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완독하다니 ㅠㅠ매번 초반에 나가 떨어지던 나의 에코 책에대한 징크스가 독서모임 때문에 깨졌다 ㅋㅋ우선 이윤기 선생님의 탁월하고 자연스러운 번역이 큰 역할을 해줬고,,나름 지적허영심이 있는 내 스타일에 자극을 준 책이어서 초반 힘든 진입부를 조마조마하게 넘어갔다. (물론 이해하고 넘어간건 아니었다ㅜ)이 책이 처음 나온 1980년대에 대학생들 사이에 이 책을 읽는게 유행이었단다. 모두들 이 책을 이해하고 재미있게 읽은건 아니었을듯;; 나처럼 지적허영심으로 꾸역꾸역 읽어냈을듯 ㅋ고전은 아니었지만 무척 센세이션한 작품이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대표적 기호학자의 책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작품의 등장인물.. 특히 죽어나가는 희생자들도 매한가지였다.. 지적 호기심의 충족 때문에 살뜰하게도 침까지 묻혀가며 책장을 넘겨 얻는 지식이 바로 독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하지만 그들이 뭘 그리 잘못해서 죽어나가야 했을까.중세시대 교회의 체제유지에대한 몸부림.. 폐쇄성이 무섭도록 섬뜩하다.여전히 많은 지식이 교회의 체제유지에 방해가 된다며 터부시되고 외면당하는데, 호르헤의 말처럼 교회의 지식..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보존‘ 되어야 하고.. ‘탐구‘ 할 가치는 없다는 그 옹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종교적 범주 안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이란, 그 시대의 관점으로 쓰인 하느님 말씀을 이 시대의 관점으로 융통성있게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마지막으로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즉.. 진리는 교회 수도원의 장서관에 꼭꼭 숨겨져 있을때 진리가 되는게 아니고..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회자되고 탐구될때 자유롭게 날아올라 비로서 참된 진리가 되는 것임을..김춘수의 시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다..장미의 이름도 이름을 불러줄때 그 진리가 진짜 진리가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