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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의 제목 '체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달콤한 과일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미국에서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저자인 니코 워커는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뒤 은행강도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니코 워커의 자전적 소설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바로 할라우드 영화로 제작되었다. 무려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저스를 만든 루소 형제가 메가폰을 잡고,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가 주연인 영화로 말이다!
영화는 현재 다 완성되었고, 2020년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니코 워커가 현재 교도소에 복역중인데, 2020년 11월에 석방된다고 하니 그 시기에 맞춰서 영화가 개봉되는 듯 싶다.
분명 지은이 소개에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적혀있는데, 책의 첫 장에는 "이 책의 사건들은 일어난 적이 없다."라고 못박듯이 적혀 있다. 아마도 나중에 혹여라도 생길 법정 싸움을 미리 대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도 주인공에 대한 각색도 많이 된 것 같아 그 점을 유의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왜 그렇게 느꼈냐면 책의 주인공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비해 너무나 매력적이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20살에 만나던 여자와 결혼한 뒤 이라크 파병에 가게 되는데, 여러가지 유혹이 있었지만 절대 지조를 버리지 않았고, 포르노에 관심도 없었으며, 다른 병사들처럼 잔인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마약을 하고 은행을 턴 범죄자이기 때문에 다른 면마저 너무 나쁘게 그리면 사람들이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정한 것 같다.
실제로 니코 워커가 정말로 지조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타락을 일삼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책은 꽤 재밌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양인데도 금방 후루룩 읽힐 만큼 스토리도 흥미롭고 필력도 좋은 것 같다. 책 중간에 약에 대한 내용이나, 전쟁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 슬렁슬렁 넘기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운이 길게 남는 것을 보니 나름 감명 깊게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미국이 일으키는 ―아무 의미없는― 전쟁과 그 속에서 희생되는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나 다큐로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그 속에서 겪은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군인을 모집하기 위해 미국 영주권을 따려는 외국인들을 회유하고, 군인을 선별 할 때 마약을 일삼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제대로 걸러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서 뽑은 군인들을 제대로 된 커리큘럼으로 교육시키지도 않은 채 타국으로 내몰아 의미도 없는 살상을 반복하며 평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게 만든다. 미국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의미 없는 전쟁을 계속 하는걸까? 이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마약을 하던 군인이 은행털이범이 되었다'라는 독특한 설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 군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제대로 비판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는 더욱 혐오하게 되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까지도 정신적으로 괴롭게 만드는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는 이러한 의미 없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