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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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웨일스 탄광촌의 에설과 빌리 남매, 노동당 의원이 되다!

요즘말로 하자면 `토론신동`쯤 되려나, 어렸을때부터 말로는 누구에게도 지지않을만큼 토론에 능하고 사리분별에 밝았던 시골 노동자 가정의 두 남매가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은 평생동안 마을의 노동자를 대변해 귀족과 자본가들에 맞서 싸워온 노동당원인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리라. 가장으로선 더없이 완고하고 보수적이었던 남매의 아버지는 아비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딸을 집에 들일 수 없다며 에설을 매몰차게 내쫓았고 그런 아버지에게 울분에 차 대들던 소년 빌리는 전쟁을 겪은 후 고향마을을 대표해 노동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빌리의 아버지가 연설대 위에 선 아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편인 공화당 후보(광산회사의 주인이다) 지지연설을 하는 피츠허버트 백작(무의미한 전쟁을 일으킨 고집스럽고 무능한,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저무는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이리라.)을 향해`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외치는 장면과 노동당 의원이 된 에설이 한때 자신이 모셨던(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피츠와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하녀와 주인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치는 장면은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자신을 광부로 고용했던 자본가를 누르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빌리의 연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신사분들, 두분은 이제 끝장입니다. 노동자 동지 여러분, 우리가 미래입니다`

2. 밀려오는 거대한 힘에 굴복해버린 거인들과 전쟁을 막기 위한 작은 인간들의 몸부림.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같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랑스 소설 <오르부아르>가 전쟁의 무의미함과 부조리함을 전쟁을 겪고난 개인들의 시선으로 주로 보여주었다면 이 소설은 전쟁을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의 치열한 신경전과 국가의 자존심 앞에서 자신들의 힘으로는 무엇도 바꿀수 없는 개인들의 고뇌와 무력함을 교차로 엮어 보여준다. 4년 간의 전쟁을 낱낱이 해부한 장면들은 때론 근거리에서 때론 원거리에서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3. 세기의 변화와 함께 시작된 유럽 제국들의 붕괴과정과 정치적 격변과정을 담은 역사 드라마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 러시아 혁명, 영국 노동당의 성장과 최초의 노동당 정부 등장, 미국의 참전과 전후 평화협정과정에서의 진통,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국가간 연합기구의 모색(이때 만들어진 국제연맹은 결국 두번째 전쟁을 막지 못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이 구성된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배태된 불안의 씨앗이 2차 세계대전을 예고하는 듯 불길하게 고개를 내민 히틀러의 깜짝 등장 등 역사적 사건들의 단면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다.

4.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살아숨쉬는 서사

영국의 빌리와 에설, 피츠와 모드
독일의 발터
미국의 거스
러시아의 그리고리와 레프

실존인물- 윈스턴 처칠, 로이드조지, 우드로 윌슨, 레닌, 트로츠키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고른 분량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 소설에서는 캐릭터만큼이나 다양한 연애담에 빠져들 수 있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각 계층을 숨가쁘게 넘나들며 당시의 시대상을 여러겹으로 그려내고 있어 역사적맥락을 배제하고 이야기 자체로만 봐도 너무도 흥미로운 드라마이다.
특히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에설의 서사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녀 안에는 옳은 것에 대한 강한 끌림과 자신이 원하는대로 인생을 일궈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계급과 운명에 자신을 속박시키지 않았던 삶은 모드 역시 마찬가지 였다.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낸 그녀의 용기와 의지에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5. 2권은 상대적으로 러시아 혁명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나 소설 전체의 핵심적인 스토리라인은 주로 영국인들의 시선에 따라 그려지고 있기 때문인걸까, 책뒷표지의 한 서평에도 쓰여있듯 찰스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와 견주어보는 동시에, 영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두도시 이야기>이후의 영국은 어떤 나라가 되었는가. 절차와 정의, 원칙과 법, 이성과 합리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숭배하는 나라.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노동당 정부를 세웠던 나라. 최근 기사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인종주의를 자극하는 극우정당이 가장 기를 펴지 못한다는 나라. 의회 민주주의의 모태이자 가장 충실한 수호자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그 나라의(정확히는 그나라 민중들의) 유난스러운 자존심이 이해될 만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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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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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구나무를 서서 내몸을 지배하는 혈관들을 내머리에 묶어두고 내장을 비워내고 하지를 마비시킨다. 몸의 동물성은 모조리 제거되고 마침내 또렷한, 그래서 날카로운 감각들만이 남아 모든 억압된것들을 불러낸다. 피냄새, 비냄새, 풀냄새, 나무냄새가 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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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가치 좌절의 가치 - 미국 대통령기념관에서 노무현을 찾다
김상철 지음 / 생각의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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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알지못하기에 충분히 애도할 수도 없는 나는, 그분에 대한 틈많은 기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늘 박한 평가와 오해 한가운데 계셨던 그분을 정성껏 기록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라니 설레고 감사하다. 고민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을 읽으며 그를 제대로 추억할 그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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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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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부딪히며 좌절할 때마다 찾게되는 육아서. 오래된뇌를 깨워라, 몰입하게하라, 전 신체를 사용하며 자연과 접하게하라, 그리고 무조건적 수용을하라. 결국 내가 바뀌지않으면 소용없는 팁들이고 훌륭한 조언일수록 후회도 반성도 깊어진다. 내가 잘하고있나 흔들릴때면 아이내면의 신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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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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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대부분을 경제적 문제로 인한 비관적인 소식들이 차지하고 있는 요즘, 작게는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크게는 경제문제에 관한 전 세계적인 흐름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소름끼칠만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어디있냐고들 한다. 혹자는 먹고 사는 문제 앞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무엇이 그리 주요하며,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냐고, 정치가 밥을 먹여주느냐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민주적인 정부와 제도, 그 모든 가치에 대한 사상이 부재한 경제적 논의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경제학이란 학문에 질감없는 숫자 대신 인간의 영혼과 언어를 불어넣어 인간과 함께 생동하는 학문으로 창조해낸 선구자들이 없었다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사상적 축복이다.  

