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잊고 작품에 몰두해도 그것이 나와 직접 연관되어 나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나로부터 외화(外化)되었다면 그것은 나와 직접 상관이 없이 따로 노는 외물(外物)일 뿐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그것을 나와 일치시키는 수행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다른 무엇보다 그게 더 중요한 일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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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사들이 환자들을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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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말한 논어 활용법도 이런 것이 아닐지?

언론을 향해 신뢰를 강조하면 의외로 신뢰를 돈벌이와는 무관한 ‘도덕‘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성공한 자영업자나 기업가들을 만나보라. 파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돈을 벌 수있느 냐고 말이다. 신뢰라고 해서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열망과 실천 의지에 대한 믿음을 갖게끔 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지역엔 신뢰에 목마른 사람이 많다. 연고와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지역의 삶에 대해 마음껏 수다를 떨면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유대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지역을 사랑하고 싶어도 그 사랑을 음미하고 실천할 수 있는 마당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일을 지역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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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질문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뉴욕, 로스앤젤레스 아니면 파리나 밀라노 또는 발리 섬이나 캘커타 또는 바그다드나 탄자니아 그 어디라도 좋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언어와 종교,생활습관이 다른 곳으로 가서 산다면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리라,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한 발상이다. 만약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알고 싶었다면 자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예컨대 부모라든가) 묻는 편이 훨씬 유용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외국까지가서,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대화하고, 그 결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고로 ‘나를 찾는 여행의 진짜 목적은 ‘만남‘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나에 대한 지금까지의 외부평가를 재설정하는 데 있다고본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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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줄곧 환자를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들이쉴 때가 있으면 내쉴때도 있어야 하듯이, 사람들은 병실 밖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고, 틈틈이 정상적인 삶을 누려야 한다. 항상 환자를 의식해서는 효율적으로 간호할 수 없다. - P271

환자가 처음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다양한 양상의 투병 생활이 이어지고 환자가 사망한 이후 긴 시간이 흐를 때까지 가족들의 욕구는 변화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환자 가족들은 정작 가장 필요한 순간에 쓰러질 지경이 되도록 스스로를 혹사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배분해야 한다. 사려깊은 조언자라면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것과 그들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P272

나는 가족들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한부환자 본인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가족들 역시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슬픔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면, 가족들은 환자의 강인함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슬픔을 좀 더 품위 있게 견딜 것이다.
죄책감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동반자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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