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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에피쿠로스 쾌락
'쾌락'은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사용에 있어 조금 조심스럽다고 해야 할까. 비슷한 단어로 '기쁨', '행복'이 떠오르는데, 이 두 단어는 '쾌락'과는 다르게 거리낌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쾌락'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일반적인 행복한 감정을 넘어서, 오로지 행복 하나만을 쫓아 극단을 향해 치닫는 방탕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라는 학파는 일단 그 이름에 이러한 '쾌락'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는 것 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과연, 쾌락 그리고 쾌락주의의 핵심인 '아타락시아', '아포니아'는 어떤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쾌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편적이고 감각적인 흥분상태와는 다르다. 쾌락은 가장 으뜸가는 선이자 살아있는 것의 목적으로서, 쾌락은 곧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오직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모든 선택과 회피를 위한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음에 가장 큰 소동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114p)'이야말로 쾌락의 삶이라는 것이다.
'자족'에 대한 강조 또한 인상적이었다. '자족은 큰 선으로,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적은 것으로 큰 만족을 얻기 위함이다(113p)' 라는 구절에 에피쿠로스 학파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자족하는 인간은 빵 하나, 물 한잔 만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큰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는 마치 정 반대의 양 끝에 있어 대치하는 것 처럼 느껴지지만, 이 두 가지 학파가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자족을 통해 만족을 이루면서 인생의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아타락시아(마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 와 '아포니아(몸 고통의 부재)'라는 소박한 쾌락이 에피쿠로스 학파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인 것이다.
그 옛날 기원전 341년에 태어난 철학자의 글이 200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려준다. 상상도 못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동안 유행했던 단어 '소확행'과 일맥상통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세상살이 참 별 것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
200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이지만, 처음 접해보는 제대로된 철학책이라 그런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자세한 주석과 정성어린 해제가 이해를 도와 그나마 이 정도로나마 읽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좋은 교양서적을 만났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