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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따뜻한 감성의 목소리만이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첫장에서부터 지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이 책을 보자마자 과연 내가 이 책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나는 정말 위안을 받고자 이 책을 보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까?
통찰력을 가지고 인간불안의 역사를 가져오며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원천적인 원인을 파고든다. "아는 것 많다." "딱딱하다."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그닥 와닿지 않는 옛 역사를 읽으며 상식을 포함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교과선가?" 이런 나의 흥미를 잡아 끈 부분은 바로 '해법'부분이다.
알랭드 보통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다섯가지 분야로 불안한 우리네 마음을 달래줄 해법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된 분야는 '철학' 이다. '절대긍정','낙관주의자가 성공한다.' 라는 말은 현대 사람들에게 굉장히 보편적이고 쉽사리 아니라고 반박 할 수 없는 상식이다.게다가 나 조차도 '긍정' 이라는게 무조건 좋은 걸로만 안다. 쉽게 말해 쇼펜하우어 같은 염세주의자는 철저하게 현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예를 들어 20대에게 큰 인기를 끈 자기계발서에서도 '과거에 음침한 쇼펜하우어를 좋아한 그녀, 현재는 경제,자기계발을 공부했던 현실주의자 친구보다 상황이 암담함' 라는 은근한 뉘앙스로 까인적이 있다. 또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비관주의자 보다 낙관주의자에게 더 환호를 보낸고, 찬사를 보낸다. 여러모로 말이다. 실제로 쇼펜하우어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있다면 음침한 아이로 학교,사회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지적인' 염세주의자, '철학(지혜롭고 사랑스러운)적'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깊이있게 끌어옴으로써 우리의 불안한 마음에 위안을 준다.
164p.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165p.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다른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한마디 할때 우리는 얼마나 당황스러워하고, 괴로워 했던가.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든것. 그것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정신적인것' 일 것이다. 실제로 직장생활에서나, 학교생활에서나 우리가 정말로 힘들었던 것은 '다른사람들과의 관계', '그들과의 소통' 일 것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지적인' 염세주의 라고 말한다. 철학에서의 염세주의는 '기독교적 해법' 과 또 관련지어 진다.
한국말로 번역된게 '기독교' 지만 실제로 영문판에선 '종교적 해법'이라고 한다. 이 파트에서 저자는 '죽음','폐허'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단어에서 우리는 염세적이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큰 위안을 얻는다.
306p.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15p. 폐허는 세속적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보답을 얻으려고 마음의 평화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한다. 낡은 돌들을 보다 보면 성취에 대한, 또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누그러 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이며, 시간이 지나면 뉴질랜드인이 우리의 대로와 사무실의 폐허를 스케치하고 있을 것이다. 영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320p.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이 밖에도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하는 불안에 대한 해법은 좀 더 다양하다. 하지만 해법 서로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산만하지 않게, 차근차근히 읽힌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 알랭드 보통은 우리에게 행복하다고 느끼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익한 것은 아니고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닐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말하자면 '입에 쓴것이 몸에 좋다' 와 통할 것이다. 저자의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풀어놓으려는 지식의 양이 많고, 문체또한 현학적이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책을 이해하고, 내 자신도 이해해보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저자는 과연 책을 읽기전보다 굉장히 넓어 졌다고 느끼는 시야를 줌으로써 애쓴 노력에 따른 보답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