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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평점 :
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줄 몰랐다.
한 시사주간지의 서평 코너에서 내 취향으로는 고르지 않을 법한 책을 기꺼이 사도록 설득당한 후 기억하게 된 '금정연'의 서평집이긴 하다만(난 그 책을 아직 읽진 않았다 음..금정연의 능력이란), 첨부터 끝까지 나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이 낯선 글쓰기에 독자로서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몇번을 어리둥절했기 때문이다.(평범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금정연을 모르고 덤벼든 내 무지함 때문일지도..)
내가 제대로 읽고있는지, 저자와 제대로 교감하고 있는지 갸웃거리면서도 끝끝내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이 묘한 서평집은 저자가 사랑한 작가들에게 그랬던 것 못지않게 '금정연'이란 이름만으로 이 책을 선택한 독자에게도 꽤나 난폭하다. 내가 이상한 취향인건가...막 함부로 다뤄지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배려받고 달래지는 듯한 이 '난폭함'이 그닥 싫지가 않다. 가끔은 이 괴팍한 책의 독자여서 선택받은 '누군가'가 된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언급되는 책들을 한권도 읽지않아서기도 하겠지만(정성일은 책 뒤의 추천사에서 이 책이 언급된 책들을 다 읽은 이에게만 유의미한 암호로 열거돼있다고 했는데 그 글이 책 말미에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무모했지만 해볼만한 시도였단 생각이 든다) 글이 너무 샛길로 자주 새고 각 편마다 널을 뛰듯 리듬이 너무 다른 탓에 한 편을 읽고나면 잠시 '던져' 놓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희한하게도 며칠 후엔 다시 내 손안에 들려있었는데 이 현상 역시 정성일은 정확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서너달에 걸쳐(드니 디드로 편을 읽고 꽤 오래 던져놓았던 듯)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재기넘치는 금정연의 문장 덕이 크다. 정성일이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그의 글에선 제스쳐가 느껴지는데 그 시시껄렁함의 코드가 나에겐 꽤 맞았던 모양.
독서경험이 일천해 그가 내뱉는 말 중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꽤 있겠으나 금정연이 그만의 시시껄렁한 태도로 읊어준 '책'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한 애정만큼은 내 마음에도 정확히 와닿은 것 같다. 책을 '대충' 한번 다 읽은 후 처음으로 돌아가 서문과 목차를 훑어보니 금정연의 이 책은 확실히 '책'과 사랑에 빠져있다. '나는 이 책을 내식대로 사랑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은 알아서 하시오..' 동의나 인정은 필요치않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편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카프카 편에 가면 확실히 그의 삶에서 독서와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듯도 보인다. 읽지 않고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자기 실존을, 가치의 세계에 소송을 거는 것이고,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 善에 유죄를 선고하는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잘 쓰려고 애쓰는 것이고, 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글쓰기의 불가능성을 떠맡는 일이고, 그것은, 하늘처럼, 말없이 있는 것, "벙어리만을 위한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 - 모리스 블랑쇼- p.337
어쩌면 이 책을 통해 금정연과 완벽하게 교감하는 데 난 실패한 건지도 모르겠다. 밑에 다른 분이 '이해가 안가서' 킬킬거린다고 쓰셨던데 나 또한 딱 그런 마음이다.ㅎ 그래도 금정연이 다른 서평집을 낸다면 난 그의 낯설고 이상한 말걸기에 다시 한번 더 응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가끔은 이해하지 못한 채 빠져들고 싶기도 한 것이 있는 법이니까.
저자와 독자 사이의 묘하고 낯선 관계를 경험하게 해준 금정연. 성실한 독서가이자 특별한 서평가인 그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 지금쯤 금정연은 정성일의 이 매력적인 추천사를 몇번이나 더 읽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