韓末에는 동도동기론(反近代化論)과 서도서기론(全面的 近代化論)의 대립이 있었고, 그것이 지양되지 못한 채 國權을 상실하였으며, 식민지시대에 일제의 수탈체제를 뒷받침하는 정도의 산업의 근대화가 있었으며, 해방후 민족이 분단되어, 남한의 경우 거의 맹목적인 서구화의 과정을 겪었다고 하겠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지금은 지난 한 세기의 성과를 일단 냉철하게 결산해야 하는 시점이다. 남한의 경우 상당한 民主化와 經濟發展을 달성하였지만, 그에 못지 않은 정치적·경제적 문제점들로 인해, 미래에 대한 전망에 있어서는 오히려 암울하지 않은가? 너무 지나친 비하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한 세기의 근대화과정은 치밀한 전략에 입각했다기보다는 대체적으로 부화뇌동과 주먹구구식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배워올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戰略‘이 절실히 필요하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