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없이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지만 또한 불건강한 인정은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귀한 자식은 반대로 귀하지 않은 이름을 붙여 칭찬의 독을 피한다. 꼭 칭찬하고 인정해주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병이 되듯이 불필요한 인정이나 칭찬도 독이 된다. 잘못했을 때 꾸짖거나 벌을 주는 것도 건강한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떠날 수 없는 진리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충분히 인정하고 사랑하고 칭찬하므로 남에게서 이런 것을 바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는 자기를 인정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멸시하면서 타인에게 자기를 사랑하고 인정해 달라는 사람이다. - P27
노 학자의 유쾌하고 신랄한 우리말의 역사적 고찰과 우리가 살아오는 세상 이야기. 글쓰기의 연륜이 물씬 풍기는 재미나는 책이나, 약간의 번역어투 내지 한문투가 어려움을 줄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그 여운이 상당하다. 문학 평론서를 써오신 것은 듣고 보아 아는데, 꼭 읽어봐야겠다.
칠판을 향해 있기를 대충 스무 해, 칠판을 등지고 서서 허튼소리 하기 마흔 해를 넘기니 삶이 저물었다고 말하곤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그 사이 이른바 교훈적인 얘기를 칠판을 등지고 서서 늘어놓은 적은 없다. 지혜롭게 살아오지 못한 터수라 주제넘게 생각된 탓이다. 그럼에도 어디서 본 얘기가 아니라 삶의 길을 걸어온 사이 실감한 것을 얘기한 적이 몇 번 있다. 평생 반려의 선택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 대한 소견을 요청받았을 때다. 그때 얘기한 것이 들국화 경험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근사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온전한 것은 찾기 어렵다, 아니 찾아지지 않는다. 사람도 그와 같아 가까이서 보면 크고 작은 흠결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명심하면 너무 완벽주의로 흘러 무던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란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선택이란 대체로 체념의 한 형식이기도 하다는 막연한 생각을 토로하고 나서 역시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어 반복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 P243
번역상 약간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느껴졌지만, 여성(그리고 남성)의 권리 신장 및 생존과 지구의 모두가 누리는 진정한 공생에 관하여 고뇌를 하고 있다면 두께를 감수하고서라도 읽을 만하다. 80년대에 마리아 미즈의 책(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986)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이 등장했지만 그때와 비교하여 나아진 듯 나아지지 않은 현 상황이 애석할 따름이다.
자살도 살인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반칙일 수밖에 없다. 인구 감소가 얘기된다는 사회에서 자살의 부정적 국민은 더욱 크게 부각된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것과 함께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생명의 외경에 대한 감각이 상대적으로 희박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진이란 말의 유통소거는 안타까운 일이다. 논리가 아니라 심정이다. -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