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는 동화(同化)정책을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이화(異化)정책도 주의하기를 당부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정책이 이 이화(異化)정책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화두였다.
≪십자군 이야기≫는 1095년부터 1291년에 걸쳐 200년에 걸친
서방의 침략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중 십자군(1096년)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년~1099년)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년~1148년)
제3차 십자군 원정 (1189년~1192년)
제4차 십자군 원정 (1202년~1204년)
알비 십자군 (1208년)
제5차 십자군 원정 (1218년~1221년)
제6차 십자군 원정 (1228년~1229년)
제7차 십자군 원정 (1248년~1249년)
제8차 십자군 원정 (1270년)
어린이 십자군
본격적으로 1권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군중 십자군 (1096년)의 출정과 전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은자 피에르는 당시 잘나가던 지식인이었는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을 갔다가 꿈에 성인베드로의
성지탈환 전쟁을 명하는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은자 피에르가 십자군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항상 당나귀를 탔는데
저자는 그림에서 피에르의 당나귀 모델로 이라크를 침공한
전 미국대통령 부시 얼굴을 택했다.
낮에는 자신의 꿈을 근거로 전쟁을 호소하고 밤에는 아무데나
쓰러져 노숙하는 피에르였지만
어느덧 유럽 각지에서 명물이 되어 있었다.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그 측근들은
동쪽으로 침략하여 이익을 취할 계획이 있었는데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할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유럽 각지에
인지도가 있던 피에르를 선택하였다.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나눠먹을 것이 적었던 하층 기사계급과
더 잃을 것이 없는 군중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지탈환은 곧 부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1차 십자군 출정일을 앞두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피에르가
그를 따르던 군중들과 기사 레이날도와 함께 먼저 출정한 것이
1096년에 일어난 “군중 십자군”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도 몰랐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곳마다
불시에 일격을 받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지만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닌 상·농민출신들이라 제대로 된
헝가리 왕국의 기병대의 반격을 받고 군사의 태반을 잃었으며,
베오그라드의 중장보병대에 의해 또다시 대패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은 했다.
군중 십자군은 결국 셀주크 투르크군을 만나 전멸당했고,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하고 은자 피에르는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목숨만 구해 달아났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진 것은 전쟁을 치른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방향을 몰랐을 수가 있을까,,
또 은자 피에르는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 갔다가 계시를 받은 것이므로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에 쓰였던 ‘TO지도’를 들었다.
지도를 보니 이해도 갔다.

그 시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만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에 투르크 이후의 나라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중에 동쪽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아시아가 있다는
사실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중세에 아시아로 알고 있던
아나톨리아 지역을 ‘소(小)아시아 Asia Minor’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