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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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김희경이 던지는 다음 화두!

1인 가구 시대, 4050 비혼 여성의 나이 듦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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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으로 사는 사람도, 결혼한 사람도 모두 읽어보아야 할 책, 『에이징 솔로』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 김희경 작가의 이 말을 듣자마자 지금껏 살아오며 품어왔던 '홀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홀로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함께 살면서도 어느 순간 홀로됨을 느끼고, 어느 순간, 혹은 언젠가 사람은 혼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동물 특성상 반드시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평소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만큼, 어딘가에 구성되어 있다고 느끼는 만큼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은 이따금 지독하게 외로워진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되기를 두려워하곤 한다. 나만 해도 아주 어릴 적에는 무엇이든 같이할 사람이 있길 바랐다. 지금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으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희경 작가가 말했듯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 솔로라고 해서, 혹은 혼자 거주한다 해서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내가 고립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에이징 솔로』에 등장하는 많은 솔로들이 친구와, 이웃과 어울려 산다. 그들은 솔로지만 함께할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사회적 통념 속에 구조화된 가족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은 홀로와 어울림이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솔로'지만 '함께'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도 그렇고 혼자 사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신념이 강한 비혼주의자는 없어요. 결혼을 일부러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람을 만날 때 실질적인 계산을 하게 되더라고요. 둘이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하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지나 따져보게 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하면 선택하지 않았어요. 회사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제 인생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결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거죠.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 자본을 축적하는 게 제 인생의 선결 요건이에요." _44쪽


  나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계속 이렇게 생각해왔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굴레에 얽매이기보다는 먼저 나의 꿈을 이루고, 나 자신이 오래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따금 들려오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 그래서 꼭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지독히도 싫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 그리고 각자가 보유한 능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무엇이 괜찮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싱글리즘'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루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비혼자에게 편견을 갖는 것"을 뜻한다. / 벨라 드파울루는 결혼한 부부에게 우위를 두고 혼자 사는 사람을 낮추어 보는 싱글리즘이 단지 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법률, 제도 등 모든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서 일상에서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싱글들도 피해 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_271쪽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자부하지만 평소에는 쉽게 인식하고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수없이 경험했지만 그것이 이미 일상 속에 침투하여 자각하지 못하는 사실이 존재한다. 내게 '싱글리즘'이 그런 존재였다. 수많은 상황에서 사회는 우리에게 '가족'을 요구한다. 사회는 아직도, 법적으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사회적 표준이고, 이 표준을 따라야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 관념에 얽매여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면, 세상의 '솔로'들은 행복하지 않고, 괜찮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병원에서 싱글에게 보호자로서 법적 가족의 동행을 요구한다면? 건강보험이 커플보다 싱글에게 더 비싸다면? 결혼한 사람만 배우자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터에서 휴가를 쓸 수 있고, 싱글은 가까운 친구나 형제자매를 돌보기 위한 휴가를 쓸 수 없다면? _271~272쪽

  제도 속에는 싱글리즘에 기반한 차별이 여전히 만연하다. 그러니 사회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비혼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모이고 움직이며 사회를 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솔로든 커플이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하든 '괜찮다'고 여길 수 있도록. 모두가 이 세계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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୨୧ 동아시아 서포터즈 7기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୨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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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의 구멍 초월 3
현호정 지음 / 허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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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와 사람들의 관계를 눈부신 직물 위에 펼쳐내는 작가의 솜씨는 베틀 앞의 아라크네를 떠올리게 한다.❞ _구병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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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듦새


  『고고의 구멍』은 초월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판형은 첫 번째 책인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두 번째 책인 『빛과 영원의 시계방』과 동일한 규격으로 초월 시리즈를 한 책장에 모아 꽂아두었을 때 정말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책 단행본 기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라고 생각해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고, 세로가 살짝 긴 편이라 문고본의 분위기도 풍긴다는 것이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표지 일러스트도 인상적이었는데, 일러스트에서 고고가 마주하고 있는 구멍이 고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이자 동시에 이 세계에 뚫려 있는, 우리가 똑바로 바라보아야 할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의 몸에 '구멍'이 생겼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며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하고 일종의 언캐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다. 익숙하고 일정 부분 고정적이었던 우리의 몸에 변형이 생기고 그것이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분명 공포로 이어질 수 있을 법한데, 신기하게도 고고는 구멍의 발생에 두려움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의아할 법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고고의 구멍이 우리의 신체에 생기는 물리적인 상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고고의 몸에 생긴 구멍은 하나의 상징으로서 환상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인간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기제로서 존재한다. 소녀 고고의 구멍은 곧 행성 망울의 구멍이며, 그 구멍들은 결국 모두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깊은 심연이자 어둠, 그리고 동시에 빛이라 할 수 있겠다.


