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셔 크로싱 - 소녀들의 수상한 기숙학교
앤디 위어 지음, 사라 앤더슨 그림, 황석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평점 :
✔️네버랜드ㆍ원더랜드 ㆍ오즈를 넘나드는 혼돈의 멀티버스 판타지
자신의 기지를 이용해 목숨이 걸린 여러 모험에서 헤쳐나온 소녀들답게 영리하고 용감하지만 현실 세계는 이들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정신병자 취급한다.
한 세계에선 영웅 취급을 받고 다른 세계에선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면 그 괴리감 때문에라도 멀쩡하게 사는 게 어렵지 않을까.
이런 설정 덕이겠지만 작가는 주인공들의 말투를 생각보다 뽀족하게 써놓았다.
앨리스는 모든 사람에게 시종일관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그런 앨리스와 티격태격하는 웬디는 이제 당돌한 것을 넘어 무모한 성격이 되있고, 도로시는 이런저런 연구 시설에서 받은 충격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사라진 상태다.
우리가 동화처럼 읽던 이야기 속 주인공들, 하염없이 맑고 선하고 순진하던 주인공들은 이 작품 속에 없다.
이들은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욕을 하고, 짓궂은 장난을 친다.
여느 십대 소녀들처럼.
작가는 주인공들의 말두에 십대들의 수동 공격적인 성향을 입히고 그것에서 오는 소소한 웃음을 위트 있게 대사에 버무려 놓았다.
30대 남자가(아저씨가?) 시침 뚝 떼고 투닥대는 십대 소녀들의 대화를 이렇게 실감나게, 재밌게 써놓았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히어로들의 크로스오버는 이제 영화계에서 흔한 현상이라 그리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 슈퍼맨이 더 세네, 배트맨이 더 세네 하던 것들의 대부분은 이미 시각적으로 실현됐고 지금도 꾸준히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히어로들의 크로스오버라고 하면 소위 '슈퍼히어로'들의 크로스오버만을 뜻하는 게 되어버린 것만 같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이야기 속 히어로들의 크로스오버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래서라도 이런 작품은 귀하고 독특하다.
그 즐겁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니 이야기의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란 말이 새삼 와닿는다.
어린 시절 동화부터 알아온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한 우리의 히어로들, 부디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들이 함께 펼치는 새로운 모험을 한껏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다만 이번에는 티 없이 맑은 동심이 아니라 약간은, 아주 약간은 세상의 때가 탄 동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