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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해도 괜찮아
강성찬 지음 / 일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나는 내가 선택한 책이 아닌 타인이 정해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책을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독서토론회에 참여하듯 신간을 읽고 리뷰하는 것을
몇 번 해보기로 한 것이다.
나의 신체 건강함은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맛있게 세끼 꼬박 챙겨먹는 것에서 나온다고
굳건히 믿고 있던 내가
엄청난 편식주의자란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그때만해도 그렇게 고기가 싫지 않았다.
다만 국물에 뜬 기름이 싫다고 여겼던 것이 북엇국에 뜬 참기름 조차 싫어졌고
족발 등은 보기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마다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면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그럼 식당에서 두 근 정도는 거뜬히 먹기도 한다.
고기 못 먹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양념 갈비를 말이다.
책도 그때의 영감에 따라 혹은 광고선전이나 누군가의 추천이 확 와 닿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역시 책은 편식하지 않고 읽는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돈을 주고 사서 책장에 곱게 꽂아둔 것을 보면 내 편식의 종류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내 책장에 꽂힐 수 있는 기준은 명확하다.
책의 전체든 일부든 여러 번 꺼내 들어 지하철 이동이나 잠자기 전에 짬짬이 읽게 만드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손도 안된 것 중 좋은 책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기도 하면서 작은 책장을 순환시킨다.
이렇게 장황하게 논한 것은 <방황해도 괜찮아>는 편식하는 내가
자의적으로는 절대 사서 책장에 꼽지도,
어지간해서는 서점에 서서라도 읽지 않을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라면 이제 나는 '방황'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청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작가에 의하면 '청춘'이라 함은 십대후반에서 이십 대를 어우르는 단어라고 하니 말이다.
청춘은 아니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 방황을 한다.
아마 내가 죽는 순간까지 방황하지 않을까?
다만20대의 나는 그 소용돌이 가운데서 어쩔 수 없어하며 휩쓸렸다면,
지금의 나는 중심을 잡고 책이든 스승이든 찾아 꽉 잡고
똑바로 서서 빠져 나오곤 한다는 것이 다르다.
그 시간이 길던 짧던 빠져 나올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믿는 것이다.
작가가 나보다 어리기 때문에 그가 정의한 '청춘'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혹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은 있다란 식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이후 나는 젊은 사람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 현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험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20대 초 중반의 아이돌을,
평창 유치에 한 축을 담당한 김연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늦게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만난 청춘들은 모두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잡힌 주름은 끔찍하지만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꽤나 있다.
나는 아직 손익계산을 마치지 못했지만,
그 시절에서 하나만 가져올 수 있다면
탱탱한 피부보다 계산할 줄 모르고 무모할 정도로 달려들던 열정만은 꼭 가져오고 싶다.
그 때는 실패하고도 그것이 실패인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우매했고 자신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내가 선택함으로 인해 놓치게 되는
다른 기회비용을 계산하느라 주저 앉아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깨닫기는 하는데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머리로만 깨닫고 가슴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요즘 이것을 묶어 게을러져서 그렇다고 변명하고 산다.
하지만 최근 너무 달리기만 했던 내게 이런 늘어짐은 꼭 필요한,
겪고 넘어가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바람이 있다면 이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한다.
독서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인용한 구절 때문에 언급한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이번에는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싯다르타>가 그러하다.
제목만 들어도 시간과 열정을 들여야 할 책이라는 포스가 풍긴다.
작가가 이 책에서 인용한 문구는 '진리는 가르쳐 질 수 없다'이다.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세계 여러 사람들의 삶에서 찾으려 여행을 떠났다.
하버드 출신의 현각 스님은 숭상 스님의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답을 못하면서 불가에 귀의했고,
깨달음을 얻으려던 <싯다르타>의 싯다르타는 스승을 떠나 홀로 길을 떠나면서 깨달음을 얻었듯
작가는 여행 끝에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았다.
그는 어떤 길도, 누구도 답을 줄 수 없기에 귀 기울여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야 한다고 했다.
'한평생 고민을 안고 살면 언젠가 답 속에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는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말처럼 한평생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책을 맺었다.

p.s. 책을 읽으며 두바이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한 여름에도 두바이 최대 쇼핑몰인 에미리트 몰의 스키 두바이에서는
길이 450m의 대형 실내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다 한다.
축구 경기장 3개 만한 실내에 인조구름을 만들고
작은 입자를 뿌려 직접 눈이 펑펑 내리게 한다는데
스노보드를 타고 싶은 것이 아니라(탈 줄도 모른다--;)
누군가의 꿈으로 인해 사막 위에 스키장이 만들어졌고
인공 섬이 생겼다는 결과물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뤄지지 않은 꿈을 흔히 몽상이라고 한다.
몽상을 현실로 이뤄낸 결과물을, 행동하는 꿈의 결과물을 보고
언젠가 내 꿈이 나의 행동에 의해 이뤄짐을 겹쳐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