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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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다니...' 그 작품은 출간과 함께 우리나라 출판계 뿐 아니라 모든 문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 이후로 한국 여성의 삶을 다룬 옴니버스 소설이나 에세이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이 작품도 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사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실려있다.

7년동안 뒷바라지 해 변호사가 된 남친에게 버림받고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교사,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부잣집 애기씨, 성희롱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5년 사귄 남친에게 그딴걸로 퇴직하냐며 이별을 당한 여자 등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덟명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 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집안의 살림을 위해 곧장 취업에 뛰어든 수연이. 딸을 자랑스래 여기는 부모님에, 착하고 다정한 남자친구도 있다. 결혼을 위해 악착같이 아끼고 아껴서 드디어 2,000만원을 모은 날... 그녀의 생일이기도 한 그날... 그녀는 노래방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20번 이상 칼에 찔린 뒤 사망한다. 그녀는 도대체 뭘 잘못한걸까? 뭘 잘못해서 그날 처음 본 남자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당해야만 했을까...?

그 챕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무작위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각종 다양한 여성혐오범죄들이 떠올랐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는 왜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걸까?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이렇게 사회적인 메세지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도 있는 반면, 도대체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는 작품도 있었다. "누구세요"라는 소설은 오래 사귄 남친에게 이별통보 및 사기를 당한 뒤,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옆집을 터는 지윤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힘든 상황인건 이해하지만 별안간 갑자기 옆집을 털고 그 옆집에 곤히 자고 있던 남자까지 건드려(?)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장님 죄송해요" 편은 심지어 몸이 너무 외로운 여자가 바바리맨에게 한번 하자고 덤비기까지 한다. 읽으면서 마치 불쾌한 골짜기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어쨋든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내용이 쉽게 읽히고, 같은 한국의 여성으로써 묘한 동질감도 느끼며 즐겁게 읽은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이나 <현남오빠에게>를 재밌게 본 여성독자라면 이 작품도 흥미롭게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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