✦ 서정과 성장의 미학


  추천사를 쓰신 구병모 작가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신화'라 말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제시되는 망울의 창조 신화만으로도 이 소설은 아름다움의 몫을 다했다'고. 책을 다 읽고 다서는 이 이야기가, 한 개인의 신화임과 동시에, 한 행성의 신화이자, 더불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느꼈다.

  세계의 창조나 국가의 건설과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 및 생명의 발생 그리고 소멸을 설명하고 그것을 읽은 우리를 이해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끔 만든다면 충분히 그 서사를 신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그것이 미지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기지의 세계로 편입되고, 이러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으로서의 새로운 우주를 구축할 수 있다. 

  『고고의 구멍』은 '고고'라는 소녀의 성장통을 다양한 상징으로 형상화하여 우리 모두가 겪어왔고 또 앞으로 겪게 될 삶의 질곡을 현현한다. 이야기는 서정적이고, 비유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며, 때로는 모호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히 어떤 인물의 성장의 과정을 미학적으로 그렸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고가 겪는 모든 일들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지며 언뜻 보았을 때는 환상 그 자체로서 기능하기도 하지만, 사건과 상황에 내재해 있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후회는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성장통을 불러온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과 묘사 속에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그러나 완전하지 못함 그 자체로 가치있는 존재들의 서툶이 선연히 드러난다. 아직 (어쩌면 영원히) 어설프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망울의 신화는 완성된다. 단숨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방식으로, 천천히, 곱씹으면서, 그리고 곱씹히면서. 독자는 미지의 세계가 사실은 결코 미지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 서서히 구멍을 메우고 날개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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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에게 있어 수액을 맞는다는 행위는 울음의 반대처럼 이해되었다. 말하자면,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거였다. 그들의 수액에 수면제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나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눈물과 졸음은 애초에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니까. _64쪽


❥ "새들이 날 수 있는 건 날개가 있어서만이 아니라 몸이 엄청나게 가볍기 때문이기도 해. 아주 많은 것들을 비워낸 후에야 가능하다고." _72쪽


❥ 고고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두 협곡인이 그런 관계가 아니면서도 서로에게 유일한, 어쩌면 영원한, 고고로서는 상상해본 적 없는 특별한 사이인 것이었다.  _88쪽


❥ '날개가 있는 이에게는 나는 게 행복이고, 날개가 없는 이에게는 날지 않는 게 행복일 거라고 고고는 말했었어. 하지만 그때 고고는 분명 행복했던 거야. 나 없이도. 어쩌면, 내가 없어서' _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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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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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검이 맺은 기이한 인연…

마법의 문양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동인형과 기계 용이 꿈을 꾸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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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니 조예은 작가님의 추천사에 쓰인 구절이 더욱 와닿는 듯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낙원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신화가 되기를 바란다. 책장을 덮자마자 다음 장면이 간절해졌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를 더 보고 싶다.' 나 또한 그랬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는 라잔 제국에 지배당하고 있는 국가 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라잔인들이 내어준 현대 복식은 양복의 도입을, 라잔 총독부에서 라잔식 개명을 권유하는 것은 창씨개명을 쉽게 떠올리도록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라잔 제국과 화국으로 상징화하면서, 동시에 자동인형과 마법의 문양, 구미호, 검투사, 달나라 등 섞이기 어려울 법한 여러 가지 픽션적 요소들을 치밀하게 결합시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비의 언니 봉숭아와 형부 지아는 라잔식 개명을 반대하거나 직접 무장 독립 운동의 현장에 뛰어드는 등, 독립을 위해 열렬히 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해 제비는 적극적인 독립 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라잔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라잔의 것이라 해서 무조건 적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비가 독립에 대한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라잔의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순간에도 제비는 화국인으로서의 자유와 화국의 것을 그리워하고 여러 번 곱씹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라잔의 것을 택하게 되었으나, 결국은 조국의 독립 운동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제비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을 인물로서 상징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관통하는 가치는 사랑이며 애정이고 결국 마음이다. 예술에 대한 마음, 꿈에 대한 마음, 삶에 대한 마음, 기계 용이 가진 마음, 연인에 대한 마음… 그 마음들이 얽히고설켜있기에 제비는 라잔 제국의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지 않고, 화국 사람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독립투쟁의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수많은 마음들이 지워지고 가려졌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개인이 어떤 꿈과 열정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겨우 살아남아야 했으며 또 어째서 스러져가는 조국을 향해 발길 돌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를 읽고 난 뒤에도, 명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이야기는 명백한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으나… 동시에 제비라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개인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속에 품은 이 마음과 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라지는 마음과 생겨나는 마음을 거쳐가며 성장하는 사람과 사람을. 국가가 없다면 개인 또한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크게 쓰이는 역사의 뒤안길로 바래고 침잠해버린 각자의 욕망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되는 존재일 테다. 그리고 제비와 베이가 맞이한 결말은, 어쩌면 그럼으로써 '이 세계에 남은 희망'과 '(어느 곳에서든) 지속되는 갈망'에 대한 상징이자 해석일지도 모른다.

