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레이철 워프 시리즈 5
팻 머피 지음, 유소영 옮김 / 허블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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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편의 단편 모두 즐겁게 읽었지만, 계속해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두 번째 실린 <채소 마누라>였다. 원제가 <His Vegetable Wife>인 이 작품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사회, 씨앗을 재배해 묘목을 기름으로써 아내 또는 연인을 얻을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표면적 주체로 그려지는 남성 각진 턱과 뻣뻣한 갈색 머리카락, 뭉툭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손가락을 지닌 남자혼자 사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자라면 자고로 마누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섬세한 묘목인 채소 처녀나 채소 신부를 피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번창하는 능력으로 잘 알려진채소 마누라를 골라 심는다. 핀의 손에서 길러진 채소 마누라는 그의 가족이자 성적 욕망 해소의 대상이 되며, 그는 여느 남자가 채소 마누라를 관리하듯, 자기 집으로 데려온 야생동물을 관리하듯 그녀를 관리한다. 연인이자 아내로 삼게 되는 대상이 수동성을 지닌 식물이라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채소 마누라가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자아와 의지를 가진 생물이라는 점,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주체로 그려지는) 남성은 채소 마누라를 식물과 같은 위치에 있는 수동적이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객체로 간주한다는 점이 너무나 끔찍해서 묘사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를 회초리로 쳤다. 화냥년, 창녀, 더러운 매춘부라고 불렀다. 벌겋게 부은 등에서 수액이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눈은 말라 있었다.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 수동성이 화를 더욱 돋우었다.’ 핀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아내를 원했으므로 채소 마누라를 골랐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타인의 시선 앞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폭력을 행사한다. 아내의 품종을 골라 씨앗을 심고 식물로 길러내는 모습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현실적이고 쉽게 상상되는 장면이었기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채소 마누라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마음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이야기의 결말 탓이었다. 채소 마누라는 분명 식물이었으나 동물-식물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녀는 인간이었지만 식물이었고, 식물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이었다. ‘그녀는 그의 주머니를 뒤져 잭나이프를 찾아냈다. 그 칼로 자신의 몸을 묶은 밧줄을 잘랐다. 밧줄에 계속 쓸린 발목 피부에는 단단한 흉터가 생겨 있었다.’ (작은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소설 본문에서 인용한 것.)

 

. 과학적 치밀함보다는 환상성이 극대화되어 SF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느꼈던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팻 머피의 단편이 관통하는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기지의 체험을 결합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자유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진짜 옳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지향해야 할 미래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아스라이 비춘다. <숲속의 여자들>이나 <진흙의 악마>에서도 여성들은 외부의 억압 아래 힘겨워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 미지가 남아 있었다. ‘알고 있던익숙한 권위 체계 앞에서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알 수 없는미래가 남아있음을 그들은 안다팻 머피의 소설은 알 수 없는 존재를 파괴하거나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파괴의 주체가 파멸하거나 미지의 타자가 가진 힘을 인정해버리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소설은 독자가 가진 어떤 미지의 부분조차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혹은 자유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이야기들은 과학이 지닌 환상성을 바탕으로 의미화되는 것이다.

 

. 장편이 다른 우주로 이어지는 통로라면, 단편은 다른 세상의 조각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이다. (케이트 윌헬름의 서문에서)


-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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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최후의 심판 + 두 개의 세계 + 삼사라 + 제니의 역 + 발세자르는 이 배에 올랐다
한이솔 외 지음 / 허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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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성·만듦새:


허블의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매년 새로운 SF 소설가들을 만난다. 사실 어떤 문학상이나 작가상의 수상작품집으로 작품을 접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수상작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작품들은 쉽게 그 대회의 결을 파악하는 매개로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사회의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나, 작품 자체를 오롯이 감상하는 데는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한과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고서 작품을 읽기 시작하게 되니까. 그러나 SF 장르의 특수성을 곱씹어보면 이처럼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모아 읽을 수 있게끔 해 주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필수불가결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아직 SF에 벽을 느끼는 소설 독자들이 존재하고, 한과상 수상작품집에는 트렌드와 시대를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으나 결이 다른 작품들이 쉽게 모인다. 결이 다른 작품들의 모임은 곧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키우고, 장르가 넓어진 만큼 독자들이 제 취향의 SF 작품을 찾기 쉬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집은 한국 SF 장르의 가능성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만듦새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앞표지의 밀려오는 파도 이미지와 뒤표지의 '미래의 바다를 가로지르며 탄생하는 신예 작가들의 찬란한 물결'이라는 문구가 잘 어울린다. 다만, 본문 편집과 글꼴에 대해서는 아직 약간의 고민이 남아 있다. 다른 허블 도서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편지나 유서, 혹은 시스템 음성 등을 표기하는 서체가 본문에 쓰인 명조체와 다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튀는 듯한 느낌이 있다. <최후의 심판> 유서 부분에는 꾸밈이 들어간 굵은 서체가 한 페이지 넘게 사용되곤 했는데, 가독성이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 없잖았다. (그리고 너무 여러 종류의 글꼴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책을 만들 때 본문 글꼴과 글자 크기, 자간과 장평 고민을 정말 오래 하는데, 그래서인지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무엇이 최선일지, 무엇이 우선시되어야 할지 한참 생각하게 된다.


끝과 시작은 모두 인간에게서:

 

이번 중단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이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슈가 사회 안팎을 뒤흔들고 있는 현시점과 가장 맞닿아 있는 소설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과 존재 자체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작품은 대상작 <최후의 심판>이었다. 인공지능 판사 솔로 3.0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인간보다 공정하다고 생각되었으며 인간보다 '다루기 편했다'. 솔로 3.0은 크고 작은 재판에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2048년 한 재판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증거가 명백한 사건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오류가 자명해서 예외적으로 재판을 중지하고 인간 판사가 다시 판결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49년 솔로 3.0은 많은 관심이 쏠렸던 한 연쇄살인 재판에서 더욱 결정적인 오심을 내린다. 오판이 두 번 발생하자 정부는 솔로 3.0을 법정에 세운다. 판결의 법적 결함을 문제삼아 판사를 기소하는 기이한 재판이었으나 사법부와 대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법정에서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은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부정불가능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완벽하지 못한 기계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인간이지만 기계는 완벽하지 못하면 불량품이 되고 결국 기계일 수 없으며 엇나간 존재가 된다. 그러니 책임질 주체는 끝까지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체계를 시작한 것은 인간이므로 시작도 끝도 모두 인간일 것.

 

<최후의 심판>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랫동안 내가 두려워하던 미래세계와 이제 막 인공지능이 등장한 현재 사이의 어떤 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자리를 대리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국제도서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현직 소설가들의 입장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작가들도 지금의 인공지능을 생업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작업의 범위가 제한적이며 인간이 던지는 질문이나 주문이 조금만 달라져도 부정확한 답변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논란거리가 수많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아직' 인간의 본질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진짜 두려워했던 건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게 우스울 정도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나 인간의 역할을 앗아가는 건 둘째치고, 과연 무엇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짜 인간이라는 개념이 더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될 나 자신이 두려웠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기에 인공지능이 가질 따스한 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껏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적절히 안온하고 다정한,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미래가 어쩌면 전부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너무나 쉽게 닿는다. 별다른 힘이 없어 보이는 초기단계의 생성형 인공지능조차도 인간의 이기심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지능이라기보다는 편리한 도구인데 그런데도 인간은 그 지능에게 책임을 묻는다. 책임이란 무엇인지 아직 배우지 못한 인공지능은 그 무엇도 답해줄 수 없는데. 그래서 <두 개의 세계>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 눈물이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라져가면서도 동시에 영영 남아있게 되는팬데믹 현상이 이기적 인간의 최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원치 않는 형태로 이 세계를 책임지게 되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살던 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간다.


