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이상한 사람들
미겔 탕코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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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혼자 생선구이 집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여자 세 명이 들어와 내 뒤로 쪼르르 앉았다. "우리 때는 말이야." 여자가 힘주어 말문을 떼었다. 옆에 앉은 사람의 말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내 청력은 어쩐지 그 여자의 그다음 말 한마디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개처럼 여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물고 늘어지고 싶었다. 살면서 많이 봐 왔다. '우리 때'라는 표현을 즐겨 쓰며 연대하는 사람들. 나는 매번 그때의 정서와 지식을 번번이 공유하지 못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물만 연거푸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 동료들과 업무 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야말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나의 생각, 소소한 경험들은 어쩐지 말하기가 꺼려진다. 웃음을 살까, 어린애로 보일까봐 자꾸만 입을 닫고, 나를 더욱 감춘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일까. 그들은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타인의 삶을 이리저리 재단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왜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인지..

​내 삶의 결정들은 한결같이 내가 경제적 인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내게도 분명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는 명확히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그 욕구가 늘 선택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선택들은 늘 의외의 선택이었고, 덕분에 내 삶은 색깔이 분명해졌다. 번들거리고  때깔 좋은 삶은 아니지만, 결핍이 조금 많은, 그러나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다. 그 어느 선택도 불확실하고 결함이 있다. 누군가는 예측할 수 있고 안전한 길을 택하겠지만, 누군가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다. 나는 아마도 이쪽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를 종종 이상하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마도 지금부터 소개할 책은 나의 삶에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제목이 <쫌 이상한 사람들>이다. 분명 나의 삶은 이상한 게 아닌데, 아무튼 나와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이상한가보다. 제목이 조금 거슬리지만 잠시 접어두고. 그림은 봄바람만큼이나 가볍다. 노랑 계열과 파랑 계열의 가는 펜으로 그린 그림들은 앞으로 소개할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잘 드러낸다.


세상에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씁니다.


 

 

 

  

 

한 남자가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발끝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엄마 손 잡고 따라가는 아이는 남자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고 웃고 있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이렇게 행동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아이는 그가 왜 그런 동작으로 걸어가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책에는 작은 생명체도 소중히 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을 바로 알아차리는 감수성을 지닌 어른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저 즐겁기 위해 곡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싶을 땐 아무 때고 춤을 춘다, 게다가 아이 앞에서는 곧장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길 줄도 안다.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이제껏 사랑을 아끼는 법만 배워온 우리로서는 이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이 다정한 사람들은 항상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계 부속품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물질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 선택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마음속에 다양한 가치가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유롭고 도전을 즐긴다. 저기 그림 속 향극한 찻집으로 들어가는 아빠와 아이처럼. 원래 '이상하다'라는 말은 꽤 폭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마치 훈장처럼 그들을 돋보이게 한다. 만약 향긋한 찻집으로 들어가는 아이와 아빠를 노란색으로 그리고, 나머지 그림은 파란색으로 칠했다면.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봄바람처럼 경쾌하고 산뜻한 느낌은 아닐 것이다.  정반대의 느낌. 그래, 그것이 우리가 현재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다. 씁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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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빨개지는 아이 2020-10-2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