 『흐드러지는 봉황의 색채』 라는 제목 또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형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투쟁하고자 사랑하고, 사랑하고자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염원. 봉황색이란, 그런 내면을 구체화한 빛깔이 아닐까. 덧그려진 그들의 색채가 오랫동안 이어지길 끊임없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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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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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소설집, 허블, 『빛과 영원의 시계방』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

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


#공간서점 #오리진 #달을멈추다 #꿈의귀환 #악몽 #가깝게우리는 #어디서무엇이되어다시만나랴 #끝없는우편배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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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듦새


『빛과 영원의 시계방』은 초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이었던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과 동일 판형으로, 세로가 조금 긴 형태의 견장정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겉표지 디자인과 책 제목, 그리고 뒤표지에 실린 책소개 문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극단의 폭발력으로 마법의 영역에 도달한 과학/죽음과 시공간을 초월한 현대의 마법서'라는 문구에 걸맞게 책은 한 권의 마법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다. 책 표지에 수놓인 문양들은 단편에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을 형태화시킨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앞표지의 문양들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는 점과 뒤표지의 바코드가 태엽인형을 본땄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지 편집도 깔끔하고 좋았다. 그런데 소설에서 본문 외 내용(편지글 등 텍스트 묘사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내용 묘사 등)이 다른 글꼴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본문 글꼴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고, 한자 지원이 되지 않아 한자 병기 부분이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뒤표지 중하단부에 쓰인 나눔스퀘어 네오 정도 사용해 주었다면 좀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렇게 되면 통일감도 있지 않았을까. (나눔글꼴 라인업 자체가 한자병기 시 한글과 한자 간 이질감이 적은 편이라 더욱.)


✦ 상실함으로써 되찾는 삶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종류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내면의 감정이나 감각, 기억부터 외부의 타인과 맺은 관계까지 다양한 '잃어버림'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실의 공통점은 상실의 감정을 전면에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간 서점>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시간대를 잃어버림으로써 평행세계 - 혹은 아버지가 개발해낸 시공간 이동이 가능한 기압 운송선을 통해 형성된 '다른' 시공간 - 로 이행하여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과거의 시간대에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공간 서점>은 그에 더하여, 과연 우리가 상실해온 것이 언제나 '과거'라는 시간대에 남아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끔 한다. 아버지가 기압 운송선으로 시간을 되돌려 알고 있던 미래를 바꾼 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서점> 속 세계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 '미래' 세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모습으로 뒤틀린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헌책방 주인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결국 나는 그 모든 버전이 각각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동시에 그 길을 모두 걸을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43쪽)"라고 말하게 된다. 이는 현재의 과학으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미래에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반추하며 현재의 인간 또한 단순히 하나의 서사를 걷는 단순 내러티브적 동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미래를 보여줌과 동시에 현재 또한 함께 비추면서 시간선의 명료성을 흐리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어떠한 시간대가, 어떤 어휘로 통칭할 수 없게끔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기지에 대한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영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신】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을 정할 때는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빛과 영원의 시계방』의 경우 개별적인 책 제목이 따로 붙어 있어 좋았다. 약간 이 소설책 자체가 책이면서 하나의 '시계방'이 된 느낌이랄까. 책은 이따금 책으로서의 물성을 가짐과 동시에 또다른 속성을 함께 내재하며 존재한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것은 책이 책 이외의 다른 무언가로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책은 상실한 시간대와 그럼으로써 다시 형성되고 이해되는 새로운 시간대를 모두 셈할 수 있는 시계방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진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가)