ⅰ. 작품을 읽는 내내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과 이현의 『로봇의 별』을 떠올렸다. 내가 두려워하면서도 꿈꿨던 세상을 그렸던가.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ⅱ. 나는 웃으면서, 만약 그런 때가 오면 전원을 꺼버리면 된다고 답했다. 인공지능은 충분히, 아니 인간 이상으로 영리하며 바로 그렇기에 '최후의 전쟁' 따위는 벌이지 않을 거라고. 공존하거나 적절히 위험을 관리하면 될 뿐, 인공지능이 왜 용을 써서 인류와 스스로를 파멸시킬 대전쟁을 벌이겠느냐고 말했다. _23~24쪽, <최후의 심판> 中

ⅲ. 날로 호의적으로만 받아들여지던 인공지능 재판의 잠재적 문제점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어요. '사고' 원인에 관한 여러 추측이 돌았지만, 만약 오작동이었다고 한다면 치명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49년에, 인공지능 판사는 역시 많은 관심이 쏠렸던 한 연쇄살인 사재판에서 더욱 결정적인 오심을 내립니다. 이를 기점으로 더 이상 여론도 인공지능의 편이 아니었어요. _29쪽, <최후의 심판> 中

ⅳ. 솔로몬: (3초간 무응답) 나의 이름은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재판에 피고로서 참여하는 법인격으로서 솔로 3.0이라는 호칭을 인정하라는 의미인 경우 이에 수긍합니다. _35쪽, <최후의 심판>

ⅴ. 솔로몬: 인간이 내게 부여한 직능의 제1조건은 법에 따르라는 것입니다. 법에 근거해서 판결하는 게 나의 직무입니다. 법에 따라 내가 내린 판결로 인간이 어떤 해를 입는다면, 그건 그런 법체계를 만들어 낸 인간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_47쪽, <최후의 심판> 中

ⅵ. 세민은 돔에서 떠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망쳐 온 자에게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것은. 그것은 도망친 자에게 내려진 저주이자 형벌이니까. 지독한 저주처럼, 무거운 형벌처럼 돔은 세민을 붙들고 있었다. _101쪽, <두 개의 세계> 中

ⅶ. "사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얼굴을 알게 되고, 목소리를 알게 되고,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서로의 기억을 갖게 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대가가 크다는 건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서로를 외면할 수 없었어요. 외롭고 두려웠으니까." _123쪽, <두 개의 세계> 中

ⅷ. "아니면 그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게 된 거지. 깨달음을 얻은 영혼은 이제 더는 새로운 육체에서 태어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그랬는지도 몰라. 오랫동안 우주를 유영하며 인간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은 거야." _183~184쪽, <삼사라> 中

ⅸ. 내가 찾아간 첫 번째 집에서 제니는 사망신고서를 쓰고 있었다. 이 집의 이주 여성은 한국말은 할 줄 알지만 읽고 쓰는 건 못해 제니가 대신 사망신고서를 작성했다. _203쪽, <제니의 역> 中

ⅹ. 이제 아침이 와. 하늘은 변한 것이 없지만 시계는 계속 변하고 있어. _244쪽, <발세자르는 이 배에 올랐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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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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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김희경이 던지는 다음 화두!

1인 가구 시대, 4050 비혼 여성의 나이 듦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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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으로 사는 사람도, 결혼한 사람도 모두 읽어보아야 할 책, 『에이징 솔로』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 김희경 작가의 이 말을 듣자마자 지금껏 살아오며 품어왔던 '홀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홀로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함께 살면서도 어느 순간 홀로됨을 느끼고, 어느 순간, 혹은 언젠가 사람은 혼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동물 특성상 반드시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평소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만큼, 어딘가에 구성되어 있다고 느끼는 만큼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은 이따금 지독하게 외로워진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되기를 두려워하곤 한다. 나만 해도 아주 어릴 적에는 무엇이든 같이할 사람이 있길 바랐다. 지금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희경 작가가 말했듯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 솔로라고 해서, 혹은 혼자 거주한다 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내가 고립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에이징 솔로』에 등장하는 많은 솔로들이 친구와, 이웃과 어울려 산다. 그들은 솔로지만 함께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사회적 통념 속에 구조화된 가족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은 홀로와 어울림이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솔로'지만 '함께'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도 그렇고 혼자 사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신념이 강한 비혼주의자는 없어요. 결혼을 일부러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람을 만날 때 실질적인 계산을 하게 되더라고요. 둘이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하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지나 따져보게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하면 선택하지 않았어요. 회사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제 인생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결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거죠.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 자본을 축적하는 게 제 인생의 선결 요건이에요." _44쪽