 

 '무슨무슨 주의자'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사상에 예외없이 녹아들어있었던 '인간을 안장에 앉히고 싶어하는 욕망'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학의 태도이자 정신'이다. 그들은 인간이 환경 앞에서 무력하게 체념하지 않기를 바랐고, 자신들이 개발한 도구로 인간들의 삶을 바꾸어놓길 강렬히 열망했다. 그들이 천착했던 경제학이란 학문은 수학적인 논리에 기반을 두면서도 역사를 중시했고,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상상의 영역에서 미래를 그려냈다.  그 결과,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사회적 논쟁의 단골이슈가 된 '복지국가개념'의 역사 곳곳에 찍혀있는 비어트리스 웨브의 발자취와 교과서에 왜그리 자주, 많이 등장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케인스의 위대한 업적들과 이 책의 제목이 필연적으로 '사람을 위한 경제학'이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마지막으로 확인시켜 준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약속'이 특히 인상깊었다.

 

800여 페이지라는 분량에 압도된다면 서문과 에필로그만 먼저 읽어보시길. 본문을 다 읽지않곤 못 배길 것이다.   

앨프리드 마셜은 현대 경제학을 "오르가난(`도구`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경제학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찾게 해주는 "분석엔진", 곧 끝없는 개선과 조정과 쇄신을 요하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도구였다. 마셜에게 배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학을 "정신장치"라고 불렀다. 그에게 경제학은 현대를 분석하고 현대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과학학 학문 중 하나였다.

앨프리드 마셜은 업주들이 경쟁이라는 기발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시간이 가면서 생산성을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게 된 동시에, 그렇게 얻어진 이들을 역시 시간이 가면서 임금인상이나 가격 인하의 형태로 공유해야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정부 안전망, 곧 현대 복지국가라는 개념의 발명자가 있다면 그것은 비어트리스 웨브다. ..."요컨대 우리는 국가의 새로운 형태를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는 `살림국가`라고 말할 수 있으며 `경찰국가`와는 구별된다"
웨브는 극빈이 예방 가능함을 보여주었고, 아울러 교육, 위생, 식량, 의료 등 현물 지원이 사적부분 생산력과 임금을 증가시키는 정도는 과세가 이를 감소시키는 정도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빈곤층에게 교육과 식량과 보건을 제공하는 일은 경제성장의 장애물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어빙 피셔는 화폐가 실물경제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처음으로 깨달은 인물이자 정부가 통화운용을 개선함으로써 경제적 안정을 증진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이었다. 피셔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라는 일견 상반된 병폐에서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짚어냄으로써, 정부가 인플레이션에 의한 호황과 디플레이션에 의한 불황을 완화하고 나아가 차단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도구, 곧 통화공급 통제라는 도구를 찾아냈다.

