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추천의 글에서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십자군 이야기

중세에 일어났던 당시 지배층의 정치적 야욕, 기사계급의 물질적 욕구,

순진한 민중들의 헛된 기대가 한데 모여 일어난,  

거대한 침략전쟁으로 규정했다.

'역사만담꾼 김태권'의 또 다른 매력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림체로 

 중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위트가 넘친다는 '김태권'식 유머에는  

세 권을 다 읽도록 적응되지 않았다--;

 

각 권마다 책의 구성은 도입부에 십자군 원정이 일어난 시대의 이해를 

위한 역사적 배경을 적고, 중심부에 십자군 이야기,  

마지막에 고전소개로 이루어져있다.

 

도입부는 1권은 로마에서 십자군까지로 로마제국의 흥망과  

이슬람세계의 출현을 소개하고,

2권은 7세기쯤 나타난 이슬람 이전의 중동의 패자,  

이란과 로마의 대결에 대해 소개하고,

3권은 이슬람 세계의 탄생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의 고전읽기는

1권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브라우닝의 『보통 사람들,

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바르도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군중십자군에 휩쓸려  

학살자가 되는 것을 설명한다.

히틀러의 명을 충실히 수행해 수백만 명을 저승행 열차에 태운  

학살의 주요인물, 아돌프 아이히만도 정신과 판정 결과  

지극히 정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다.

여러 실험을 통해 상황과 군중심리에 의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한 당신들도 학살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2권에서는 투키디데스의 『필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 힘이 곧 정의다가 맞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한다.

계속 벼르기만 했던 『국가』를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 하지만 결심하는 순간 조차도 망설이게 되는 무게는 여전하구나.

 3권은 저자가 방문한 프랑스 파리, 뱅센 숲 입구의 포르트 도레역에  

있는 이민역사 박물관을 소개하며 이민자에 가장 관대하기로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도 최근에는 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민과 국가정체성 부라는 부서를 만들어 이민자들에게  

프랑스 문화를 따라 프랑스에 융화(?)하도록  강요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고발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상황을 잊지 않게끔하는 작가의 캐리커쳐가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주장하면서 생겨난 것과 지금의 여러 국가들이 이민자들에게  

강요하는 동화(同化)정책을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이화(異化)정책도 주의하기를 당부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정책이 이 이화(異化)정책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화두였다.

 ≪십자군 이야기 1095년부터 1291년에 걸쳐 200년에 걸친  

서방의 침략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중 십자군(1096)

1차 십자군 원정 (1096~1099)

2차 십자군 원정 (1147~1148)

3차 십자군 원정 (1189~1192)

4차 십자군 원정 (1202~1204)

알비 십자군 (1208)

5차 십자군 원정 (1218~1221)

6차 십자군 원정 (1228~1229)

7차 십자군 원정 (1248~1249)

8차 십자군 원정 (1270)

어린이 십자군

 본격적으로 1권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군중 십자군 (1096)의 출정과 전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은자 피에르는 당시 잘나가던 지식인이었는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을 갔다가 꿈에 성인베드로의  

성지탈환 전쟁을 명하는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은자 피에르가 십자군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항상 당나귀를 탔는데

저자는 그림에서 피에르의 당나귀 모델로 이라크를 침공한 

 전 미국대통령 부시 얼굴을 택했다.

낮에는 자신의 꿈을 근거로 전쟁을 호소하고 밤에는 아무데나  

쓰러져 노숙하는 피에르였지만  

어느덧 유럽 각지에서 명물이 되어 있었다.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그 측근들은  

동쪽으로 침략하여 이익을 취할 계획이 있었는데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할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유럽 각지에  

인지도가 있던 피에르를 선택하였다.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나눠먹을 것이 적었던 하층 기사계급과  

더 잃을 것이 없는 군중들이 열광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지탈환은 곧 부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1차 십자군 출정일을 앞두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피에르가  

그를 따르던 군중들과 기사 레이날도와 함께 먼저 출정한 것이  

1096년에 일어난 군중 십자군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도 몰랐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곳마다  

불시에 일격을 받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지만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닌 상·농민출신들이라 제대로 된  

헝가리 왕국의 기병대의 반격을 받고 군사의 태반을 잃었으며,  

베오그라드의 중장보병대에 의해 또다시 대패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은 했다.

군중 십자군은 결국 셀주크 투르크군을 만나 전멸당했고,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하고 은자 피에르는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목숨만 구해 달아났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진 것은 전쟁을 치른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방향을 몰랐을 수가 있을까,,

또 은자 피에르는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 갔다가 계시를 받은 것이므로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작가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에 쓰였던 ‘TO지도를 들었다.

지도를 보니 이해도 갔다.

  



그 시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만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에 투르크 이후의 나라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중에 동쪽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아시아가 있다는  

사실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중세에 아시아로 알고 있던  

아나톨리아 지역을 ()아시아 Asia Minor’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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