  나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계속 이렇게 생각해왔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굴레에 얽매이기보다는 먼저 나의 꿈을 이루고, 나 자신이 오래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따금 들려오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 그래서 꼭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지독히도 싫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 그리고 각자가 보유한 능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무엇이 괜찮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싱글리즘'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 벨라 드파울루는 결혼한 부부에게 우위를 두고 혼자 사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싱글리즘이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 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싱글들도 피해 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_271쪽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자부하지만 평소에는 쉽게 인식하고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수없이 경험했지만 그것이 이미 일상 속에 침투하여 자각하지 못하는 사실이 존재한다. 내게 '싱글리즘'이 그런 존재였다. 수많은 상황에서 사회는 우리에게 '가족'을 요구한다. 사회는 아직도, 법적으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사회적 표준이고, 이 표준을 따라야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 관념에 얽매여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상의 '솔로'들은 행복하지 않고, 괜찮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병원에서 싱글에게 보호자로서 법적 가족의 동행을 요구한다면? 건강보험이 커플보다 싱글에게 더 비싸다면? 결혼한 사람만 배우자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터에서 휴가를 쓸 수 있고, 싱글은 가까운 친구나 형제자매를 돌보기 위한 휴가를 쓸 수 없다면? _271~272쪽

  제도 속에는 싱글리즘에 기반한 차별이 여전히 만연하다. 그러니 사회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비혼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모이고 움직이며 사회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솔로든 커플이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하든 '괜찮다'고 여길 수 있도록. 모두가 이 세계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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୨୧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୨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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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의 구멍 초월 3
현호정 지음 / 허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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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사람들의 관계를 눈부신 직물 위에 펼쳐내는 작가의 솜씨는 베틀 앞의 아라크네를 떠올리게 한다.❞ _구병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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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듦새


  『고고의 구멍』은 초월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판형은 첫 번째 책인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두 번째 책인 『빛과 영원의 시계방』과 동일한 규격으로 초월 시리즈를 한 책장에 모아 꽂아두었을 때 정말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책 단행본 기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라고 생각해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고, 세로가 살짝 긴 편이라 문고본의 분위기도 풍긴다는 것이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표지 일러스트도 인상적이었는데, 일러스트에서 고고가 마주하고 있는 구멍이 고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이자 동시에 이 세계에 뚫려 있는, 우리가 똑바로 바라보아야 할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의 몸에 '구멍'이 생겼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며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하고 일종의 언캐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다. 익숙하고 일정 부분 고정적이었던 우리의 몸에 변형이 생기고 그것이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분명 공포로 이어질 수 있을 법한데, 신기하게도 고고는 구멍의 발생에 두려움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의아할 법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고고의 구멍이 우리의 신체에 생기는 물리적인 상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고고의 몸에 생긴 구멍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환상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인간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기제로서 존재한다. 소녀 고고의 구멍은 곧 행성 망울의 구멍이며, 그 구멍들은 결국 모두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깊은 심연이자 어둠, 그리고 동시에 빛이라 할 수 있겠다.


✦ 서정과 성장의 미학


  추천사를 쓰신 구병모 작가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신화'라 말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제시되는 망울의 창조 신화만으로도 이 소설은 아름다움의 몫을 다했다'고. 책을 다 읽고 다서는 이 이야기가, 한 개인의 신화임과 동시에, 한 행성의 신화이자, 더불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느꼈다.

  세계의 창조나 국가의 건설과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 및 생명의 발생 그리고 소멸을 설명하고 그것을 읽은 우리를 이해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만든다면 충분히 그 서사를 신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그것이 미지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기지의 세계로 편입되고, 이러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으로서의 새로운 우주를 구축할 수 있다. 