한 나라가 국민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제공할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생산력이었다.(...) 문제는 어떠한 과정이 생산력을 두세 세대 만에 여러 배씩 높일 수 있느냐였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이 왜 어떤 나라에서는 빠르고 어떤 나라에서는 느린가였다. 틀에 박힌 답은 한 나라의 발전은 그 나라의 자원에 좌우된다는 것이었겠지만, 슘페터의 답은 반대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요제프 슘페터, 영국에서는 메이너드 케인스가 각자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했던 것은 정치적 치유가 경제적 회복에 달려있다는 것, 위험스러운 혁명 열기를 식히는 일도 경제적 회복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전쟁의 상처를 치료함으로써 전쟁을 과거사로 만들기를 원하는 로빈슨 세대가 보았을 때, 경제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향후의 전쟁을 예방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케인스의 논증은 진정 계시였다. 케인스는 사상의 중요성이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의 중요성에 못지않으며 어쩌면 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로빈슨은 그런 확신에 흥미를 느꼈다.

케인스가 강조한 것은 장군들과 총리들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현대세계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가라는 문제의 중요성이었다. 생계를 꾸려가는 능력이야말로 평화의 필요조건이고 어쩌면 평화의 충분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글로벌 경제, 특히 유럽 경제가 얼마나 분화되어 있는지, 각 부분들이 얼마나 상호 의존적인지, 심리적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 이로써 한부분의 고장이 얼마나 손쉽게 다른 부분들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케인스는 정부의 대책과 무대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느냐에 대해서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케인스는 호황과 불황을 도덕극의 일화들로 각색하는 통속적 내러티브를 일축하면서 불황이란 불가피한 형벌도 아니고 사치와 경망과 탐욕을 바로잡는 반가운 교정책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다. 그것은 우리가 섬세한 기계를 잘못 관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바꾸어 말해서, 불황은 기술적인 문제였다.

한 달 후 벌린은 "이 나라의 경제 토리당 진영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교수의 명백한 반 뉴딜 관점을 토대로 그에게 큰 희망을 걸었으나, 그는 그들에게 대단히 거북한 동맹자로 밝혀졌다. 자유무역을 향한 그의 열정은 뉴딜에 반대하는 것에 못지않게 관세와 독점에도 반대했으니까."라는 말로 흡족함을 표시했다.(중략) 하이에크에게 있어 독일이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것은 자유시장, 자유무역, 건전화폐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지하는 증거이자, 자기가 사랑하는 유럽 자유주의 문명이 끝내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찬 전조였다. (중략) 하이에크가 미국 보수파의 총아가 되었던 것은 잠시였다. 하이에크는 대부분의 공화당 정치가를 경멸했고, 모든 자동차를 경멸했고, 국민 의료보험이 없고 정부출연 연금이 없는 것을 포함해서 미국 생활의 거의 모든 것들을 경멸했다.

새뮤얼슨이 생각하는 정부는 필요악이 아니라 현대의 필연이었다. 새뮤얼슨은 "생활의 복잡한 경제적 조건들로 인해 사회적 조율과 계획이 필요해진다"라고 지적했고, "현대인은 더 이상 `최소의 통치가 퇴선의 통치`라고 생각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중략)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20세기 역사로부터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건강이 안정적인 고용 및 노동기회의 유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재체제가 광범위하게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2차대전이 발발한 것의 적잖은 원인은 세계가 이 기본적인 경제적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노래한 민요는 별로 없지만, 사회정의를 노래한 민요는 많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발전이란 사람들이 누리는 현실적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자유의 확대는 발전의 1)주된 목적이자 2) 주된 수단이다. - 아마르티아 센

인도에 대한 책에서 센은 "내가 발전의 척도로 보고 싶은 것은 단순한 경제성장(....) 또는 기술진보, 또는 사회 근대화가 아니라, 인간의 실질적 자유의 확장이다. (경제성장 등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했다.

센은 세 가지 질문을 던졌고, 각각의 질문에 답했다. 첫째, 사회가 행하는 선택이 개별 시민들의 선호를 반여할 수 있을까? 둘째, 개인의 권리와 경제적 복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셋째, 정의로운 사회의 척도는 무엇일까?

제러미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법칙을 살짝 비튼 롤스의 "차등의 원칙"은 정의로운 사회란 최하위 집단의 복지를 최대화시키는 사회라고 진술한다.

센에 따르면, 복리를 창출하는 것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라, 재화의 획득이 목표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소득의 의의는 소득이 창출하는 기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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