<악몽>에는 인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가깝게 우리는>에는 인간을 쏙 빼닮은 자동인형이 나온다. 비틀리는 자아와 복제임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복사되는 인간까지, 『빛과 영원의 시계방』에는 인간의 개별성과 단일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과연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현존하는 기억을 여러 번 재구성하여 행복한 기억만 남도록 하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과연 기억 시술에 동의할까? 내면을 평생 괴롭힐 고통과 번민의 기억이 사라지고 영영 평화롭고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습관처럼 찾아오는 편두통과 이따금 물밀듯 닥쳐오는 과거의 우울, 미래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매일의 슬픔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언젠가 이것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구상엔 불행한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어둡고 비통한 과거 대신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테니까요.(189쪽)" 이 말이 정말 진실이 된다면. 하지만 인간의 손을 타고 만들어진 행복이 과연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과연 '행복'이라는 개념이 유의미할까? 나는 적어도, 우리가 불행을 이해하기 때문에 행복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직접 일궈냈던 과거의 진짜 행복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리라 믿는다. 그건 사실 본능이 아닐까?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놓지 못할 삶의 지속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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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라앉지 마 - 삶의 기억과 사라짐, 버팀에 대하여
나이젤 베인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싱긋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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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이 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겨우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지막 표현일지 모른다. _ 문태준(시인) 】

 

『엄마, 가라앉지 마』 나이젤 베인스 글/그림, 황유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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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살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종착지로 하는 긴 여행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타자의 삶과 죽음 또한 무수히 접하곤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 또한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체험일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 『엄마, 가라앉지 마』는 저자가 저자의 어머니 치매 발병으로부터 죽음까지 2년 동안의 회고를 담은 논픽션 그래픽내러티브다. 원제는 『Afloat』으로, 떠 있음의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원제는 부유하는 상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 반면 번역된 한국판 제목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저자의 절박함과 상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맥을 같이하면서 서로 다른 느낌을 주어 원제와 한국판 제목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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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내러티브 형식을 갖추고 있는 만큼 각 페이지마다의 연출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어떤 부분은 살 떨릴 만큼 아릿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족여행을 회고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오르막을 오르고 있음에도 부유하는 느낌과 푹푹 빠지는 느낌, 가라앉는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가족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지만 결국 어머니의 치매를 계기로 과거의 행복한 기억을 돌이켜보는 것이므로, 연출을 통해 그러한 회고가 그저 편안하지 않았음을 표현해낸 것 같았다. 그러나 그저 아픈 기억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으나 그 내면에는 삶이 존재했다. 상실 속에서 저자는 살아감을 찾는다. 그것이 연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필요에 따라 문단을 특수하게 구성한 것 또한 마음에 남았다. 글자의 배치를 통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이 하나씩 저자를 덮쳐오는 상황을 형상화했다. 결국 '그것들의 발아래에 깔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끝맺음에서 묵직한 고통을 느꼈다. 가장 좋았던 연출은 마지막에 저자가 자아와 삶에 대한 고찰을 네 가지 형태의 바다를 통해 표현해낸 부분이었다. 「하나의 유일무이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아가 분열적이고 유동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171쪽)」 절망과 상실의 질곡 속에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이 말을 남겨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바다의 물살이 잠잠할 때도 있고 때론 파도가 몰아칠 때도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순간순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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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도 마찬가지다. 말들 사이의 틈새. 순간들 사이의 공백. 없어져버린 듯한 것들. 바로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127쪽)

 

* 나는 엄마네 집 화장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어떤 거울이라도 본 게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온전한 하나의 '나'를 상상하지, 변덕스럽고 분열된 자아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엄마가 낯선 그 사람을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129쪽)

 

* 나는 그동안 늘 엄마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었고, 그 생각을 하고 있자면 소름끼치게 몸이 떨려오곤 했었다. (162쪽)

 

*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일은 없고, 그건 심지어 나쁜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자유이며 나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그 어떤 잘못된 생각들에도 얽매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현듯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조차… 괜찮게 느껴졌다. (169쪽)

 

* 엄마는 여전히 엄마로 대접받을 자격이, 존엄성을 지닌 한 생명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은 훌륭한 분들이며 더 나은 훈련과 보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가 노화와 질병을 다루는 방식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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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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