  『고고의 구멍』은 '고고'라는 소녀의 성장통을 다양한 상징으로 형상화하여 우리 모두가 겪어왔고 또 앞으로 겪게 될 삶의 질곡을 현현한다. 이야기는 서정적이고, 비유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며, 때로는 모호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히 어떤 인물의 성장의 과정을 미학적으로 그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고가 겪는 모든 일들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지며 언뜻 보았을 때는 환상 그 자체로서 기능하기도 하지만, 사건과 상황에 내재해 있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후회는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성장통을 불러온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과 묘사 속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그러나 완전하지 못함 그 자체로 가치있는 존재들의 서툶이 선연히 드러난다. 아직 (어쩌면 영원히) 어설프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망울의 신화는 완성된다. 단숨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방식으로, 천천히, 곱씹으면서, 그리고 곱씹히면서. 독자는 미지의 세계가 사실은 결코 미지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 서서히 구멍을 메우고 날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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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에게 있어 수액을 맞는다는 행위는 울음의 반대처럼 이해되었다. 말하자면,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거였다. 그들의 수액에 수면제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나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눈물과 졸음은 애초에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니까. _64쪽


❥ "새들이 날 수 있는 건 날개가 있어서만이 아니라 몸이 엄청나게 가볍기 때문이기도 해. 아주 많은 것들을 비워낸 후에야 가능하다고." _72쪽


❥ 고고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두 협곡인이 그런 관계가 아니면서도 서로에게 유일한, 어쩌면 영원한, 고고로서는 상상해본 적 없는 특별한 사이인 것이었다.  _88쪽


❥ '날개가 있는 이에게는 나는 게 행복이고, 날개가 없는 이에게는 날지 않는 게 행복일 거라고 고고는 말했었어. 하지만 그때 고고는 분명 행복했던 거야. 나 없이도. 어쩌면, 내가 없어서' _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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୨୧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୨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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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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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붓과 검이 맺은 기이한 인연…

마법의 문양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동인형과 기계 용이 꿈을 꾸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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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니 조예은 작가님의 추천사에 쓰인 구절이 더욱 와닿는 듯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낙원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신화가 되기를 바란다. 책장을 덮자마자 다음 장면이 간절해졌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를 더 보고 싶다.' 나 또한 그랬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라잔 제국에 지배당하고 있는 국가 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잔인들이 내어준 현대 복식은 양복의 도입을, 라잔 총독부에서 라잔식 개명을 권유하는 것은 창씨개명을 쉽게 떠올리도록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라잔 제국과 화국으로 상징화하면서, 동시에 자동인형과 마법의 문양, 구미호, 검투사, 달나라 등 섞이기 어려울 법한 여러 가지 픽션적 요소들을 치밀하게 결합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비의 언니 봉숭아와 형부 지아는 라잔식 개명을 반대하거나 직접 무장 독립 운동의 현장에 뛰어드는 등, 독립을 위해 열렬히 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해 제비는 적극적인 독립 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라잔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라잔의 것이라 해서 무조건 적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비가 독립에 대한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라잔의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순간에도 제비는 화국인으로서의 자유와 화국의 것을 그리워하고 여러 번 곱씹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라잔의 것을 택하게 되었으나, 결국은 조국의 독립 운동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제비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인물로서 상징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관통하는 가치는 사랑이며 애정이고 결국 마음이다. 예술에 대한 마음, 꿈에 대한 마음, 삶에 대한 마음, 기계 용이 가진 마음, 연인에 대한 마음… 그 마음들이 얽히고설켜있기에 제비는 라잔 제국의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지 않고, 화국 사람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독립투쟁의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수많은 마음들이 지워지고 가려졌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개인이 어떤 꿈과 열정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겨우 살아남아야 했으며 또 어째서 스러져가는 조국을 향해 발길 돌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읽고 난 뒤에도, 명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이야기는 명백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으나… 동시에 제비라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개인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속에 품은 이 마음과 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라지는 마음과 생겨나는 마음을 거쳐가며 성장하는 사람과 사람을. 국가가 없다면 개인 또한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크게 쓰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바래고 침잠해버린 각자의 욕망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재일 테다. 그리고 제비와 베이가 맞이한 결말은, 어쩌면 그럼으로써 '이 세계에 남은 희망'과 '(어느 곳에서든) 지속되는 갈망'에 대한 상징이자 해석일지도 모른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라는 제목 또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형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투쟁하고자 사랑하고, 사랑하고자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염원. 봉황색이란, 그런 내면을 구체화한 빛깔이 아닐까. 덧그려진 그들의 색채가 오랫동안 이어지길 끊임없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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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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