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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어디에 있나요?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6년 4월
평점 :
흥미롭다.
제목 그대로 휴먼 어디에 있나요? 하면서 인간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시종 로봇의 모험담이다.
저택에서 주인을 모시는 시종 로봇인 찰스.
주인의 행동 결과와 상관없이 목록에 있는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주인이 하지도 않는 외출을 위해 외출복을 준비한다.
주인의 외출 여부, 주인의 의도를 예측하는 것은 시종 로봇 찰스의 업무가 아니다.
프로토콜대로 명령을 수행하고 이행할 뿐이다.
자신의 의지 없는 그저 입력된 명령어만 수행할 것 같은 찰스인데 그런 고도화된 로봇인 찰스가
주인의 수염을 깎는 명령을 수행하다 주인의 대동맥을 끊어버린다. 이런.
그래서 그는 더는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찰스는 기존 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난 나에게 주어진 명령, 존재 목적인 시중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러니 휴먼 어디에 있나요? 하면서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고 자신이 모실 인간을 직접 찾아 나선다.
입력된 값만 그대로 행동할 줄 아는 로봇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로봇이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 지점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수리 센터에서 마냥 대기하는 로봇들과 다르게 찰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을 한다. '전 시종 로봇이니 시종 명령을 수행하고 싶다.'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움직인 로봇이란 점이
재미있었고 동시에 그것이 주어진 명령이라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답답할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등 복잡한 모습을 보인다.
찰스는 움직이는 로봇인 동시에 고정된 로봇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유쾌하면서도 이상하게 애처로웠다.
오작동으로 주인을 살해해 언찰스가 된 찰스가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한 여정인 동시에
인간은 어디에 있지? 를 찾는 여정이기도 했다.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로 인해 인류를 멸망의 길을 걷고 멸망의 길을 걷는 인류가 선택한 것은
나만의 안전이었다.
노숙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벤치를 불편한 의자로 만들어 노숙자가 쉬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다 같이 살아갈 생각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간들로 인해 세상은 더 황폐해져 갔다는 점이
너무 씁쓸했다.
결국 서로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세상은 모두에게 다정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었다.
웃기면서도 서글프고 냉소적인 듯 보이지만 결국은 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다정해지자. 황폐한 세상에서 홀로 던져지기 전에