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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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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세실, 주희]

 

"주희씨도 성형을 좀 했겠죠? 한국 여자분들은 성형을 많이 하니까요. 보편적으로."

"한국 여자가 성형을 많이 한다고요? 그러면 일본 여자 대부분은 AV를 찍나요?"(20)

 

J와 주희, 주희와 세실. 미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 뉴올리언즈의 축제 문화와 명동의 패션 문화. 다소 도식적인 구도가 몰입하는데 거슬리긴 했지만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J와 세실 사이에서 주희가 보여주는 윤리적인 태도이다. 마르디 그라를 검색해보고 이를 얘기했다가 비웃음을 샀지만, 주희는 연장선 상에서 가네가후치를 검색하고 히메유리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이 그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했다. 주희는 J가 무심코 주희에게 상처를 준 방식으로 세실에게 상처주지 않을 것이다. 주희는 J와 관계를 끊었지만 주희는 세실과의 관계를 안간힘을 쓰며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내게 보여 준 세계시민적 윤리이다.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선배는 그저 모두가 성공하는 필승 공식을 만들었고, 나는 그 공식의 성실한 이행자였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불행해지는 사람은 없었다. ... 그러니까 한 재벌의 미술 창고가 열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모든 것이 알아서 돌아갔다.(61)

 

미술과 자본의 순환 고리(이건 작품해석에서 나온 해석 틀이다) 속에서 화자는 미술에서 자본으로 갔다가, 그 안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그리고는 미술 쪽으로 돌아와야 아귀가 맞을 것 같은데 극적인 순간 다시 자본으로 돌아간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싶어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무얼 하긴 했는데 그건 해주가 아니라 다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해주가 분명 보았다고 했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한 걸 왜 혼자만 봤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었다. 왜 너만 계속 다르게 듣냐고, 괜한 일에 제발 걱정 좀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려고 애쓸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던 해주를 말릴 께 아니라, 뭐가 그렇게 너를 암담하게 만들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말해보라고, 그게 뭐든 같이 견디자고. 아니면 그냥 옆에서 가만 듣다가, 듣고 싶어할 말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내 말만 해버렸다는 생각에 외로워졌다. 그걸 해주 혼자 견디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104)

 

오경남이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 나머지 사람들이 느낀 근 기분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회사에서 점진적으로 인원 감축을 하겠다고 공표한 지 이틀 만에 오경남의 버스가 예정에도 없는 먼 곳으로 가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그 묘한 안도감이 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게 왜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요?(116)

 

무엇보다 그 여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 덕분이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누린 그 다행스러운 순간을요, 함부로 무엇이라고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래요.(121)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 실은 타인의 불행 덕분에 딱 그 만큼 나에게 돌아온 행운을, 남들만큼이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인 듯 한데, 사건 속에 놓여진 인물들 간의 구도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자는 사고로 잃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미안해 하는데, 그의 미안함과 타인의 불행 덕분에 행운을 누린 사람들이 그 타인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화자는 아내 덕분에 얻은게 없는데 말이다. 반면 버스 기사는 오경남 덕분에 구조조정을 면했고, 버스 기사의 승객들은 그 여자, 아마도 해주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오경남은 짤렸고, 해주는 죽었고, 이번에는 승객을 살린 버스 기사도 짤렸다. 오경남도 해주도, 버스 기사도,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았는데, 그 때문에 스스로는 불행을 겪고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은 살았다. 뭔가 우리 내면의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행운을 얻은 사람들은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는데 그 미안함은 자신의 이기심을 자각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화자가 아내에게 느끼는 미안함 역시 아내를 위하는 척 했어도 실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운 미안함이었던 것 같은데 명쾌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이해가 안되니 감상평도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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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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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그날 말고 ... 내 얘기 말이에요, 내 얘기 ... 아, 내가 용산에 대해서 뭘 알아요? 그런 건 난 모르고 ... 내 얘기 ... (64)

 

그러니까 형씨도 나랑 비슷한 거 아니냐구요.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 아니냐구요. ...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죠? (67)

 

왜 크레인 기사는 소설가의 휴대폰을 부순 후 자신의 거짓말을 정정했을까?

가해자가 될 뻔 했던 나정만은 용산에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용산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겹친다. 작가는 현장에 없었던 사람을 소환하여 현장에서 더 이상 발언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그때 내가 갑자기 엉엉 울어버린 것은 결코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결혼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 어쩐지 그 풍경이 좀 서러웠고 ... 또 조금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120)

 

나는 처음부터 그런 남자가 불편했다. 그냥 불편한 것이 아닌, 마치 오래전 말다툼을 한 동창생을 여행지에서 마주친 듯한 기분, 혹은 친구 아버지가 모는 택시를 우연히 탄 듯한 당황스러움, 그런 어색함이 느껴졌다.(127)

 

김숙희가 왜 남루한 아저씨에게 마음을 주었는지, 그와의 결혼을 부모에게 밝히던 날, 섭섭해하지 않는 부모를 보고 왜 서럽고 수치스러웠는지, 성실하고 착한 남편이 주는 사랑이 왜 김숙희에게는 닿지 않았는지, 남들에게는 투명인간같은 정대리가 왜 자신에게는 불편하면서도 연민을 느끼는지, 외도을 알게 된 남편이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자 왜 그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이후 난봉꾼 박창수를 왜 거두어들였는지, 결국 자수를 결심하고 진술서를 쓰면서 왜 자신도 모르게 엄마 얘기부터 꺼낼 수 밖에 없었는지

 

이유야 간단하다.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으니까. 김숙희를 그저 판단하기 위해 소설이 필요하지는 않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김숙희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 후기 [이기호의 말]

자신의 소설에 이기호를, 대학에서 강의하는 소설가를 자꾸만 등장시키는 이유에 대한 소설 같은 고백. 소설 뒤에 숨어서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을 바라만 보는 자신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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