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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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단조로운 일상을 이어갈때면 가끔은 맥이 탁 풀리며 "나는 왜 이렇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뭘 위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는걸까? 내가 이런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때면 그냥 모든걸 다 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고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해야하기에, "자자, 이만하면 됐어."하고 마음을 추스른 다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삶을 유지하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는 만큼 열심히 독서를 하면 아무도 모르게 다른세계로 빨려들어가 마음껏 일탈을 하는 기분이 들어 그나마 버틸 수 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 나온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한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가고, 가출한 남동생의 전애인을 찾아가기도 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글을 옛친구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며 마음속에 간직해둔 옛 기억을 조심스래 끄집어낸다. 그 다음 그들은 후회를 하거나, 체념을 하기도 하고, 그리워한다. 일탈을 하는 것은 똑같지만 그 뒤에 남는 감정은 전부 다르다.

나는 각각 다른 인물들의 일탈, 옛 기억, 그 뒤의 감정에 대해 읽고 곱씹으면서 마치 내가 멀리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사람들의 다양한 기억과 감정을 같이 향유하며 내 안의 복작스럽고 혼란스러웠던 감정들을 꾹꾹 눌러담았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박선우 작가의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성별이 명확치 않다. 남자가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여자를 서로 좋아하거나 그리워 하는 것이 똑같이 그려진다. 어느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극 중 인물의 성별을 정하는 것이 가장 고심되었다고 말한다. 남성인물에 대해서는 분노와 체념을 담고, 여성인물에 대해서는 회복과 희망을 담았다고 했는데 이는 작가가 지닌 남성성에 대한 부정, 여성성에 대한 긍정을 표현한것이라고 했다. 동성애자인 작가의 자신의 이러한 이념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낸 것 같아 좋았다.

그래서 그런걸까, 작가의 필체는 뭔가 중성적인 느낌이 있다. 굉장히 세심하고 예민하면서, 또 깔끔하고 단호하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각종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으며 평범한 일상을 참 예쁘게 표현해낸다. 그러한 점이 일본의 여류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떠올리게도 했다.

단편을 엮어서 낸 소설집이라 그런지 쉽고 금방 읽혔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있던 나에게 숨어있던 문학적인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뒤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박선우 작가님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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